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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선동八仙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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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류동천 - 김홍영 2004년 02월 264호
가야산은 경관이 기절奇絶하여 예로부터 최고운崔孤雲 이후 선인仙人 석자釋子가 깃들여 사는 신령한 산으로 그 이름이 높다.
옛날에 여덟 명의 선비가 가야산을 유람하면서 이 산 동쪽의 무릉동武陵洞에 놀았는데, 이 동은 일찍이 최고운이 놀았던 유지遺址이다. 당시 여덟 명의 선비 가운데 지암遲庵 이동항李東沆(1736~1804)과 만각재晩覺齋 이동급李東汲(1738~1811) 형제가 있었는데, 그 일행이 마침 여덟 사람이고 그들이 논 곳이 유선儒仙, 즉 최고운이 놀던 유지라 하여 이 골의 이름을 ‘팔선동’으로 고치고 만각재가 <무릉동팔선시武陵洞八仙詩>를 지었다.
만각재는 그 후 팔선동의 기절한 경관을 그의 벗 천옹喘翁 최흥립崔興(1736~1809)에게 말했는데, 천옹은 그 이야기를 듣고서 그곳으로 쏠리는 생각을 견디지 못하여 만각재의 시에 차운하여 다음과 같이 읊었다.

선향하처시仙鄕何處是 선향이 어느 곳인가
선객만상봉仙客晩相逢 선객이 늦게 서로 만났네.
선월회중조仙月懷中照 선계의 달은 마음 가운데 비치고
선운수상농仙雲袖上濃 선계의 구름은 소매 위에 짙구나.
선방폐은학仙尨吠隱壑 선계의 삽살개는 짖으며 골짜기에 숨고
선조제귀봉仙鳥啼歸峯 선계의 새는 지저귀며 봉우리로 돌아가네.
선분동어자仙分同漁子 선계의 연분 어부와 같아서
선원공혹봉仙源恐或封 선계의 근원 혹 닫힐까 두렵네.

‘팔선시’에 차운한 것이다 보니 여덟 구의 첫머리를 모두 선자仙字로 시작한 것이 이 시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이 시의 첫 연에 의하면 이들 팔선의 유람은 노년의 일임을 알 수 있다. 천옹은 여덟 선객과 함께 팔선동에 가지는 않았으나 만각재의 이야기를 듣고 둘째 셋째 연에서 차례로 달·구름·삽살개·새를 선계仙界의 경물로 묘사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연에서는 우연히 고기잡이배를 타고 무릉도원에 이른 어부가 세상에 나왔다가 다시 그곳을 찾으려 했으나 찾지 못했다는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기桃花源記>의 고사를 인용하여 선계의 연분이 그 어부와는 달리 계속 이어지기를 희망하였다.
이제 설이 지나서 계곡의 얼음이 점차 녹아 장차 도화가 만발하는 계절이 이를 것이다. 그 즈음 계곡에 도화가 떠내려오는 물을 거슬러 ‘선계의 근원’을 찾아 ‘선계의 연분’을 다시 이어 청유淸遊를 즐길 오늘날의 팔선은 과연 그 누구이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