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는 단연 ‘불교-환경의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산(사패산) 관통터널 반대, 천성산·금정산 관통터널 반대, 새만금 갯벌지키기운동 등에 불교계가 전면에 등장했다. 등장인물로 볼 때에도 단순히 불교계 시민사회단체들뿐만 아니라 원로회의, 총무원장, 교구본사주지 나아가서는 외국인인 틱낫한 스님까지도 합세했다. 북한산 문제는 새만금이나 천성산 문제와 조금 다른 측면이 있다. 우선 새만금 갯벌과 천성산 습지의 보호가치와 북한산 숲의 보호가치는 달리 평가될 개연성이 크다. 그리고 북한산은 국립공원 관리정책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따라서 우리는 북한산 문제는 멀리 볼 때에 터널 관통을 문제삼으면서도 자연공원법의 개정 등과 같은 전반적인 국립공원 관리정책의 변화를 유도하는 쪽으로 큰 그림을 그려나갔어야 했다고 확신한다.
현재의 국립공원제도는 국립공원을 지정하기 시작한 초창기 취지였던, 개발을 통한 관광자원으로의 활용이라는 기능에서 자연환경의 보존과 지속 가능한 이용을 위한 기능으로 전환되지 못한 상태에 있다. 따라서 국립공원에 대한 근본적인 제도개선 및 정책전환을 중심적 목표로 두지 않을 경우 다른 국립공원에 유사한 문제들이 지속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을 차단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환경운동이 결과적으로 사안이나 이슈 중심의 운동으로 지속될 개연성을 극복하지 못하는 것으로 된다.
다음으로 짚어보아야 할 것은 사회적 갈등에 대한 불교적 입장과 해결방법의 문제이다. 《대반야경》에 이런 구절이 있다. ‘보살은 조화(평형)가 깨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다툼을 잘 화합시킨다.’ 이 글귀에서 잘 새겨야 할 것이 ‘조화(평형)’라는 말과 ‘화합’이라는 말이다. ‘조화(평형)’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물질적 이해관계가 지배하고 환경정의가 무참히 버려질 때 환경정의의 목소리에 힘을 보태서 이들의 조화와 균형을 꾀해야 할 것이다. 짓밟히는 생명들의 아우성과 신음소리를 대변하고 이에 귀 기울이도록 여론을 환기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는 ‘화합’을 실현하는 과제가 남게 된다. ‘화합’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이해당사자들 사이의 ‘마주하기’와 ‘이해하기’가 불가결한 요소라고 생각된다. 어떤 이들은 비웃겠지만 우리는 북한산터널 반대 농성이 터널 공사 현장에서 한창일 때에, 환경단체, 도로공사 관계자, 정부관계자, 지역주민 등이 함께 현장에서 ‘걷기명상’을 하고 여러 날에 걸쳐 각자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한 토론을 진행해보자는 가벼운 제안을 한 적이 있다. 불교계가 환경과 생명을 지키는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환경과 생명을 파괴하는 행동이, (환경과 생명을) 파괴하는 그 당사자들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 스스로가 그것을 고통으로 자각하지 않는 이상 그런 일들은 영원히 끝나지 않게 될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환경보전을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의 책임있는 인사들의 의식변화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도로공사의 경우 계획단계에서 ‘선을 긋는 사람’이 산을 지나는 길을 그을 때에 한번쯤 손끝에 ‘양심의 떨림’이 있다면 우리의 환경문제는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단언하건대, 불교계가 자기 자신의 근본정신과 가치에 입각해서 갈등에 끼어들 때에는 바로 이러한 변화, 이러한 깨달음을 유도해내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북한산(사패산) 관통터널 반대운동은 그것을 통해 불교계가 환경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뚜렷한 인식을 주는 계기는 되었을지 몰라도, ‘새로운 불교적 환경운동’의 장을 열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끝으로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이 있는데, 그것은 조계종과 같은 기성의 제도화된 교단과 NGO활동과의 차이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북한산(사패산) 문제의 경우 기성의 제도교단에, 그 상층부 지도자들에게 지나치게 의존한 것은 아닌지 점검해보아야 한다.
불교, 기독교, 천주교와 같은 기성의 제도화된 교단은 국가권력(정부) 및 기업(시장)과는 근본적으로 일정한 연대관계 속에서 존재하게 되어 있다. 국가권력(정부)은 이들 제도종교에 면세혜택 및 각종 지원 등을 통해 연대의 고리를 갖고 있으며, 이들 제도종교 또한 사회적 갈등의 완충적 역할을 통해 국가권력(정부)의 정책시행에 유리한 여론 환경을 만드는 간접적 역할을 종종 수행한다. 이것은 국가권력(정부)과 기성제도종교간의 오래 된 관행으로 쉽사리 그 체질이 변화되기는 어려운 문제이다.
따라서 NGO운동은 그것이 환경운동이든, 사회개혁운동이든 간에 항상 기성의 제도교단 또한 비판적 연대의 대상이라는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고 본다. 북한산(사패산) 문제에서 불교계가 종정과 총무원장이 나섰고, 또 한 발 물러서면서 불교환경단체들이 반발하는 등의 과정을 보면 이 점은 더욱 자명해진다.
불교NGO운동이 ‘불교적’이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기성찰과 자기정화를 하나의 세계관으로, 세상의 문제들을 바라보는 중심적인 관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