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무예휴도괄眼中無休挑刮하고남전南泉 선사가 등은봉 스님이 참문하려 오는 것을 보고는 정병을 가리키면서 말했습니다.
“정병은 경계이다. 그대는 경계를 건드리지 말고 물만 가져오라.”
이에 등은봉이 정병을 가져다가 선사의 앞에서 쏟으니 선사가 벽력같이 말했습니다.
“그만둬.”
이에 귀종歸宗 선사가 말했습니다.
“등은봉도 또한 함부로 쏟은 것이니라.”
등은봉 스님께서 해제를 하고서 남전 선사를 찾아갔습니다.
정병은 납자들이 길을 다닐 때 물을 넣어 다니는 병입니다.
마시기도 하고 또 뒷물을 하는 데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런 정병의 물을 두고서 남전 선사와 등은봉 스님이 한 거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등은봉 선사는 거꾸로 서서 열반에 든 괴각승인 동시에 대종장大宗匠입니다.
해제를 하고서 만행을 다니며 가는 곳마다 선지식과 한판을 겨루고는 사라지곤 했습니다.
등은봉 선사가 위산에 도착했을 때 일입니다. 도착하자마자 큰방에 들어가 의발을 풀어놓았습니다.
등은봉 스님은 위산 스님의 사숙이 됩니다.
왜냐하면 위산 스님은 마조 스님의 제자 백장 스님의 법을 이었고
등은봉 선사는 마조 스님의 법을 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위산 스님이 사숙이 찾아왔다는 말을 듣고서
먼저 예의를 갖추어 인사를 하려고 큰방으로 찾아갔습니다.
등은봉 스님은 위산 스님이 오는 것을 보자마자 벌렁 드러눕더니 자는 시늉을 하였습니다.
위산 스님은 할 수 없이 방장실로 그냥 되돌아갔습니다.
그러자 등은봉 스님은 바로 걸망을 챙겨 떠나버렸습니다.
조금 있다가 위산 스님은 시자에게 물었습니다.
“등은봉 사숙님이 아직 계시느냐?”
“이미 떠나셨습니다.”
“가실 때 무슨 말씀이 없으시더냐?”
“아무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말씀이 없었다고 하지 말아라. 그 소리가 우레와 같았느니라.”
등은봉 스님이 해제가 되어 마조 스님 회상을 하직하려고 하자 마조 스님이 말했습니다.
“어디로 가려느냐?”
“석두 스님에게 가렵니다.”
“석두로 가는 길은 미끄럽다네.”
“장대나무를 짚고 가다가 장터를 만나면 한바탕 놀다가 가겠습니다.”
그리하여 바로 인사를 드리고는 석두 스님이 계신 곳에 도착하자마자
선상을 한 바퀴 돌더니 지팡이로 한번 내리치고는 물었습니다.
“무슨 소식인고?”
그러자 석두 스님은 말했습니다.
“아이고! 아이고!”
이에 등은봉 스님은 그만 말이 막혀버렸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마조 스님에게 다시 돌아와서 저간의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마조 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대는 다시 가서 석두가 ‘아이고! 아이고!’하거든 ‘허허!’하고 두 번 소리를 내거라.”
등은봉 스님이 다시 가서 앞서 했던 그대로 물었더니
석두 스님은 이번에는 먼저 “허허!”하고 두 번 소리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등은봉 스님은 이번에도 그만 말이 막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또다시 마조 스님에게 돌아와 말씀드렸더니 마조 스님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석두로 가는 길은 미끄럽다고 하지 않았더냐?”
등은봉 스님이 단하 선사를 찾아가다가 산밑에서 단하 선사를 만나서 물었습니다.
“단하산이 어디에 있소.”
이에 단하 선사가 말했습니다.
“저 푸르스름한 것이오.”
이에 선사가 앞으로 가까이 가더니 멱살을 잡고서 말했습니다.
“이것이 아닌가?”
이에 단하 선사가 말했습니다.
“진짜 사자새끼는 한번 건드리면 바로 움직이는구나.”
그러자 등은봉 스님은 그 자리에서 멱살 잡았던 것을 놓았습니다.
등은봉 스님은 만행을 하면서 말없는 가운데 우레소리를 내기도 하고
멱살잡이도 하고 때로는 미끄러운 길에서 헤매기도 하면서 길을 다녔습니다.
해제를 하고서도 많은 선지식을 참방하면서 법을 물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중 남전 선사에게 정병으로 인하여
한소리를 얻어듣고는 자기의 공부경계를 내보였으나
결국 제대로 된 안목을 인정받지 못하였습니다.
도라고 하는 것은 너무 급하게 서둘러도 이루지 못하고
그렇다고 해서 너무 느슨하게 한다면 이 역시 공부를 이루지 못합니다.
이미 피리 불기에 능숙하다면 박수 치는 것에도 능해야 합니다.
만일 박수 치는 것에 능하지 못하다면 피리를 부는 이가 헛수고를 하게 될 것입니다.
해제대중들에게 묻겠습니다.
남전 스님이 “정병은 경계이다. 그대는 경계를 건드리지 말고 물만 가져오라”고 하니
등은봉은 정병을 가져다가 선사의 앞에서 쏟아버렸는데
이에 대하여 ‘함부로 쏟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등은봉 선사가 함부로 쏟은 것입니까?
한철 동안 정진 끝에도 알아차리지 못한 대중이 있다면 해제길이 곧 결제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남전부지정병 南泉不指淨甁이어니
은봉하증사수 隱峰何曾瀉水리오
종교타와찬구 從敎打瓦鑽龜나
불법부재저리 佛法不在這裏니라
남전이 정병을 가리키지 않았거늘
등은봉이 어떻게 물을 쏟았겠는가.
아무리 기와를 깨고 거북껍질을 태우더라도
불법의 도리는 거기에 없구나.□
2548(2004) (음)1. 15 동안거 해제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