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들에게 지금은 아직 겨울이다. 옷차림새가 여전히 겨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땅은 사람들보다도 먼저 봄의 기운을 느끼고 있다. 저만치 오는 봄을 대지는 먼저 알고 있는 것이다. 엊그제 온통 겨울이었던 뜨락에 파랗게 고개를 내민 상사화의 순을 보았다. 아직은 시린 땅 위에 고개를 내민 상사화의 색은 그래서 더욱 파랗게 보였다. 잎이 나면 꽃이 없고 꽃이 피면 잎이 지는 애달픈 상사화. 어쩌면 애달픈 가슴 저 혼자 어쩌지 못해 아직 봄이 채 오지도 않은 땅 위로 누구보다 먼저 고개를 내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상사화의 표정은 슬프지만 나는 그런 상사화를 보며 봄을 느낀다.
지난 주말에는 절에 머무는 몇 분과 해미천에 새를 보러 갔다. 이제 새들이 더 북쪽으로 올라간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겨우내 볼 수 있는 철새를 더 이상은 이곳에서 볼 수 없다니 아쉬웠다. 이번 겨울에는 이 지역 탐조팀을 이끄는 선생님들과 몇 번 천수만에 나가 새를 보았다. 그것은 내 무료한 겨울의 위안이기도 했다. 석양을 향해 날아가는 새의 무리들을 보며 자연은 얼마나 아름다운 생명의 둥지인가를 실감하기도 했다.
아직 해미천에는 이별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새들의 유영이 한가롭기만 했다. 마치 떠나지 않을 것처럼 새들은 평화로웠다. 스코우프를 통해 새들의 유영을 하나하나 보았다. 청둥오리 혹부리오리 그리고 고니. 전에 배웠다 잊어버린 새들의 이름을 해미천에 와서 선생님에게 다시 배웠다. 그리고 백조라 알려진 고니의 우아한 자태는 빠른 발놀림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곧 새들이 떠나지만 해미천에는 이별의 흔적이 없다. 단지 사람들만이 찾아와 떠나는 새와의 이별을 아쉬워할 뿐이다.
꽃은 피고 새들이 떠나는 자리에 봄은 온다. 만남과 이별은 마치 물의 흐름과 같다. 흐름은 있던 것과 있을 것이 만났다 헤어지는 순간의 연속이다. 흐름 속에는 언제나 만남과 헤어짐이 함께 있는 것이다. 헤어짐이 슬픔만이 아니고 만남이 또한 즐거움만이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기도 하다. 즐겁지도 슬프지도 않은 그 자리. 그러나 그 자리는 한없이 아름답다. 역동적인가 하면 정적이며 매였는가 하면 이미 달관해버린 그 자리는 오직 흐름으로 아름다울 뿐이다. 우리를 매혹케 하는 생명의 모습이다.
동안거를 마친 도반이 이 먼 곳을 찾아왔다. 그의 걸망 위에는 봄소식이 투명하게 앉아 있다. 그가 걸망을 내 방안에 내리는 순간 봄소식들은 가볍게 내 방안을 날아다닌다. 봄의 전령, 햇살들. 봄이 오긴 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