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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부처님을 어떻게 맞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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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지산 1995년 05월 159호
내게 예배하지 말라
아함부 경전은 말한다.
한때 부처님께서는 마가다국의 수도, 왕사성 교외에 있는 죽림정사에 계셨다. 그 때에 밧가리라는 한 비구가 병이 나서 왕사성의 한 도공陶工 집에서 요양하고 있었다. 이 비구의 병은 날로 심해져서 도무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옆에서 간병하는 비구에게 부탁했다. 벗이여 , 세존께서 지금 죽림정사에 머물고 계시다던데 내 말 좀 여쭈어 주게. 내 병이 날로 깊어져서 좀처럼 나을 가망이 없으니, 죽기 전에 세존을 한번만 뵈옵고 그 발에 정례를 드리는 것이 나의 마지막 소원일세 ? 간병하던 비구가 그의 마지막 소원을 전하자, 부처님은 곧 승낙하시고 그 도공의 집으로 왔다. 부처님께서 오신 것을 알고 밧가리가 일어나 앉으려고 애를 쓰니 , 부처님은 말리며 그의 곁에 앉으며 말씀하셨다.
“어떠냐 밧가리여 , 견딜만한가 좀 나았는가.”
“대덕이시여 , 제 병은 점점 깊어져서 조금도 나아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뵙고 발에 정례를 드리고 싶었는데 , 이 지경에 이르러 죽림정사에 가지 못했습니다”
밧가리는 매우 처연하게 눈물을 흘리며 흐느꼈다. 그러나 부처님은 단호히 말씀하신다.
“밧가리여 , 그대가 이 썩어질 몸뚱이에 예배해서 어쩌자는 것이냐?
밧가리여 , 그대는 마땅히 이렇게 알라, 법을 보는 자 나를 보고, 나를 보는 자 법을 보리라.ꡓ
이 말에 밧가리는 정신이 번쩍 뜨이고 깨닫는 바가 있었다.
금강경에서는 “무릇 있는 바 모든 현상은 허망하니 만일 모든 현상이 진실상이 아닌 줄 보면 곧 여래를 보리라“ 하였고, 또 ꡒ인연으로 조작되는 모든 현상은 꿈, 환상, 물거품, 그림자와 같고 이슬이나 번갯불과도 같은 것이니 , 마땅히 이와 같음을 관하라ꡓ라고 하였다. 그럼에도 지금 이 세상은 눈 못 뜨고 앓아 누운 밧가리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용수보살의 대승불교 선언 -ꡒ삿된 것을 부수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破邪顯正)ꡓ
세속의 명예와 이익을 구하기 위함이 아니요 개인의 편안함과 안락함을 구하기 위함도 아닌, 오직 깨달음을 증득하여 부처님의 혜명을 이으며 광도중생廣度衆生해야 할 출가 본분사가 상당히 쇠락된 실정이다. 증축불사로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는 사찰들, 찬란히 빛나는 황금빛 불상, 산 좋고 물 좋아 유유자적하는 승려들. 차(茶)를 우려내어 세상사를 씻어내고 승용차에 편히 몸을 누여 고가도로를 질주하기도 한다. 문중 의식은 세속의 족벌에 비견되고, 재산이 많고 수익금이 높은 사찰을 차지하려는 권모술수와 이익 다툼은 오늘날 한국정치의 현주소와 불이不二의 관계이다.

단호히 자르는 일도양단 一刀兩斷
얼마 전 의미심장하게 탐독한 소설 백금남의 「칼의 어록〕을 바로 지금 펼쳐본다. 심검당尋劍堂의 칼은 방장方文 스님 방 깊숙히 있었다.
어느날 대중 스님들은 자신들의 선경 禪境을 피력하고 경계를 시험받기 위해 심검당으로 모여들었다. 이윽고, 방장 스님은 자신의 무릎 앞에 던져 놓은 칼을 가리키며 대중 스님들께 물었다.
“일러라. 이것이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중은 쥐죽은듯 조용했고, 무거운 침묵만이 흘렀다. 대중스님들 가운데에 있던 목양스님과 명중스님도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할 말을 잊은 채로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
‘이것이 무엇이냐,ꡑ 뭐라고 답할 것인가. 칼이라고 하면 촉觸했으므로 그 본체를 보지 못했다고 할 것이요, 대답하지 않으면 배背했다고 할 것이니 , 뭐라고 답할 것인가 방장 스님이 희미한 웃음을 띠었다. 칼은 보았으나 그 본체는 보지 못했다. 법이 없는데 법이 있을 자리가 어디인가ꡑ
“.......”
방안이 술렁거렸다. 갑자기 명중스님이 방장 스님께 항의하듯 소리질렀다. ꡐ스님 , 그렇다면 스님은 깨쳤습니까? 스님이 깨쳤다면, 어디 그 법을 이 손바닥 위에 놓아보십시오!ꡓ
그러자 방장 스님은 시퍼런 장검을 그대로 주워 들었다. 순간, 칼이 허공을 가르고 명중스님의 비명소리가 찢어졌다.
바닥 위로 피를 뿌리며 떨어진 손목은 펄떡펄떡 뛰고 있었다.
비명을 질러대던 명중스님은 뒤늦게야 눈을 시뻘겋게 까뒤집고 펄떡거리는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 보았다. 방장스님께서 법문하신다.
“부처란 바로 마음의 청정함이며 , 법이란 어떠한 차별적인 이해나 편견도 사라진 깨달음의 빛이며 , 도란 질퍽질퍽한 흙탕물 속에서도 결코 더렵혀지지 않는 광명의 비춤이다.
참된 부처는 형상이 없으며 (眞佛無形),
참된 도는 그 실체가 없으며 (眞道無體),
참된 진리는 꾸밈이 없다(眞法無相).
이 세 가지 법이 혼합융통하며 화합하나 실체가 없다. 이것을 알지 못하고 끝없이 망망한 업식業識의 바다에서 표류하는 것을 중생이라 한다.ꡓ 법문을 듣던 목양스님은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으로 돌아온 뒤 임제록을 뒤적였다. 방장스님이 인용한 부분을 찾아보니 , 그는 임제스님의 말을 거의 그대로 흉내내고 있었다. 입가에 음험한 미소가
떠돌았다. 드디어 해제날이다. 섬검당은 사부대중으로 꽉 차 있었다.
방장스님은 장검을 손에 쥐고 시자의 부축을 받으며 심검당으로 들어섰고, 이윽고 법상에 올랐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잠시 뒤 눈을 감고 있던 방장 스님이 눈을 번쩍 떴다.
동시에 장검을 높이 쳐 들였다. ꡒ대중아, 일러라. 이 도리를 알겠느냐?” 물을 끼얹은 듯 정적이 감돌았다. 목양스님은 침을 꼴깍 삼켰다. 부르르 진저리를 치고 나서 어느 한순간 눈을
부릅뜨고 방장스님을 올려다 보았다. 갑자기 벌떡 일어서자 침묵하던 대중의 시선이 목양스님에게 쏠렸다. 더 이상 물러나려 해도 물러날 수가 없다는 생각이 급습했고, 모든 것은 정적 그대로였다. 침묵과 침묵, 그 사이를 비집고, 아아 그 순간 칼을 빼앗아들고 힘껏 내리쳤다. 피가 튀었고 방장 스님의 극악한 비명소리와 함께 손목 하나가 법상 아래로 굴렀다.
인용이 지루하게 길었다. 이제 다시 초파일, 부처님 오신날이 다가온다. 부처님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한마디 하건대 , 일찍이 맞이했던 부처님도 없고, 맞이한 부처님도 없으며 맞이해야 할 부처님도 없다
過去心不可得 現在心不可得 未來心不可得).
오직 한가닥, ‘나로부터의 혁명’이 있을 뿐이다.

병든 밧가리 비구는 누워 있고 커다란 사자좌의 부처님은 황금빛으로 빛난다. 금강경 독송 입이 마르고 닳으나, 옛 선사는 말한다.
‘말을 함에는 개오한 듯하나 경계를 만나면 혼미하도다.ꡓ
명중스님과 방장 스님의 잘린 손목은 펄떡거리고 파사현정 깃발은 펄럭이는데, 한국 불교 조계종 개혁 불사는 현재 진행형이며 , 바야흐로 민족 분단은 반세기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