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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 대종사 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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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의 미소 - 해인 2003년 10월 260호
계절은 모질어서 여름내 비바람에 시달린 작은 풀에도 가을꽃을 피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한다. 한여름 햇볕 한 조각 인색하던 하늘이 대지의 생명에게 꽃을 강요하고 열매를 맺게 하였지만 이것도 한 해의 흔적에 불과할 뿐 끝이 아닌 한 흐름의 마무리와 새 시작을 위한 또 다른 배려로 감사해야 할 일이다. 그러니 가을을 두고 끝이라 할 일도 아니겠거니와 밤을 하루의 마침이라고 할 것도 없음이다.
실로 하늘의 달은 무상無常하여 언제나 변하는 듯하지만 억조창생億兆蒼生이 시작한 이래로 늘 그대로일 것이며 저 강물은 무궁無窮하여 늘 그대로인 것 같으나 오늘의 강물이 어제의 강물과 다른 것과 같은 이치는 굳이 소식蘇軾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자명한 일이다.
그러므로 석가께서 가르치신 연기緣起와 윤회輪廻의 한 소식도 기울었다가는 다시 차오르는 달과 같이 석가에서 조사祖師로 다시 중생에게로 그 가고 오는 길목만 달리했던 것이리라.
조사祖師 스님들의 영정影幀을 진영眞影이라하여 그려 모시는 것은 살아 생전 스님의 모습이 그리워서라기보다는 석가 이래로 전해오는 진리의 말씀을 새기고자 함이니 그 끝을 두어 진영을 그렸다고 할 수 없고, 오히려 중생들의 시작을 위해 조사께서 전하고자 한 정신을 표현하는 것에 더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조사의 진영을 모시고 행장行狀을 엮어 그것을 후세에 넓고 길게 남기었으니 그것이 조사의 살아 생전의 모습 그대로이다.
성철 스님의 진영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미 스님 가신 지 10년이란 세월 속에 해와 달이 뜨고 지기를 헤아릴 수 없으나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도 분명 스님께서 어리석은 중생들에게 이야기하시고자 했던 말 없는 말씀을 담고 있음이다.
마음을 가리고 있는 번뇌의 구름을 걷고 지혜의 광명을 볼 때 중생들은 비로소 윤회의 고리를 벗어나 영원한 생명 속에 무한한 능력을 가지는 대해탈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음이요, 이 번뇌망상, 그 먼지만 닦아내면 내가 바로 부처이며 이 자리가 극락이라고 하신 스님의 말씀이 두고두고 해 저문 행로의 고단한 중생에게 용기와 희망이 되는 것은 어찌 큰스님 진영에 담긴 그 겉모습에서만이겠는가. 그림의 대나무가 내 마음 속 대나무를 그린 것이듯, 스님 상호 속에 깃든 그 모습이 내 마음의 분발심이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