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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가 과학일 수 있는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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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이뭐꼬 - 법진 2004년 03월 265호
일견해서 종교와 과학은 각기 추구하는 바가 달라 보인다. 종교는 초월성과 다양성을 중시하는 반면, 과학은 논리와 반복성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일단의 종교 연구가들은 종교가 과학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제기하였다.
1870년 2월, 중년의 독일인 종교학자가 대중 강연을 하기 위해 런던에서 가장 명망있는 왕립학회의 발표자 자리에 올랐다. 프레드리히 맑스 뮐러(Friedrich Marx Muller)였는데, 그는 청년 시절에 고대인도의 종교 문헌을 연구하는 옥스퍼드 대학 교수였다. 그는 뛰어난 언어 능력의 소유자였고 종교 연구에 새로운 방법론 도입 등으로 당시 학계에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다. 뮐러가 그 강연장에서 ‘종교 과학(나중에 종교학이라고 함)’이라고 하는 새로운 연구 방법론을 제안했다는 것이다. ‘종교 과학’이라고 하는 새로운 용어는 당시의 학자들은 물론 대중들에게도 많은 충격을 주었다.
1870년대는 다윈(Charles Darwin)이 《종의 기원(Origins of Species, 1859)》에서 제안한 진화론에 대해 지식인 사이에서 열띤 논쟁이 있었던 시기이다. 빅토리아인들은 종교가 과학과 다른 영역에 있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종교 과학’이라는 말은 그들에게 매우 생소하게 조합된 언어로 들렸을 것이다. 전통적인 신앙의 확실성이, 실험과 반복 교정 그리고 이론화를 중심으로 하는 과학과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이질적인 논리 체계, 즉 상반된 목적을 가지고 있는 두 가지가 둘 가운데 어느 것 하나 혹은 둘 모두를 다 인정한 상태에서 서로 공존할 수 있을까? 뮐러는 종교와 과학이 아무런 문제없이 서로 공존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는 종교에 관한 과학적인 연구가 종교와 과학 모두를 서로 보완해줄 수 있다고 믿고 있었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러한 관점을 명확하게 제기하였던 것이다.
뮐러는 시인 괴테가 인류의 언어에 관하여 썼던 말이 - 하나를 아는 사람은 아무 것도 모른다 - 동시에 종교 연구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종교라는 오래 된 주제를 새롭고 객관적인 관점으로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신학자들은 자기 자신의 종교만이 옳고 여타의 모든 다른 종교는 그르다고 하는 것을 그들 연구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러나 뮐러는 이러한 신학자들의 연구 태도를 답습하는 대신에,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존재하는 여러 종교로부터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요소, 형태, 그리고 원칙들을 적절하게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을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종교에 관한 초기의 이론
뮐러가 새로운 종교 연구 방법을 제안했던 것이 당시 학자들에게 새로운 주장으로 들렸을지 모르지만, 실은 매우 오래 된 전통을 가진 것들이었다. ‘종교란 무엇인가’ 또는 ‘사람들은 왜 종교를 믿는가’라고 하는 질문은 인간이 존재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아마 제기되었을 것이다. 어떤 여행가가 자신의 마을이나 씨족의 범위를 벗어나 이웃 마을이나 씨족을 넘나들면서 그곳에서 다른 신들이 신앙되고 있음을 발견했을 때 이미 최초의 종교학 이론은 생겨났을 것이다. 역사가 헤로도토스(기원전 484~425)는 그가 이집트를 여행하면서 발견한 아몬(Amon)과 호르수(Horus)신들을 그가 살던 그리스의 제우스(Zeus)와 아폴로(Apolo)신과 동일한 것으로 이해하였다. 작가 에우헤메루스(Euhemerus, 기원전 330~260)는 신이라고 하는 것들이 원래는 인간이었는데 그들이 죽고 난 후에 신앙되기 시작한 역사상의 탁월한 개인이라고 이해하였다. 위의 두 가지 예는 모두 종교학의 출발점을 시사하는 것이다. 스토이(Stoic) 철학자들 가운데 신이 하늘, 바다, 그리고 여타의 자연적인 것들에 대한 의인화인 것으로 이해한 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단편적인 여러 종교적 사실들을 면밀히 살펴본 후, 각기 그것이 고등 종교로 발전해 가는 과정을 자연의 의인화라고 하는 매우 창의적인 관점에서 이해하였던 것이다.

유태교와 기독교
유태교와 기독교는 신과 사물을 인식하는 데 있어서 서로 상이한 관점을 갖고 있었다. 고대 이스라엘의 저명한 예언자들 가운데 신과 의례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신앙하는 자들은 없었지만, 세상에 다른 신앙을 가진 자들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그들에게는 ‘야훼(Yahweh)’라고 하는 단지 하나의 진정한 신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 신은 아브라함, 이사악, 그리고 야콥으로 이 세상에 출현하였으며 그리고 시나이 산에서 모세에게 신성한 법을 계시하기도 하였다. 그들에게는 이 신만이 참다울 뿐 다른 신들은 모두 인간의 상상력에 의한 가공적인 것들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적어도 그들에게 종교는 비교와 설명이 필요치 않는 것이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야훼가 이스라엘 민족만을 배타적으로 선택하여 단지 그들에게만 계시를 주었다는 야훼 신앙을 갖고 있었던 반면, 다른 민족들은 그들의 눈이 무지 또는 사악함 의해 어두워져 있었기 때문에 우상을 믿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사도들과 초기 교회의 신학자들에게 있어서 신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간으로 구체화된 형상으로 나타났다. 예수를 믿었던 사람들에게 예수는 진리의 길이었고, 믿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는 단지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을 치러야 하는 운명을 갖고 있던 사탄의 희생자일 뿐이었다. 기독교가 고대 세계에 널리 퍼져나가고 유럽인들이 기독교로 개종함에 따라, 이러한 견해는 중세 유럽 문명을 지배하게 되었다. 그리고 빛의 자식들인 기독교인들은 어둠의 자식들인 이슬람교도들과 싸우도록 강요되었다. 신이 화현한 것에 대한 믿음으로 기독교의 신앙을 설명하였고, 사탄의 음모로 그들의 적인 이슬람의 믿음을 이해했던 것이다.
1500년경에 이르러 신세계 탐험이 시작되고 종교개혁이 일어나면서부터, 종교 일반에 대한 새로운 견해가 선보이기 시작하였다. 신세계의 탐험가와 자유 무역상, 선교사, 그리고 동양에 대한 개척가들이 서양 바깥 세상을 여행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유럽인들이 성서 속의 신의 출현이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문명을 일으킨 사람들을 주목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힌두교와 불교 그리고 유교 등 매우 윤리적인 원칙을 가진 종교와도 접촉하였고 그리고 미국 원주민 부족에게서 초월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 등을 발견하였다. 그럼으로써 유태교와 기독교와 함께 이들 믿음 체계에 대한 비교연구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 것이다. 유럽인들 가운데 사려 깊은 사람들은 기독교 전통 이외의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사탄의 제자로 간주하는 것이 부적절한 것이라고 보기 시작하였다. 중국의 유교도들은 그리스도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고, 어떤 점에서는 성서도 몰랐을 수 있지만, 그들은 매우 문명화되고 세련된, 그리고 도덕적인 문화를 창조할 수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유럽인들이 알고 있던 그리스도나 사도들마저 놀랄 만한 것이었다.
유럽인들과 외부인들 사이의 문명간 접촉이 왕성하게 이루어지고 있던 16~17세기의 유럽 기독교 사회는 다른 종파의 기독교인들과 유혈적인 그리고 폭력적인 전쟁의 혼란 속에 빠져 있었다. 독일의 수사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와 스위스와 프랑스에서 활동 중이던 법률가 존 캘빈(John Calvin)에 의해 북유럽에서는 새로운 프로테스탄트 운동이 기존 교회의 권위에 도전하고 성서적 진리에 대한 교회의 해석을 전면 반대하고 나섰던 것은 바로 그때였다. 탐험가들이 여행하고 있던 사이에 그들의 고향은 종교적 믿음의 차이로 말미암아 학살과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었던 것이다. 신학에 대한 이해의 차이에서 비롯된 지독한 싸움으로 말미암아 유럽 기독교 공동체는 먼저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로 분리되었다. 16~17세기 유럽에서는 종교적으로 신학 해석상의 차이와 성직 간의 갈등으로 말미암아 수백에 이르는 다양한 종교집단으로 분열되었고 그리고 사회적으로는 전쟁의 소용돌이가 끊이지 않고 지루하게 계속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기독교 지도자들 사이에서는 자신의 종파만이 신의 참된 진리를 갖고 있다는 믿음은 점차 그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천년 이상 유지되어 온 종교들 사이에 인명을 살상하는 그리고 파괴적인 전쟁이 끊이지 않는 것을 보고서, 동일한 신을 믿고 있는 기독교인으로서 상대 종파인들을 학대하고 학살하는 배타적인 종파성이 과연 종교의 진리인가에 대하여 깊은 회의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종교의 진리는 교회간의 싸움 이면에 그리고 화형대 기둥과 사형대 틀 너머에 있어야 한다. 그들이 새로운 형태의 종교, 즉 종교의 궁극과 의미에 대해 새로운 이해를 추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계몽주의와 자연종교
종교간 그리고 국가간의 싸움으로 점철되었던 16~17세기와는 달리,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의 사상가들은 종교 속에서 모든 인류가 공유하고 있는 공통된, 기본적인, 그리고 고유한 요소를 발견하고자 하였다. 그들은 스스로를 ‘자연신교 신봉자’로 부르면서 당시 지식인 사회를 주도해 나갔다. 계몽주의자의 자연종교는 창조주 신에 대한 믿음과 인간의 행동 양식을 지배하는 도덕률, 그리고 그들이 선한 것을 행하고 악한 것을 피하는 한 내세에 행복이 보장된다는 약속 등을 주요 개념으로 하고 있었다. 자연종교 신봉자들이 보기에 이와 같이 단순한 종교적 신념이야말로 인류가 갖추어야할 첫 번째 사항이었으며, 교회가 교회 내부에 전해오는 미신에 버금가는 경이로움과 여러 가지 잡다한 교회의식들, 그리고 권력 지향성이 강한 성직자에 의해 주도되기 훨씬 이전부터 있었던 공통된 신앙이었다. 이러한 본래의 신념을 회복하고 그리고 기독교인, 유태인, 이슬람교도, 힌두교도, 중국인, 그리고 여타의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창조신 아래 보편적인 형제로 평화롭고 평온하게 사는 것이 그들에게 있어서 최선의 희망이었다.
자연종교 신봉자들의 주장은 당시 지성인들로 하여금 기독교 이외의 종교 전통에 대한 관용과 이해를 촉구하는 일종의 새로운 종교 운동이었다. 기독교 종파들이 어떤 상이한 믿음을 갖고 있던지 간에, 미국 인디언들의 의례가 어떤 것이든지 간에, 중국인들의 조상 숭배 의식이 그리고 힌두 성인들의 가르침이 어떤 것이든지 간에, 이러한 모든 것들은 최초의 인간들이 가졌던 자연적인 종교에서 발전된 것들이었다고 믿었다. 자연신론은 인류의 다양한 종교전통을 인정하는 것이었고, 거기에 덧붙여 왜 종교가 시작되었으며, 종교 행위의 목적은 무엇이며, 그리고 어떻게 그것이 전통으로 자리잡게 되었는가를 설명할 수 있는 이론적인 틀이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