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와 이론
어떤 사실을 설명하는 것과 어떤 이론을 증명하는 것은 서로 다른 분야이다. 표면적으로 보기에, 모든 종교 전통에 적용할 수 있는 종교이론이라면 그 이론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전 지구상에 동일하게 발견되어야 한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프레이저, 타일러, 그리고 엘리아데 등은 가능한 한 여러 곳에서 자신의 이론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자료를 발견하고자 하였다. 그렇지만, 그 자료라고 하는 것도 주관성이 이미 개입되어 있는 연구 조사보고서 등 2차 자료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주관과 객관이라고 하는 논쟁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따라서 자료를 바탕으로 해서 이론화를 추구하는 것은 왜곡과 몰이해의 위험성을 스스로 내재하고 있다고 하겠다.
증거와 이론과 관련하여, 프로이드와 마르크스는 비교적 자유로운 처지에 있었다. 이들의 종교 이론은 얼핏 보기에 타일러, 프레이저, 그리고 엘리아데에 의해 제기된 것들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마르크스와 프로이드는 자료를 바탕으로 그들의 이론을 만들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들과 다르다. 대신 그들은 종교를 만들어내는 근본적인 심리과정을 인간으로부터 발견하고자 하였다. 마르크스로서는 뉴 기니아(New Guinea)의 부족 종교를 연구하든 아니면 유럽의 기독교를 연구하든 간에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특정한 종교의 이면에는 어디에나 가난한 자들에게 다른 좋은 세계에 대한 희망을 가져다주는 그리고 도덕률에 의해 부유한 자들의 이익을 보호해주는 등 계급간의 갈등이 항상 존재한다는 사실이 중요하였다. 프로이드도 모든 신앙과 의례의 원인이 인간이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외디푸스 콤플렉스에 의한 긴장과 노이로제에서 직접 유래하였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이들 둘은 전 세계로부터 종교에 관한 사실들을 수집할 필요가 없었다.
이러한 이론들은 계급간의 갈등과 외디푸스 콤플렉스로부터 어떻게 종교가 실제로 생겨났는가를 보여주어야 하는 문제가 있다. 프로이드나 마르크스는 그들의 종교에 대한 이해가 단순히 그들의 추측에서 나온 것이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세계의 여러 종교는 그 형태나 본질에 있어서 서로 매우 다르다. 그러므로 중국의 민속 종교 또는 호주의 토테미즘이 유태교 기독교 전통의 일신교를 만든 것과 같은 심리적인 요소 그리고 사회적인 힘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에 대해 프로이드와 마르크스는 설명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렇듯, 마르크스와 프로이드가 유럽 유일신 종교만을 바탕으로 그들 연구를 진행한 결과, 그들의 연구가 갖는 가치는 불가피한 한계를 갖게 되었다. 보편적인 주장은 대개 지엽적인 잡다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그들이 동원한 증거가 이론의 범주를 지탱하기에 부족하였던 것이다.
뒤르껭, 이반스-프리차드, 그리고 기어츠 등은 그들의 이론과 증거가 일종의 타협으로 정리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타일러와 프레이저, 그리고 엘리아데의 포괄적인 종교 연구를 용납하기 어려웠고 그리고 마르크스와 프로이드의 유럽 중심의 연구가 너무 한정되어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이 보기에, 진리는 이들 사이의 중간 어디쯤에 있는 것이었다. 뒤르껭도 역시 자신이 개인적인 심리나 계급 갈등에서가 아니라 사회의 필요에 의해서 모든 종교가 생겨났다고 하는 구조적인 요인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구조는 ‘보편성을 담보할 수 있는’ 그리고 ‘잘 다듬어진 실험’을 통하여 설명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비록 뒤르껭이 마르크스나 프로이드보다 그의 연구과정을 과학적으로 진행하고자 하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르크스와 프로이드와 동일한 문제에 부닥치고 말았다. 호주에서 발견한 증거가 갖는 특수성 그것만으로는 그의 이론이 보편적인 주장이라고 하는 것을 뒷받침하기에는 부족하였던 것이다.
이반스-프리차드나 기어츠 등 이론가들은 종교의 본질에 대한 일반적인 이론화 작업으로부터 한 발짝 물러나 어떤 일반적인 이론이 만들어지기 전에 이미 개별적인 전통에 대한 꾸준한 연구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런 관점에서, 이반스-프리차드는 수단에서 면밀한 현장조사를 한 바 있고,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포괄적인 연구를 시작하고자 하였다. 이와 달리, 기어츠는 인류학과 종교에 대한 포괄적인 이론의 가능성을 온전히 부정할 만큼 이론화 작업에 매우 비판적이었다. 기어츠는 기존의 종교학자들이 저지른 실수는 그들의 목적에 도달하는 방법이나 태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목적 그것 자체에 있다고 생각하였다. 전 세계에 산재해 있는 독립된 사회들의 독자성을 인정한다면, 보편적인 이론이 가지는 전체 개념은 종교 등 문화적인 토대에 적용될 수 있어야 했다. 문화에 대해 참인 것은 종교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참이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개별적인 제사의식, 사회강령, 그리고 심지어 감정적인 상태를 연구하고 해석할 수 있다. 그렇지만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일반적인 종교의 포괄적인 이론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증거의 범위가 그러한 이론을 뒷받침하기에 항상 부족할 것이다.
결론으로, 이반스-프리차드의 경고와 기어츠의 부정적인 태도로 말미암아, 이제껏 있어온 종교 이론의 일반적인 형태에 대해 의심만 깊어지고 또 회의만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과학’이라는 말이 일반화된 주장의 통일성 있는 체계를 의미하는 한, 현재 이론가들은 ‘과학’이라는 말을 종교적인 연구의 영역에 계속해서 사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론과 신앙
어떤 종교학자도 그들이 살아간 시대에 대해 아무런 편견이 없는 상태에서 저술을 남기지 않았다. 종교 이론의 이면에는 개인적으로 특정한 종교에 확신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이론가 개인의 신앙과 그들에 의해 제기된 이론 사이의 관계는 미묘한 그리고 복잡한 문제이다.
우선 첫째로, 모든 이론들은 종교적인 신앙에 대해 적어도 하나 정도 풀리지 않는 문제를 안고 있다. 이론들은 그 이론화 작업 초기부터 종교에 대한 모든 초자연적인 설명을 금기시하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종교는 하나같이 초자연적인 것들과 인간과의 관계를 말하고 있다. 독실한 기독교인은 자신의 신앙을 신이 주신 선물로 이해한다. 독실한 무슬림은 마호메트의 힘을 알라로부터의 직접적인 감화인 것으로 이해한다. 그렇지만, 종교의 이론가들은 ‘자연적인 동기’라고 설명될 수 있는 신앙의 요소에만 관심을 갖는다. 종교적 이론과 신앙에 이와 같은 차이가 있다고 해서, 그들 사이에 반드시 갈등이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 독실하게 종교적인 사람이었던 막스 뮐러는 종교에 대한 자연적인 그리고 초자연적인 설명이 반드시 갈등을 일으켜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보기에, 자연적인 그리고 초자연적인 것들은 아무런 갈등 없이 조화를 이룰 수 있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종교를 거부하였던 사람들은 대개 환원주의자들이 그러하였지만 종교를 무지의 시대가 남긴 유물이라고 폄하하였다. 그들에게 종교는 정상적인 그리고 이성적인 것일 수 없었다. 실제로, 마르크스나 프로이드가 보기에 종교는 마땅히 치료되어야 할 병과 같은 일종의 역기능적인 것이었다. 엘리아데와 이반스-프리차드 등, 즉 종교적인 신앙에 평생 동안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은 환원주의자들에 비해 덜 부정적으로 종교를 이해하고 있었다.
이론의 과거와 현재
개인적인 신앙생활이 종교학 연구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해서, 어떤 종교학자가 그와 신앙을 공유한 사람들에게만 제한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물론 이론이라고 하는 것이 이론가와 대중들의 신앙 형태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론의 형태나 내용 중 어떤 것도 어떤 하나의 특정 요소에 의해 전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타일러와 프레이저가 반기독교주의자였을지라도, 모든 종파의 기독교인들은 그들의 진화론적인 지성주의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원칙은 환원주의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비록 마르크스와 프로이드가 단호한 무신론자이기는 하였지만, 그들은 아마도 20세기 중반에 전 세계에 걸쳐 강력한 영향력을 떨치고 있었다. 그들은 계급 갈등의 힘에 또는 성격의 혼란스러움에 한정한다고 하더라도 종교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개성의 본질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과 사회적인 갈등의 원동력이 종교성의 근원이라고 믿었다. 지난 세기 말에 그들의 이론에 대한 확신이 크게 흔들리기는 했지만, 그들의 종교에 대한 이해는 쉽게 사라질 것 같지 않다.
엘리아데와 뒤르껭이 종교에 대한 환원주의자들의 이론을 부정한 것은 그들이 성스러움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들 반환원주의자들의 관점에 귀 기울였다. 그리고 개인적인 신앙으로부터 벗어나, 성스러움을 중심으로 한 엘리아데의 종교 이해를 종교를 설명하는 보다 타당한 이론으로 받아들였다.
환원주의자들과 반환원주의자 양측 사이의 종교 이론에 대한 논쟁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환원주의든 반환원주의든 종교에 대한 어떤 이론이 과학적 관심을 진지하게 계속해서 끌 수 있는가를 두고 경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양측 다 포괄적인 이론화 시대는 아마 곧 종말을 고할 것이라는 점에 공감하고 있는 듯하다. 그들은 어떤 점에서는 피상적이라고, 어떤 점에서는 공론적이고 그리고 증명할 수 없다고, 그리고 또 어떤 점에서는 애매하고, 임의적이고, 또는 너무 주관적이라고 비난받고 있다. 하지만, 그 비난이 아무리 심하고 불공정하다고 할지라도, 이러한 비난은 여전히 일정한 무게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와 같은 회의적인 상황이라면, 미래의 종교이론에 대한 논쟁은 뒤르껭이나 엘리아데의 일반론에 의해 계승되는 것이 아니라, 이반스-프리차드와 기어츠 등의 학파에 의해 계승될 것 같다. 정확하고, 분명하고, 그리고 구체적인 정보를 객관적으로 관찰하고자 하는 꿈은 이미 공허한 것이라고 결론난 지 오래다. 수집된 사례들 사이의 유사성을 바탕으로 보편적인 이론을 수립하고자 하는 꿈도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이러한 딜레마를 극복할 보편적인 이론이 등장할 날이 금세 올 것 같지도 않다. 그러므로 이반스-프리차드와 기어츠가 예견할 수 있는 미래의 종교에 대해 주장했던 것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 계승될 가장 그럴싸한 모델로 보이는 것이다.
이와 같이 특별한 연구 경향에 대해 강조했다고 해서 어떤 일반적인 주장도 인류 문화에서 종교의 역할에 대해 답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관련을 맺고, 유사성을 찾고, 또는 추상적인 원리를 찾고자 노력하는 것은 언제나 필요하며 그리고 유익하다. 그런데 그러한 원리는 언제나 설득력 있는 것들이어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종교에 대한 신학적 연구의 미래는 과학보다 인문학에 속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