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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天地가 모두 부처 아님이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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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이야기 그림 이야기 - 김현정 2004년 03월 265호
처처處處에 모두 불성佛性이 깃들여 있다고 하였다. 이는 곧 하늘의 구름이건 산길에 구르는 작은 돌이건, 명경지수明鏡止水 맑은 물이건 부처가 아님이 없다는 뜻이다.
예부터 수행자는 부처에서도 떠나고, 조사祖師에게서도 떠나 있으므로 더욱이 그 전해지는 말에서도 떠나 있지만, 실제 천지天地 사이에 부처로 삼지 않는 것이 없다. 이 우주의 모든 것이 말 없는 말이요, 가르침 없는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동산洞山(807~869) 스님이 어느 날 남양 혜충南陽 慧忠의 무정설법無情說法에 대해 운암雲巖 스님께 물었다.
“무정無情의 설법은 누가 듣습니까?”
“무정이 듣는다.”
무정無情이라고 하는 것은 무릇 생명이 없는 것이나 말을 하지 못하는 대상을 일컫는 것이다. 유정有情은 생명이 있는 대상을 이야기하는 것이며 동시에 생각과 말을 전달하는 사람과 같은 존재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진리를 찾는다는 것은 말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본질과 본성을 꿰뚫음에 있다. 동산 스님이 이때 유정有情과 무정을 분별하여 물은 것이나, 운암은 그 분별심을 비꼬아 대답한 것이었다.
“화상께서도 듣는 것입니까?” 하고 물으니 “내가 듣는다면 너는 나의 설법을 듣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동산 스님이 석연치 않아 다시 여쭙기를, “어찌하여 듣지 못합니까?” 하니 운암 스님은 불자拂子를 일으켜 세우면서 말씀하셨다. “들리느냐?” 다시 물으니 “들리지 않습니다.”고 대답하였다.
“내 설법도 듣지 못하는데 무정의 설법을 어찌 듣겠느냐?”
“무정의 설법은 어느 경전의 가르침입니까?”
“《아미타경》에 이르기를 물과 새와 나무가 모두 염불하며 설법한다고 하지 않았느냐?”라고 대답하셨다. 이 말에 동산 스님은 깨달은 바가 있어 게송을 지었다고 전한다.
운암 스님은 말로써가 아닌 자재自在하는 바 그대로 관觀하여 그 가르침을 얻으라고 동산 스님에게 실로 자상하게 일러주었으니, 이치는 보여짐으로써 깨닫게 되는 것이요, 대상이 말하는 바로 얻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마원馬遠은 남송南宋의 대표적인 화원 화가이다. 송대에 가장 이름을 떨친 화가 집안이 있으니 바로 이 마馬씨 일가이다. 12세기 초엽부터 시작하여 모두 다섯 대에 걸쳐 화원에 봉직하면서 황제를 섬긴 전형적인 장인 집안이었다. 화원화가는 황실에 속한 도화원에서 활동한 화가들을 말하는 것으로 이들은 대체적으로 정치精緻하고 기교적인 그림을 그리게 마련이다.
실제 여기의 ‘동산도수도洞山渡水圖 - 동산이 물을 건너다’에는 낙관落款이 남아 있지 않아 마원이 그린 것이라 전칭傳稱될 뿐 그 작가가 정확치는 않다. 그러나 선승이 건너고 있는 개울 주변의 담박한 묘사와 그 뒤로 안개 속에 아련한 나지막한 산의 실루엣은 충분히 마원의 화풍을 반영하는 남송대의 작품으로 여길 만 하다.
개울을 건너는 사람은 동산 스님으로 오른손에 그리 튼튼해 보이지 않는 주장자를 힘있게 움켜쥐고, 다른 한손으로는 장삼자락을 잡고 개울을 건너고 있으나, 그는 어느덧 개울을 건너는 것을 잊고 개울물과 자신을 비춰보고 있다. 그 눈빛은 한없이 그윽하여 한없이 생각에 잠긴 모습인데 간결한 표현임에도 불구하고 성성惺惺함이 드러난다.
마원은 앞에서 언급한 대로 선종화가는 아니었으나, 그가 이처럼 동산의 고사를 그린 것은 송대 말 회화의 관심이 불교와 선으로 옮겨오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화폭 상단의 여섯 자 시로 동산 스님이 개울을 건너며 깨달은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옷을 걷어들고, 풀을 헤치며 산책을 나섰다.
산책 나선 길, 산을 오르고 내를 건너는
그 수고로움을 면할 수 없으나
가는 곳 모두가 개울임을 미처 알지 못하는구나.
한번만 고개 숙여 내려다보면 자기 본모습이 있는 것을.

동산이 개울물에 비춰본 자신의 모습은 무심無心 그 자체이며, 자신의 본성 그대로이다. 실제의 나는 때로는 웃기도 하며, 울기도 하고, 욕심을 내기도 하지만 물에 비친 내 모습은 지금의 나가 아닌 그 물과 더불어 둘이 아니니 무심無心이고 무변無變이며 그 시작을 개울물과 함께 한 것이었다.
일찍이 동산 스님은 개울을 건너며 물에 비친 모습을 보고 이처럼 깨달은 바가 있어 다른 것에서는 일체 찾지 않고 무정에 비친 자신을 바른 나로 삼은 것이었다. 동산 스님은 훗날 조동종曹洞宗을 열었고, 그 종지가 제자들에게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