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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문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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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담는 오솔길 - 진명 2003년 07월 257호
길을 걷다가 문득 뒤를 돌아본 일이 있는가. 내일을 향해 살아가다 어제의 흔적을 생각해 본 일이 있는가. 물고기가 헤엄친 자리에 물결이 일고 새가 날아간 자리에 나뭇잎이 흔들린다. 짧은 여운이지만 있는 듯 없는 듯 내 일상 주변에 살고 있는 생명체들의 가벼운 존재감을 느낀다.
얼마 전 몇 년 동안 상주하던 도량에서 자리를 옮겼다. 아침저녁 파아란 잔디밭을 가볍게 걸을 수 있어서 그 도량을 무척 좋아했고, 방송국으로 오고 가는 길이 아름답고 그리 멀지 않아서 좋아했던 곳, 도심이 훤하게 내려다보여서 마음까지 시원했던 곳. 그곳에서 자리를 옮겼다.
스님들은 대부분 걸망을 꾸리는 것에 익숙해서 어디론가 자리를 옮기는 것에 그렇게 힘들어하거나 연연해 하지도 않는다. 그저 떠날 때가 되면 ‘아! 이 도량과 인연이 다 되었구나’ 생각되면 어느 날 문득 걸망을 꾸린다. 그래서 나도 짐을 꾸렸다. 물론 소임을 맡고 있거나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으면 예외다. 그러나 스님들은 그렇다고 하지만 보통 사람들이 평생을 살면서 자리를 몇 번이나 옮겨서 살까를 생각해 봤다. 태어난 곳에서 부모님 모시고 평생을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직장을 따라 이사를 몇 번씩 한 후에 자기 집을 마련한 후에야 자리를 옮기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사람들의 삶의 공간이란 넓게 보면 이 우주 전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보편적으로 이 한 육신을 들여 놓고 살 수 있는 공간을 말한다. 사랑하는 가족이 함께 하고 치열한 일터를 벗어나 편안하게 몸을 누이고 쉴 수 있는 공간, 내일을 위해 기운을 재충전할 수 있는 공간, 맑은 차 한 잔 시간에 구애됨 없이 마실 수 있고 자기의 허물이 다 이해되는 공간이다. 그러나 스님들의 수행여정에서 삶의 공간이란 넓은 의미에서 나는 전자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과 삶의 공간 개념이 좀 다르다. 요즘 시대에 들어서 많이 달라진 것은 분명하지만 넓은 가슴으로 살아가려면 어느 일정한 공간에 집착하면 안 된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가족들을 울타리 삼아 살던 작은 집을 떠나 세상의 큰 집을 얻었다고 말한 적이 있지만 너무 집이 커서 그런지 자기 한 몸을 깃들일 공간이 마땅치 않아서 방황하는 수행자도 없지 않다.
세상이 많이 변했고, 지금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더불어 수행자의 모습이나 삶의 양상도 많이 변했다. 그래서 꼭 산중 대중처소나 선원이 아니라 도심에서 살아가는 스님들도 많다. 발달된 기계문화, 방송이라는 매체를 통해 부처님 말씀을 전하는 포교 일선에 있는 나 같은 스님도 있고, 학문을 하거나 교육이나 복지 관계 소임을 담당한 스님들, 종무행정을 보는 스님들이 도심에 많이 살고 있다. 그런데 거처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많은 고심을 하곤 한다. 대부분의 스님들이 산중 대중처소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사회 변화를 미리 예견하고 대처하지는 못할지라도 변화에 맞는 포교나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도심에서 일정한 기간을 생활해야 하는 스님들을 위한 대체 생활공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고 나의 좁은 소견으로 생각해 본다. 물론 출가 본사가 서울이나 도심에 있는 스님들이야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스님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변함없는 생각이지만 학교에 다니고 도심에 산다고 해서 세속적인 삶이 아니며, 또 산중에 산다고 해서 그 삶이 다 온전히 수행자인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즉 다시 말하면 도심에 살든, 산중 대중처소에서 생활하든, 어떤 마음 자세를 가지고 살고 있느냐가 문제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부처님 제자로서 또 수행자로서 마음에 단단한 중심축이 세워진 사람이라면 이 세상 어느 곳에서 어떤 일로 수행의 방편을 삼더라도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이다. 다양한 방법과 다양한 문화를 통해 대중을 만나고 부처님 말씀을 전해야 한다면 많은 스님들이 다양하고 질적인 학문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대학을 다니는 동안 비구니 학인 스님들이 깃들여 살 수 있는 수행원을 해결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었다. 선후배 스님들이 적극적으로 온 마음을 다해 노력한 결과 종단으로부터 자그마한 도량을 얻어 비구니 스님들이 모여 대중생활을 하면서 학문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에 자리를 옮기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산중에 있는 선원이나 대중처소는 다르지만 도심의 작은 사암의 요사들은 몇 명 대중도 수용하지 못할 정도로 방사가 협소하다. 오래 전에는 마을에서도 방 한 칸에 모든 식구들이 모여 살았고, 온 가족이 한 이불 밑에 발 넣고 오물오물 살아도 불편함 없이 당연하게 살았었다. 그런 생활환경에서 성장한 사람들이 출가를 했던 시절에는 생활공간이 그렇게 문제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아이를 많이 낳지도 않지만 초등학교만 들어가도 자기 혼자 쓰는 방을 달라고 당연히 요구하고, 한 달이나 일주일에 한 번 공동 목욕탕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아침저녁으로 샤워를 하고 사는 습관을 가지고 살던 사람들이 출가를 하게 된다. 대중처소에서 일정한 기간이 끝나고 구족계를 받고 나면 선원에 뜻을 둔 사람을 제외하고는 개인의 공간이 보장되지 않으면 다 어디론가 자기 공간을 가지려고 토굴을 찾아 헤매게 되었다. 이 토굴이라는 개념도 오래 전에는 수행하는 스님들이 산중에 땅굴을 파거나 큰 바위를 의지해서 초근목피로 연명을 하며 처절하게 일념으로 정진을 했던 시절과는 많이 달라졌다. 요즘은 이동하는 자동차부터 시골에 허름한 집 한 칸에서 오피스텔이나 아파트까지 다양한 토굴이 생겨났다.
스님들이 공간에 집착하는 것이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지만 우선 대중이 그렇게 떠돌기 전에 생활공간이 배려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예전에도 그랬겠지만 요즘도 아직 공부하는 학인이거나 포교 일선에서 교육이나 복지 관계 소임자가 아니라면 스님들은 복잡하고 매연에 찌든 이 도심에 머물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도심에 있는 어지간히 큰 절이라도 주지스님과 기도부전스님 외에는 거의 대중이 없는 현실이다. 그리고 또 일부 사찰은 공찰이든 사설 사암이든 기도부전마저도 없어서 주지스님이 법당에서 불공하랴 법문하랴 시장보랴 때론 신도들의 부고를 받으면 시다림 가랴 하루가 바쁘다. 그러다보니 모든 생활공간은 주지 소임을 보는 스님 위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상좌나 본방 식구가 아니면 방 한 칸 깃들여 살기도 힘들다. 그리고 사설 사암은 창건주가 당연히 기득권을 가지고 대를 이어서 살아가고 공찰 사암은 기득권을 가진 스님들의 전유물이 되고 있는 것도 현실적인 문제다. 이 모든 구조적인 문제들이 하루 아침에 바뀔 수는 없지만 새롭게 불사를 시도하는 스님들은 꼭 기억해야 될 문제점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왜 문득 짐을 꾸리다 이런 생각을 했을까 싶다. 도심의 생활이 시작되면서 늘 마음에 품고 다니던 문제를 문득 이 자리에 풀어 놓는다.
돌이켜보면 나는 늘 내가 세워 놓은 한 가지 생각에 집착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미 만들어진 사찰만 고집했고 하루라도 빨리 산중 대중처소로 돌아갈 것만 고집했었던 것이다. 처처가 도량이라고 했다. 늘 공동체의 삶을 생각했고, 너나 할 것 없이 토굴을 찾아 헤매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 까닭도 있지만, 내가 깃들여 사는 곳을 부처님의 향기가 은은하게 넘치는 그런 도량으로 만들어 가고자 하는 생각을 왜 하지 않았던가 싶다.
우리는 모두 깨달음이라는 한 가지 목적을 가지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어가는 나그네다. 다른 차별된 성격과 환경은 다 배제하고라도 이 한 가지 목적만으로도 함께 한다는 것은 참으로 신심이 새로워지고 향기로운 일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새로운 공간에서 아직은 낯설지만 온 우주를 내 수행처로 생각하며 사는 자신의 어줍잖은 부끄러움이라 생각한다. 부처님의 가피 속에 새롭게 눈뜨는 하루가 감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