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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 박물관의 특별전 -고려시대, 한국의 깨달음(918~13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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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보여화 - 김진숙 2004년 03월 265호
로스엔젤레스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가는 길은 두 코스 정도가 있다. 그 중에서도 서부해안선을 따라 가는 1번 프리웨이 길은 아름다운 경치 때문에 누구나 한번은 가보고 싶어하는 길이다. 자연의 파괴 없이 지형에 따라 길이 나 있으며 경치가 특히 아름다운 곳에는 차를 세워 놓고 감상할 수 있는 쉼터가 있고 그림같이 아름다운 몬츠레이, 카멜 등의 해안도시를 지나면 샌프란시스코에 이른다.
샌프란시스코는 숀 코넬리 주연의 영화로 감옥을 배경으로 만든 영화 ‘The Rock’ 등에서처럼 영화에도 자주 등장하는 곳으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도시이다. 이 도시는 전체가 구릉지대로 급경사의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어우러져 케이블 카를 타고 도시를 가로지르고 있자면 마치 놀이공원의 제트 코스터를 타고 있는 느낌이다. 또한 이곳은 많은 박물관, 미술관 그리고 공원 등이 조성되어 있어 낭만적이며 지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도시이기도 하다. 동성연애자들을 법적으로 인정한 최초의 도시이며 요즘 한창 문제가 되고 있는 동성연애자들의 법적인 결혼까지 허용한 자유의 도시이기도 하다. 샌프란시스코는 일찍부터 중국이민자들에 의하여 발달된 도시로 도시 한가운데 차이나타운이 형성되어 중국 시장과 음식점 등이 잘 발달되어 있다. 이러한 미국 속의 동양적인 정취와 가장 미국다운 자유스러움은 찾은 이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동양에 대한 관심과 함께 불교와 불교문화에 대해서도 어떠한 선입견 없이 접근할 수 있는 편안함을 준다.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 박물관(Asian Art Museum)에서는 특별전 ‘고려시대: 한국의 깨달음, 918~1392 (Goryeo Dynasty: Korea’s Age of Enlightenment, 918 to 1392)’가 작년 10월 18일부터 올해 1월 11일까지 있었다. 우리가 박물관을 간 것은 전시가 거의 끝나갈 무렵인 1월 초였다. 목요일은 저녁 9시까지 하는지라 아침 일찍 집에서 출발하였지만 거의 저녁 무렵에 박물관에 도착하였다. 여관에 짐을 풀고 바로 박물관으로 갔는데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전시장은 많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대충 전시장을 둘러보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고려불화들이 사방 벽에 걸려 있고 그 앞에는 작고 아담한 크기의 불상들이 전시되어 있고, 경전, 의식에 사용되는 불구들, 고려청자, 은제 장식품 등을 전시실 가운데에 전시하고 있었다. 이곳 박물관의 소장품도 있었지만 우리 나라와 일본, 프랑스 등지에서 온 것도 많았다.
특별전 전시장 입구에는 전시장의 작품들을 설명해주는 사람들이 서 있다가 몇 사람이 모이면 그들에게 전체적인 전시의 설명을 시작으로 작품 하나씩 설명해 준다. 여기저기서 작은 그룹들을 이루어 설명을 듣기도 하고 때로는 질문을 던지면서 감상하는 모습은 전시가 단순히 보여주기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학습과 토론의 장이 되고 있었다. 나는 중년쯤 되어 보이는 백인 여자분의 안내를 들었는데 이 분은 불상에 대해서 아주 친절하게 설명하면서 특히 불상들의 표정과 동작은 깨달음의 그 어떤 순간들을 나타낸다고 하고 불상들의 특징적인 얼굴의 생김은 당시의 고려인의 모습이 많이 반영된 것이라 했다.
불상의 경우는 전시실 입구에 전시된 금동여래좌상(높이 25 2/8인치, 호암미술관 소장, 12~13세기)이 눈길을 끌었다. 아담한 크기의 이 불상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부드럽고 온화하였다. 입술에 미소를 듬뿍 머금고 있어 입 주위와 뺨까지도 미소가 번져 부드러움이 더했다. 미소와 더불어 양쪽 뺨과 턱이 볼륨 있게 처리되었고 귓볼 또한 통통하게 처리되었다. 오른손은 어깨까지 들어 올리고 왼손은 왼쪽 무릎 위에 내려놓은 내영인來迎印을 맺고 있으나 손의 움직임은 물론이고 손가락 하나하나도 통통하게 표현되었다. 이 상에서 특히 주목하고 싶은 것은 목조나 석조에서 보는 조각 기법처럼 무릎의 옷 주름선이나 등 뒤의 옷 주름선이 깊고 날카롭게 파여 있는 점이다.
한편 아미타좌상(호암미술관 소장)도 무척 감명 깊었다. 두 손을 모아 무릎 한가운데 놓은 정인定印을 맺고 있으며 얼굴을 앞으로 약간 숙이고 눈을 지그시 감고 있어 전체적으로 조용한 느낌이 드는 상像이다. 얼굴과 가슴, 그리고 두 팔이 아주 통통하게 표현되어 마치 몸 전체에 공기가 들어가 있는 듯하다. 안내인의 설명에 의하면 이 상의 현재 상태는 우주의 에너지를 깊이 마시고 있는 순간을 상으로 만든 것으로 특히 가슴의 볼륨은 기氣가 충만된 상태라고 설명한다. 이외에도 화려한 보관과 몸에 영락 등의 장식을 걸치고 있는 관음좌상과 머리에 두건을 쓰고 있는 지장보살상 등도 함께 전시되었다. 대부분의 불상 얼굴은 제각기 개성적인 모습을 하고 있으며 상의 크기에 비해 특히 얼굴과 양손을 크게 만들어 돋보이게 하였다.
다음으로 불화를 보면 아미타독존도와 삼존도를 비롯하여 수월관음도, 지장보살도 등을 포함해 전부 23점 정도가 출품되었다. 특히 수월관음도의 섬세함과 화려함 앞에서는 모두들 감탄했으며 이것을 사람의 손으로 그렸다는 것은 믿을 수 없다고 하였다.
다음날도 아침 일찍부터 박물관을 찾았다. 비가 내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이 날도 다른 안내인의 설명을 들으니 이 사람은 주로 고려청자와 은제 장식품에 대해서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다. 주로 불교의식과 관계있는 것이었으며 작품마다 화려하고 섬세한 표현들은 보는 이들의 탄성과 아낌없는 칭찬을 자아내었다.
두 번째 찾는 샌프란시스코, 먼 길을 와서 박물관만 보고 돌아가지만 고려시대를 한국의 깨달음의 시대로 정의하고 고려시대의 불교미술을 이렇게 고급스런 분위기에서 전시하는 미국인들을 보면서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과 함께 이 전시가 그들이 일본과 중국 불교미술과 구별되는 우리의 선과 우리의 문양 그리고 우리의 부처님에 대해서도 많이 이해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 믿기에 돌아가는 길이 그리 멀게만은 느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