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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진정 도량으로 받들어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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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해인 2004년 02월 264호
환경의 문제가 사회적 갈등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갈등=사회 혼란이라는 등식은 곤란하다. 굳이 등식이 성립된다면, 그것은 개발로 인한 파괴와 훼손 대 불교의 핵심인 연기緣起와 자비와의 충돌이며, 이는 개발지상주의에 내포된 속도주의와 물량주의를 넘어서서 온갖것의 조화로운 관계의 회복을 위한 불가피한 과정이다.

더딘 불교환경 발걸음
불교환경활동의 내외적 조건은 만족스럽지 못하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불교의 환경활동은 당위이다. 불교 밖의 요구가 있다는 것을 거론하기 이전에 연기론에 입각한 세계인식과 온 생명 존중의 실천이라는 불교의 자기회복을 위한 성찰적 일상이다. 따라서 불교환경활동은 신행·수행과 별개로 있는 무엇이 아니며, 바로 신앙의 한가운데이다. 최근에서야 불교의 환경활동을 본격적으로 펼치기 위한 분위기가 형성되었으며, 늦었지만 매우 다행스런 현상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환경이라는 장을 통하여 구현하려고 하는 환경단체가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몇 있다. 1988년 한국불교사회교육원으로 출범한 불교환경교육원을 시작으로 해서 2001년 창립한 불교환경연대까지 8개에 이른다. 종단에서도 환경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조계종에서는 1999년 환경위원회, 천태종은 지난해 12월 창립된 ‘나누며 하나 되기 운동본부’ 산하에 환경위원회를, 진각종도 청정세상가꾸기운동본부를 설치하였다. 최근에는 주요 불교단체마다 산하에 위원회 식으로 환경 관련 업무를 챙기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그런데도 불교의 환경활동의 발걸음은 더디다. 아래의 세 가지 조건이 부재하다는 것이 더 앞선 원인이라고 본다.
▷출재가를 불문한 전문활동가의 절대적인 부족이다.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인데, 관심은 높다고 하지만 전문적으로 활동하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는다. 한 단체나 기구에 상근 인원이 다섯 명을 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정책 및 기획, 교육, 조직, 홍보, 현장 대응, 연구 및 조사와 단체 내 운영 등 최소 인원이 충족되지 않은 가운데 운영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불교단체의 규모를 얘기할 때 상근자가 다섯 명 정도 되면 꽤 큰 단체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참고로, 환경운동연합은 80여 명, 녹색연합은 70여 명, 환경정의시민연대는 25명 정도의 상근자가 활동하고 있다.
▷이러다보니 수행환경 침해 사안이 발생했어도 전문가를 활용한다거나, 개발에 대응할 전략 전술을 수립한다든가 하는 일은 뒷전이고 상황에 즉자적으로 대처하는 일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환경단체나 기구에서 활동하고 싶은 사람이 있어도 장기적인 계획과 전망을 확보할 수 없어 망설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다보니 한 사안의 경험이 대응력을 높이는 결과로 온전히 축적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재정적 뒷받침 없이는 환경활동도 불가능하다. 재정이 없이는 전문활동가의 부족을 메울 수 없고, 전문가의 참여, 효과적인 대응 및 교육, 조직, 홍보, 연구 및 조사 등은 불가능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활동가가 폭넓어지고 경험이 쌓여져야 하나 그렇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에 머문다.

환경은 조화로움의 복원
환경활동은 단순히 우리들 삶의 자연적인 조건, 즉 물, 대기, 소음, 경관의 문제를 해소하는 것 이상이다. 환경문제의 발생 원인이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에 있는 만큼 우리의 삶의 태도와 실생활을 물량주의와 거대주의에서 소박하고 관계의 조화로움이라는 길로 우리가 먼저 가는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이끄는 것이다.
1992년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세계 170여 나라의 대표들이 모여 열린 유엔환경개발회의에서 ‘의제 21’(21세기 지구환경 보전을 위해 전 인류가 논의하고 실천해야 할 과제)을 채택했는데, 이로써 환경을 둘러싼 이해당사자들간의 협의 구조의 생성, 환경 개선을 위한 목표치를 정하고, 목표치의 달성 여부를 점검하고 평가하기 위한 구조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의제는 선언이나 강령과는 의미가 매우 다르다. 선언이나 강령이 위에서 아래로 또는 아래에서 위로의 일방통행식 의사 전달 및 관철에 가깝다면, 의제는 다자간 협의를 통한 행동계획이다. 즉, 환경과 관련된 이해당사자(시민, 기업, 중앙정부 또는 지방정부, 전문가, 시민단체 등)들의 협의와 합의를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이해당사자 간에는 어떤 때는 매우 첨예한 입장의 차이를 나타낼 수 있는데, 이럴 경우에도 어느 한쪽을 배제하거나 소외시켜서는 안 된다. 어렵더라도 함께 해야 하며, 행동계획과 이를 통해 설정한 목표치가 불만족스럽더라도 협의를 거친 합의라면 존중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 ‘의제 21’이 담고 있는 간과해서는 안 될 의미이다.

노무현정부 환경정책 ‘F’
불교환경활동은 지난한 과정이다. 우리 스스로의 욕망을 다스리지 않으면 안 될 일이기에 그렇다. 그러나 다시 강조하지만, 불교의 환경활동은 부처님 가르침의 실천이며 우주적·사회적 회향이다. 그러므로 불제자인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우리에게는 당연한 과업이다. 또한 당위이기에 앞서 한국사회에서의 불교의 위치와도 연관된 사안이다. 불교의 환경활동을 일부에서는 불교이기주의라고 매도하는 현실이 지금의 상황이다. 이는 개발만능주의에 지독히 오염되었거나, 개발로 인한 이익을 취하려는 사람들의 좁은 소견이지만, 그냥 밀쳐내기에는 예사롭지 않은 부분이 있는데, 바로 불교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 동안의 불교의 살아온 모습을 비추고 있는 거울이기도 하며, 환경활동의 방법에 대한 냉정한 비판이기도 하다.
지난해 12월 녹색연합이 발표한 ‘2003년 환경분야 평가 설문조사’(환경관련 전문가 220명 참여) 결과를 보면 노무현정부의 환경정책은 F학점이다. 100점 만점으로 평가한 참여정부의 환경현안 및 문제해결 노력에 대한 점수는 응답자의 과반수가 훨씬 넘는 61.82%가 낙제점인 F학점을 주었으며, D학점(24.09 %), C학점(11.82%), B학점(2.27%)의 순이었다.

산을 도량처럼 받들길
이제 불교가 평가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그 동안 환경단체들은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불교의 건축불사에 대해 내심 불만을 품어왔다. 언제까지 불교의 권위에 기대어 평가를 비켜갈 수는 없다. 평가를 저어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겐 더 날카로운 질문이 있다. 참으로 불요불급하고 원만한 불사였던가, 산을 진정 도량으로 받들어왔는가?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