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스님 폭행사건
2002년 2월 18일 공사현장 인근인 북한산 수호도량 철마선원에서 기도정진 중이던 회룡사 비구니스님 3명 폭행사건은 3월 5일 1만여 명의 사부대중이 운집한 범불교도대회로 이어진다. 범불교도대회와 함께 조계종 공동대책위원회가 동시에 출범한다. 이후 정부의 카운터파트너는 조계종으로 확고하게 굳어졌으며 따라서 정부 역시 종단에 대한 회유와 압박에만 온 역량을 기울였다. 이는 조계종이 모든 것에 대한 책임을 떠안아야 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 역반응이기도 했다.
백지화 공약
2002년 연말 대선정국에 불교계도 크게 들썩였다. 당시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12월 조계종 총무원을 전격 방문해 각 종단 대표자들에게 ‘북한산 관통노선을 백지화하고 대안노선을 검토하겠다’는 공약을 문서로 직접 전달한 것이다. 이로 인하여 노 후보 쪽으로 불심은 급격하게 기울었다는 것이 당시 선대위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증언이다. 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불교계는 희망에 부풀었다. 이후 불교계는 모토의 서두에 ‘자연환경 보존 및 수행환경 수호’ 대신 ‘공약사항 이행’을 먼저 내걸고 정부에 대한 압박강도를 높이는 수단으로 요긴하게 활용했다.
공론조사의 무산
공론조사의 무산은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는다. 북한산 문제는 상대적으로 새만금 갯벌과 부안 핵폐기장에 비해 주목을 받지 못하는 사안이었다. 따라서 관통반대의 설득력은 전 국민적인 아젠다로는 부상하지 못했다. 2003년 7월 노 대통령이 제안한 공론조사는 기존의 여론조사와는 달리 전문화되고 방송토론 등 미디어를 이용해 대중적 공의를 모은다는 특징이 있었다. 공론조사가 실시됐다면 준비작업 등으로 최소 6개월은 시간을 버는 이점과 무엇보다 관통노선의 부당성을 국민에게 알려 호응의 폭을 비약적으로 넓히는 호재가 될 수도 있었다. 정부 관계자들조차 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반대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충분히 해볼 만한 싸움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공약이행만을 집중적으로 채근해온 불교계는 ‘공론조사 수용은 곧 공약파기 인정’이라는 등식에 매몰된 분위기였고 시민사회단체들도 무조건 반대 입장을 굳혔다. 이들은 정부가 결국 공론조사 없이 강행 방침을 세운 것으로 전해지자 즉각 수용해야 한다고 말을 바꾸며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노선재검토의 우회노선 우세 결과 묵살, 훼불문건 소동 등 불교계와 환경단체의 이러한 불신감을 이해하고도 남을 정부의 무책임하고 기만적인 행태에는 철저한 반성이 뒤따라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 종정예하 예방
2년간 지속돼온 갈등을 전격적으로 마무리지은 건 노무현 대통령의 법전 종정예하 예방이다. 외국자본의 철수와 시공사의 공사 포기 압박으로 궁지에 몰린 데다 거부권을 행사하면서까지 막으려 했던 대선자금 특검법이 국회에서 거듭 통과되면서 리더십 붕괴상태에 이른 노 대통령은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심정이 절박했다는 관측이다. 극심한 사회적 소모의 업장을 끊으려 한 조계종의 대승적 결단은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평을 받았다. 그러나 사부대중의 공의를 모으는 절차가 수반되지 않아 불교계 재야단체의 반발을 사기도 했고 환경단체들은 앞으로 조계종과 함께 손을 잡을 일은 없을 것이라며 강한 불만을 토로해 잡음이 적지 않았다.
우리가 가야 할 길
요컨대 북한산은 많은 물음표를 남겼다. 우선 ‘우리 자신은 과연 깨끗한가?’ 사격을 신장한다는 명목으로 산천을 마구 파헤치고 산속 암자 깊숙한 곳까지 차로를 내고야 마는 반환경적 불사가 횡행되는 세태에서 북한산을 바라보며 떳떳하기만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스스로 죽비를 들어야 할지 여부를 곰곰이 따져봐야 한다. 생명환경보존수칙인 ‘불교환경의제21’이 종단 차원에서 기획된 것은 관통도로라는 프리즘으로 우리 자신을 되돌아본 결과다. ‘우리는 과연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도 가슴 한켠에 묵직하다. 교통혼잡비용이 연 10조원을 넘고 환경개선비용도 4조원이 넘는 부작용을 낳는 수도권 과밀을 방치해서는 아무리 산을 뚫고 도로를 놓는다 해도 도루묵일 뿐이다. 이러한 물음표들에 대해 적절한 마침표를 생산하지 못한다면 북한산을 두 번 죽이는 일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