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9년 한여름에 나는 특별한 손님을 맞아서 약 열흘 동안 국내의 모모한 고적을 함께 답사하였다. 조지 댄포스(George Danforth) 교수는 시카고에 있는 일리노이 공과대학교(Illinois Institute of Technology IIT)에서 학부시절 내가 배웠던 은사이자 나를 학위 취득 후에, IIT 건축학과 조교수로 임용한 학부 주임교수이었기도 하다. 댄포스 선생님이 멀리 한국 나들이를 하게 된 연유는 3년 전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역시 IIT 건축과 교수로 오랫동안 후학의 교육에 정진하였고, 나로서는 대학원 논문 지도교수이었던 마이런 골드스미스 교수의 추모행사에서 내가 댄포스 선생님을 초청한데서 비롯되었다. 그는 그때에 이미 만 여든 살의 나이였지만, 워낙 건강하고 여행을 즐기는 체질인 것을 내가 잘 알기 때문에 한번 한국에 초대하여 사은을 하고 싶은 내 심정이었다. 선생님은 이듬해 여름에는 런던을 가도록 되어 있고, 다음 해인 1998년에는 브라질을 가보려 하니, 1999년에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팔순을 넘긴 노년답게 선생님은 급한 것이 없었다. 2년, 3년 앞을 계획하고 꾸준히 실천에 옮기는 것이었다.
그간 나는 많은 외국 방문객들을 안내하여 보았지만, 모두 업무차 한국에 온 손님들이었기 때문에 2박 3일 이상 서울을 떠나서 시간을 보내는 일은 없었다. 두 주일 가까이 손님이 우리 집에서 유숙하면서 한국을 보여주는 것은 처음 경험하였으므로, 나는 무엇이 중요한 구경거리인가 하고 생각을 가다듬었다. 손님이 건축교수란 점을 떠나서 우리가 진정으로 바깥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나는 우선 댄포스 선생님을 두 번에 나누어서 지방으로 안내하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다. 나는 선생님이 도착한지 이틀이 지난 후에 그 분을 모시고 길을 나섰다. 일찌감치 서울을 떠나, 영월에서 통나무 주택을 여러 채 짓고, 야생식물들을 채취ㆍ재배하는 농장으로 뜻 있는 시간을 보내는 후배 황 사장 집에 늦은 아침에 도착하여, 선생님과 흥미로운 얘기를 주고 받으며 정원에서 점심을 먹고, 영주 소수서원으로 향하였다. 서울에 있는 궁궐들보다, 먼저 작은 규모의 전통건축부터 보여드리자는 것이 내 목표였다. 한갓진 소수서원은 선생님에게 상당한 인상을 남긴 듯 싶었다. 그날 저녁은 풍기의 한 호텔에서 지내기로 하였다. 식당 메뉴에 영문으로 음식 이름들이 몇 개 적혀 있는 것이 걸작이었다. 우거지국 백반정식을 dried autumn leaf soup 이라고 써놓은 것이 선생님의 호기심을 끌어내 우리는 우거지국으로 저녁을 먹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우리는 부석사로 향하였다. 선생님은 평지에서는 큰 어려움이 없지만, 무릎 관절인지, 대퇴골인지가 불편하여 계단 오르내리는 것이 매우 힘드셨기에, 나는 양해를 구하고 차를 몰아서 스님들이 다니시는 차도로 올라가서 거의 안양루 동쪽에 차를 세우고 무량수전으로 걸어 올라갔다. 하나, 실망스럽게도 무량수전이 기와 잇는 불사를 하는 중이었다. 나는 무량수전의 아름다움 그 자체도 선생님께 보여드리려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오후에 안내할 안동 봉정사 극락전과의 차이를 서구의 건축인이 어떻게 파악하고 차이점을 추출하는지를 듣고 싶었던 것이다. 그날 오후에 우리는 극락전을 꼼꼼이 살펴보고 정면 3칸, 측면 4칸의 단아한 평면, 부처님을 모시는 공간을 구성하기 위하여 안에는 기둥들을 건너뛰게 한 목조건축기법의 대담함 등에 감탄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새로운 단청을 입힌 극락전이 너무 현란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고, 측벽의 도리 아홉 개가 좀 과하게 길게 뻗어 전각 몸채를 억압하는 듯하다는 의견을 함께 하였다. 다음날 나는 선생님을 하회마을, 병산서원으로 안내한 후 일찌감치 서울로 돌아왔다.
서울에서 매일 경복궁, 창덕궁 등 많은 것을 안내하였는데, 인상에 남는 고적 중 댄포스 선생님은 종묘의 숙연한 분위기가 마음에 와닿는다고 말씀하셨다. 한국에는 IIT에서 댄포스 교수와 인연이 있던 동문들도 여러 명 있어서 심심치 않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다음 여정으로 우리 두 사람과 선생님은 기차를 타고 경주로 향하였다. 불국사, 석굴암도 물론 좋았으나, 고분공원에서 선생님은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하셨다. 경주에서는 내가 설계한 힐튼호텔에서, IIT 동문인 부산대학교 박 교수가 합류하여 선생님과 옛 이야기로 꽃을 피우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역시 내 솜씨인 선재미술관도 보여드릴 수 있었다. 사흘째 아침 일찍 우리 일행은 준비해놓은 차를 몰고 해인사로 향하였다. 상쾌한 여름 아침에 산 사이를 누비면서 달리는 길 좌우의 풍광을 미국의 대평원에만 익숙한 선생님은 무척 흥미롭게 돌아보시는 것이었다.
해인사에 도착하여 천천히 해탈문을 지나 구광루 밑을 지나면서 시야에 들어오는 석등과 삼층석탑이 진입축을 대적광전의 중심으로 꺾는 것을 내가 설명하자, 댄포스 선생님은 당신도 그것을 직감하였다고 하시며, 우리 나라 산지가람 배치에 대하여 많은 호기심을 나타내셨다. 대적광전을 둘러보고 우리 일행은 장경판전으로 걸음을 옮겼다. 가파른 계단을 선생님을 부축하여 천천히 오르며, 수다라장 안에 들어서자 솔솔 불어들어오는 산들바람에 삽시간에 땀은 가시고, 우리는 팔만대장경의 실체를 눈으로 확인하면서 그 뜻을 생각하였다. 1251년에 완성된 팔만대장경 경판, 그 자체가 예술품들이었다. 댄포스 선생님은 깊은 생각에 잠기시는 듯 한동안 말씀이 없었다.
“종성군, 나는 이번 여행에 대단한 특전을 누렸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창덕궁, 종묘, 불국사와 석굴암을 보았지만, 이 경판들이야말로 우리 인류 전체의 문화유산 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파트리모니오의 하나임에 틀림없어!”
우리 나라는 댄포스 교수가 다녀간 이듬해 2000년에 경주 일곽과 고창, 화순, 강화도 고인돌군이 추가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 중에서도 그 어느 것보다도 트립티카 코레아나로 불리는 팔만대장경이야말로 세계문화사상 가장 중요한 우리의 업적이라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