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 경내에 들어와 부처님께 삼배를 드리고 해인사의 이곳저곳을 예전의 기억을 되살려 정신 없이 둘러보고~~~. 해질 무렵 원주실을 찾았습니다. 절에서 묵는 건 처음이라 재워주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며 걱정을 했는데… “담당 행자님께 오래 있고 싶은데, 그래도 되나요?”
“길어야 2박 3일밖에 안 됩니다. 더 있고 싶으시면 원주스님께 따로 허락을 받으세요.”
그때부터 조금씩 걱정이 밀려오기 시작했고 바쁘신 원주스님을 뵈려고 몇 번을 찾아갔지만 허탕을 치고 마지막 날 아침공양을 마치자마자 행자님께 허락을 받고 원주실 앞에서 20분을 기다려 겨우 스님을 뵈었는데….
“기도하러 왔냐?”
“아니요.”(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그랬는지~~.)
“며칠 쉬러 왔는데요. 석 달 아니 한 달이라도 묵게 해주세요. 저 일 잘하거든요. 뭐든지 할게요. 네?”(무서워. 이제 큰일났다.)
“그래라! 뭐 할 수 있는 일이 있나 찾아보자.”(감격! 감격! 또 감격! 스님 감사합니다.)
그리하여 해인사와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후에 원주스님은 처음에 절 보셨을 때 저 뚱뚱하고 미련해 보이는 애를 어디다 쓰나~~~하셨다더군요. 지금은 절 놓쳐서 후회하신다고요.)
해인사에 온 지 일주일쯤 지났을 때였을 겁니다. 며칠 안 되는 날들이 익숙했는지 아침 점심 저녁 예불을 다 드리고 매 때마다 절을 200~300배씩 하여도, 그 큰 지장전을 쓸고 닦고도 모자라 수각장 청소도 했는데 그래도 남는 시간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한번은 점심시간에 공양을 하고 나오는데 강원스님들께서 걸망을 하나씩 짊어지고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모이시는 모습이 산행을 가는 것 같아 기회다 싶어 얼른 준비를 하고 따라 나서긴 했는데….
그때의 그 고통과 괴로움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구요? 마애불까지 가는 길이 왜 그리 힘이 들던지 운동부족에 쌀 한가마니가 넘나드는 몸무게를 지탱하고 그냥 등산로도 아닌 스님들만 아시는 힘든 산행길을 따르려 하니 곧 죽어도 여한이 없더군요. 분명 스님들 뒤를 따랐는데 가다보니 그림자도 안 보이고 길을 잘못 들었는지 스님들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으니까요. 혹시나 하고 계속 길인 것 같은 곳으로 가다보니 벌써 내려오시는 분들이 계시더군요. 난 아직 가지도 못했는데 벌써 내려오시다니~~. 그땐 스님들이 모두 같아 보여서 그분이 그분 같았거든요. 어쩌나 다시 따라 내려가야 하나 하고 있는데 스님 한분이 “보살! 스님들 따라 가는가?” “ 네.” “근데 여기서 뭐하고 있어. 빨리 안가고!” 전 그 말씀 떨어지기가 무섭게 달리다시피해서 스님들을 따라잡을 수 있었죠. 먼발치로나마요. 걸어도 걸어도 마애부처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계속 내려갈까 하는 생각만 나고 숨은 머리끝까지 차서 이상한 신음소리를 내고 한마디로 무아지경이었습니다. 그래도 시작한거 끝을 봐야지 하는데 뒤에서 늦게 출발하신 것 같은 강원스님 한 분이 “다 왔습니다. 힘내세요.” 그러시더니 앞질러 폴짝폴짝 아주 가뿐히 뛰어가시는 거예요. 그 험한 산길을!! 앞이 더 캄캄하더라고요. 할 수 있나요, 열심히 저도 따라갔죠. 드디어 마애부처님이 보이고 언제 다들 올라가셨는지 부처님 앞에 스님들이 가득했습니다. 마애 부처님! 여전히 제가 8년 전에 뵈었던 모습 그대로 온화한 미소를 담고 계시더군요. ‘어서 오너라.’ 하시면서요. 그 앞에 너무 많은 스님들이 모여 계셔서 한쪽 귀퉁이에서 부처님께 인사드리고 쉬고 있는데 어떤 스님이 올라오느라 고생했다며 차 한잔을 주셨어요. 아~~~이 황홀함!! 감히 이제껏 즐겼던 차들은 차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힘든 제게 부처님이 내리신 감로수가 아닐까요??
‘해인 편집실’이 눈에 띄어 <해인>지 빌려 보러 갔다가 직원언니의 권유로 포교국장 스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직원언니가 내일 아침쯤이면 되겠다고 해서 내일이면 나도 해인사에서 뭔가 할 수 있겠다 생각하고 있는데, 뒤에서 “보살인가?” 물으시길래 뒤로 돌아보는 순간 너무 놀랐습니다. 불교에선 이런 말을 잘 안 쓰죠. 허나 제가 본 것은 정말 천사였습니다. 따뜻한 햇살 아래 환하게 웃으시면서 절 부르고 계신 그분!! 말로 다 표현 할 수 없는 두근거림과 순간 머리카락을 흩날린 봄바람까지 제가 천상에 있는 것 같았으니까요. ‘내일 아침에 차 한잔 하자’ 하시고 가시는 모습이 구름 위에 계시듯 했으니까요. 전 그래서 확신했죠. 인연이구나. 내가 살 곳은 여기구나!!
그리고 벌써 10개월. 새로운 봄을 해인사에서 맞고 있습니다. 주말 수련회를 시작으로 2003 여름·겨울 수련회를 다 마친 지금, ‘이 힘든 일을 또 할 수 있을까!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지쳐서 산을 내려 가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있지만 해인사는 제게 맑은 공기와 푸르른 하늘, 시원한 바람, 따뜻한 햇살 그리고 휴식을 주었습니다. 좋은 인연으로 저의 20대는 행복했습니다. 앞으로는 더 행복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