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저마다 절실히 바라는 게 있는데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이 달의 이야기 - 류승원 2004년 02월 264호
세상 돌아가는 일을 보면 살아가는 일이 점점 더 힘겨워지고 재미없어지는 것 같다. 사람 사는 일만 그런 게 아니라 뭇 생명 모두가 그런 것 같다.
지난 늦가을 무렵 길안-영천간 땅속 물길공사(지하 수로공사) 대책위원장인 김하국 씨에게 안부전화를 했을 때 그의 대답은 참으로 덤덤했다.
“지난 태풍으로 사과농사 폐농했고…, 뭐 다른 일거리 찾아 좀 할라 캅니다. 마을 사람들은 수자원공사로부터 관정유지비, 농작물 감소비 몇 푼 받는 게 다지요. 그 물 좋던 하천은 비 온 후 얼마 안 되면 메말라버리니까 생물들이 다 사라지고…. 뭐 그럭저럭 살아갑니다.”
그는 느닷없이 마을 하천과 샘물이 말라버렸다는 사실에 처음에는 황당했으나, 수자원공사가 마을 주민들을 속이면서 땅속 터널을 뚫은 데서 이런 재난이 비롯되었음을 알고 분노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 거대한 공룡 같은 이익집단인 수자원공사를 상대로 싸움을 시작했는데 그게 벌써 8, 9년 전의 일이었다. 길안-영천간 땅속 물길 때문에 그 물 좋고 산 좋던 마을들에 닥친 사건들 즉, 샘물과 하천이 마르고, 물과 더불어 살아가는 수많은 생물들이 사라지고, 농사는 관정을 뚫어 나오는 지하수에 의존해야 하고, 수확량이 감소하는 사건들을 주민들은 이제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오랜 싸움 기간 동안 그들의 유일한 바람은 ‘제발 산천에 물이 흐르고 샘이 솟도록 손대지 말고 내버려두라’였던 것이다.
한편 낙동강공동체 김상화 대표는 부산 을숙도의 뭇 생명체들이 사라진데 대해 한이 맺힌 사람이다. 시인이면서 음악공부를 했던 그는 젊은 시절 을숙도 갈대밭과 새들을 노래했다. 그러나 개발이 시작되면서 철새들이 사라지자 그는 슬픈 노래를 했고, 수자원공사에 의해 낙동강 하구둑이 건설되어 강물의 흐름이 막히고 을숙도가 시멘트로 덮이게 되자 절망의 노래를 부르다가 쓰레기매립장과 분뇨처리장까지 들어서자 마침내 시와 노래를 접어버렸다. 그 동안 그는 낙동강 발원지 태백산을 수백 번 오르내리면서 낙동강 생명복원을 위한 소원을 빌었고, 유역주민과 낙동강 뭇 생명체들의 건전한 삶을 위해서 낙동강 상하류 전 유역주민들이 공동체가 되어 노력할 것을 주창하고 있다. 그가 낙동강 따라 심은 버드나무만 해도 수천 그루가 될 것이다. 그는 지금 과거와 현재의 낙동강 상황을 역사에 남기려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의 꿈은 아마 을숙도에 갈대밭이 무성하고 철새들이 돌아오는 것뿐만 아니라 낙동강에 뭇 생명들이 돌아오고 상하류 주민들이 화합하여 사는 것일 것이다.

청송, 산 좋고 물 좋은 산골에서 농사짓는 김하국 씨가 산골이 그대로 산 좋고 물 좋기를 바라고, 김상화 씨가 낙동강이 생명이 넘치는 유유히 흐르는 강이기를 바라듯이, 산천에 생명기반을 두고 살아가는 뭇 생명체들 모두가 저마다 바라는 게 있을 것이다. 맑은 계곡에 살아가는 도롱뇽이나 가재는 그 계곡이 그대로 맑게 흐르기를 바랄 것이고, 산등성이 양지쪽에 살아가는 진달래나 억새는 산등성이가 그대로 양지쪽이길 바랄 것이고 물가에 살아가는 갈대, 버드나무, 부들은 그들 사는 곳이 그대로 물가이기를 바랄 것이다. 이들 모두가 이처럼 저마다 바라는 게 있고, 저마다 그 바람이 달라도 그 모두가 소박하고 또 절실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어찌하여 가진 자들의 바람들은 잔혹스럽고 탐욕스럽기만 한가! 그들은 하나같이 소박한 사람들과 뭇 생명체들의 절실한 바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산에 바람구멍을 내거나 갯벌을 메우거나 산간 오지고 평야고 할 것 없이 휭하니 고속도로를 내거나, 멀쩡한 경작지에다가 시멘트를 덮고 초고층 건물을 올리는 것을 잘 하는 짓인 줄로 알고 열심히 그 일을 수행한다. 그런 사람들은, 그렇게 하면 지금보다 3배나 더 많아진 길 위로 우리 나라 4,800만명이 2사람당 1대꼴로 자가용을 타고 씽씽 달릴 것이라고 자랑한다. 그러면 권력자나 부자가 되지 못한 어리석은 뭇 중생들은 귀가 솔깃해서 그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그러나 자연은 그런 식의 사람의 바람에 응해줄 만큼 자비로울 것 같지가 않다. 약 300년 전의 우리 나라 인구는 남북한 합쳐 약 600만 명이었다고 한다. 오늘날처럼 무역량이 많지 않았던 시절이었음을 고려한다면 이 인구가 우리 금수강산의 구조와 기능을 다치지 않은 채 자급자족할 수 있는 수용력의 한계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남북한 합친 인구인 6,700만명은 지나치게 많은 게 아닌가? 이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의사가 되고, 변호사가 되고 재벌기업꾼이 되어 호화롭게 살겠다고 한다면, 또 이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대통령이 되고 장관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어 우리 나라 산과 강과 평야와 바다를 요리하겠다고 설친다면 하늘인들 어찌 노하지 않고 배겨내겠는가.
스님, 신부님, 목사님이 그렇게도 많은 절을 하면서 새만금 갯벌이 살아 있기를 바랐다는데, 또 천성산 내원사 지율 스님이 끼니를 중지하는 것으로 천성산 뭇 생명체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뭇 중생들을 향해 호소하고 있다고 한다. 일부분이나마 지율 스님의 심정을 느껴보려 천성산을 올라보았다. 내원사를 끼고 흐르는 긴 계곡물은 맑고 투명했다. 겨울이라 차가운 물이 흐르지만 봄이 오면 지율 스님이 사랑하는 도롱뇽과 그 친구들이 다시 귀여운 자태를 나타낼 것이다. 가파른 천성산 비탈의 굴참나무는 두꺼운 껍질로 뒤덮인 줄기로, 서어나무는 근육질의 줄기로, 노각나무는 얼룩무늬 줄기로 저마다 개성을 자랑하면서, 때로는 집단으로 때로는 제각각 자리를 잡고 동면하고 있다. 천성산 제2봉에 오르니 저 멀리 북쪽으로 정족산이, 남동쪽으로 천성산 정상이 보인다. 이 산들을 가로질러 고속철도 터널이 뚫고 지나갈 것이라고 한다. 그 큰 구멍을 뚫어버리면 고산습지의 상징인 끈끈이귀개와 산간계류의 상징인 도롱뇽의 앙증맞은 귀여운 모습을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지율 스님의 바람이 무엇인지 알 것도 같다.
서울 어느 도심지 책상에 앉아 우리 나라 지도 위에 고속철도 선을 그은 자들은 스스로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나 있을까? 산등성이에서 부는 바람이 유난히도 차갑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