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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옹 성철退翁 性徹의 생애와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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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김경집 2003년 10월 260호
1. 탄생과 출가
스님의 법명은 성철性徹이며 법호는 퇴옹退翁이다. 1912년 음력 2월 19일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묵곡리에서 아버지 이상언과 어머니 강상봉씨 사이에서 일곱 남매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의 이름은 영주英柱로 스스로 경서와 신학문을 섭렵할 정도로 총명하였다.

청년기에 이르러서는 학문적 성취를 이루기 위해 일본유학을 시도하였지만 마음에 일치하는 바가 없어 23세에 귀국하였다. 일본에서 돌아와 집에서 독서를 하며 쉬고 있을 때 영가永嘉의 《증도가證道歌》를 보았다. 책을 보면서 홀연히 심안이 밝아짐을 느꼈고 이를 계기로 지리산 대원사 탑전에서 40여 일을 정진하였다.

이러한 구도심은 해인사에 전해져 김법린, 최범술 등 큰스님들이 직접 대원사로 찾아와 출가를 권유하였지만 당시 출가자들의 가족을 동반한 생활에 호감을 갖지 않아 출가를 망설였다. 그렇지만 큰 사찰에서의 수행은 다를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어 해인사로 갔다. 여기서 그의 마음을 움직인 분이 동산 스님이었다. 이때 스승으로 모시고 싶은 생각이 들어 삭발 수계하였다. 이때가 25세가 되던 1936년 봄이었다.
동산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성철은 그 해 운봉 화상에게 비구계를 받았다. 그 후 범어사 금어선원에서 하안거를 시작으로 제방의 선원에서 수행하다가 마침내 29세가 되던 해 대구 동화사 금당선원에서 어둠을 타파하고 깨달음을 얻었다.

깨달음을 이룬 이후의 수행은 더없이 혹독하였다. 그것이 세간에 알려진 장좌불와이다. 1944년 문경 대승사로 옮겨 수행하면서 택한 방법인 장좌불와는 수행정신이 해이해진 불교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이후 8년간 계속되었다. 이후 전쟁의 휴전과 종단의 정화라고 하는 소용돌이 속에서도 대구 팔공산 파계사 암자인 성전암에서 10년 동안 철망을 치고 신도들의 접근을 막고 수행하며 동구 불출하였다.

10년의 수행으로 자신의 세계가 완숙해진 스님은 1965년 김용사에서 대중들을 모아놓고 자신의 생각을 세상에 전하는 것을 시작으로, 1967년 해인총림 방장에 추대되면서 자신의 불교관을 백일 동안 발표하여 무량중생을 교화하였다. 그 후에도 스님은 해인사에 머물면서 1981년 대한불교조계종 제7대 종정, 1991년에는 제8대 종정에 재추대되어 종단의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와 같이 한평생을 수행으로 일관하여 선풍을 드날린 스님은 평생 계율에 엄격한 무소유의 삶을 살다가 1993년 11월 4일(음 9. 21) 세수 82 법랍 58세로 입적하였다.


2. 생애와 시대 인식
스님의 생애는 크게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가 1912년 음력 2월 19일 출생하여 득도할 때까지의 시기로 탄생과 성장의 기간이다. 두 번째는 1936년 봄 해인사에서 득도하여 제방을 두루 편력하면서 깨달음과 장좌불와, 부처님 법대로 살고자 했던 봉암사 결사, 그리고 팔공산 성전암에서 철망을 치고 10년을 동구불출하던 수행의 기간이다. 세 번째는 1967년 해인사 초대 방장에 추대되면서 시작한 백일법문으로 중생을 교화하고, 1981년 제7대 종정과 1991년 제8대 종정에 추대되어 한국불교 선풍의 토대를 닦다가 1993년 11월 4일 열반에 든 기간이다.

이런 생애 가운데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자신의 수행을 정립한 시기로 일제강점기, 미군정, 그리고 동족상잔과 급격한 사회변화 속에서 불교계도 많은 변화를 겪었던 시기이다. 세 번째는 산업화에 따른 사회적 변화 속에서 종단 내의 정화운동과 불교의 대중화라는 특징으로 표현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생애는 종단의 역사가 외적 영향으로 크게 변모한 시대와 일치하고 있다. 그 시대는 일제에 의한 불교 본질의 변모와 미국의 점령으로 인한 기독교의 급성장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스스로의 분규와 내부적 모순 등 갖가지 어려운 조건들이 산재한 시기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스스로 모순을 거부하기도 하고, 지도하는 위치에선 과감하게 바꾸고자 노력하였다. 그것이 승단의 본분을 지키는 것과 승단의 구성원을 키워내는 교육이었다.

스님은 승가의 일원이 될 때부터 수행자의 본분에 대해 깊이 인식하였다. 당시 사원의 수행자들이 일반인과 다름이 없이 살아가는 모습에 대해 거부감을 보인 것이 그러한 예이며 출가하여 수행자가 되었을 때는 누구보다도 철저한 수행과 연마로 일관하였다.

스님은 어느 불사보다도 교육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다가오는 경쟁사회에는 수행자가 강원을 졸업한 것만으로는 사회적 지위가 낮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예견한 것이다. 중생을 교화하는 민중의 지도자가 되려면 불교를 깊이 공부하여 전문적인 지식과 수행이 겸비되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3. 퇴옹 성철의 불교사상
한국불교는 조선조 배불정책을 거치면서 그 신앙적 형태가 많이 달라졌다. 이런 시대를 겪어오면서 불교신자들도 자연히 자신의 본성에 있는 불성을 찾는 일보다 불교는 단순히 복을 비는 종교로 인식하게 되었다. 이런 인식 속에서 스님이 정립한 사상은 기복적인 신앙에서 자신을 찾는 신앙으로의 전환이었다.

이런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불자들의 인식을 바꾸고자 한 것이 스님의 깨달음과 실천방향으로 불교신앙의 새로운 좌표였다. 그것은 부처님은 이 세상을 구원하러 온 것이 아니고 이 세상이 본래 구원되어 있음을 가르쳐 주려고 왔다는 불교이념의 재천명이다. 이것은 구원되어 있는 자신을 바로 보자는 견해로 우리의 존재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하고 무한하며, 유형·무형 할 것 없이 우주의 삼라만상이 자기 속에 구비되어 있음을 바로 보자는 뜻이다. 이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자각을 통해 물질적 속박에서 벗어나는 영원한 자유의 강조이다.

인간의 본모습은 거룩하고 숭고한 존재이다. 그렇지만 욕심에 눈이 가리어 물질만능에 휘말리면 암흑세계를 헤매는 비극으로 이어지지만, 본모습에 덮여 있는 먼지를 없애면 찬란한 구슬의 본성은 빛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스님의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는 전통적인 선사들의 깨달음과 계합한다. 특히 돈오적 선수행과 그 세계관이 일치한다. 출가의 계기가 되었던 영가의 《증도가》와 대원사와 해인사에서 시작된 수행이 그러한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영가는 혜능의 제자로 그의 《증도가》는 돈오적 선세계를 담고 있다. 스님은 자신의 사상체계를 정립하는 데 《증도가》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거기에 입각해서 한국불교의 선사상을 정리하고 있다. 그리고 화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점도 그러하다.

이와 같은 활동 이외에도 스님은 종풍의 발전과 선양을 위해 노력한 것이 바로 선에 관한 서적의 발간이다. 그 가운데 종문의 이론서인 《선문정로》와 상당법어집인 《본지풍광》의 발간, 스님의 말씀과 종문의 핵심어록의 발간 그리고 선종 어록 가운데 우리의 종풍을 위해 필요한 37권을 선정한 ‘선림고경총서’의 발간은 한국 선종의 이론적 토대에 크게 기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