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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여름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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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남수진 2003년 07월 257호
해인사 수련대회 바야흐로 짙푸른 신록을 오감으로 느끼게 되는 계절이다. 한낮에 강하게 내리쬐는 불볕더위와 숨막히는 더운 기운이 아닐지라도 사방이 시멘트 벽으로 둘러싸인 우리네 사는 공간에서 여름을 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다못해 뒷산 개울가에 앉아 수박 한쪽을 베어물며 잠시동안의 여유를 즐기더라도 우리네 마음은 자꾸만 자꾸만 자연을 그리워하게 된다. 그래서일까? 학교를 졸업한 직장인들에게도 겨울 휴가는 없지만 여름 휴가는 가질 수 있는 기쁨이 있다. 나 또한 여름이 다가오면 어디든 바다와 숲이 어우러진 곳을 찾아가게 되는데 때로는 즉흥적으로 때로는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잠시 삶에 쉼표를 찍어본다. 그것이 나에게는 여름이 기다려지는 하나의 이유인 셈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여름을 건강하게 넘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들이 몇 가지가 더 있다. 물론 불자들이라면 계절과는 관계없이 한번쯤은 해보았음직한 일들이지만 나에게는 여름을 난다기보다는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활력소가 된다. 무더운 여름에 땀만 빼는 것이 아니라 필요없는 내 욕심과 무거운 마음도 빼낼 수 있다면 금상첨화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여름이 문턱에 다다르면 산중은 자연의 넉넉함을 온 몸으로 말한다. 하늘을 온 몸으로 둘러안고 있는 엄마품 같은 숲속에 자리잡은 우리네 사찰들은 그래서 더 여름이 아름답고 에너지가 느껴진다. 내가 주말이면 자주 찾게 되는 사찰 한 곳은 도심과 가까워서 비종교인들도 자주 들르게 되는 곳이다. 나와의 인연은 지난 2년 전 해인사 여름수련회에서 알게 된 한 여법우와의 친분으로 시작되었다. 도심과 멀지 않아서 큰맘 먹지 않아도 들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더위 때문에 잊고 있었던 여름이 주는 기쁨을 그곳에서는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2층에 마련된 큰 법당 옆으로는 아름드리 나무의 길게 뻗은 나뭇가지가 손에 잡힐 듯 뻗어 있다. 옆에 앉아 있으면 금방이라도 초록물이 들 것만 같다. 사각사각 산에서 불어오는 얼음 바람에 나뭇가지가 쉼없이 부채질을 해댄다. 나도 모르게 읊조리게 되는 관세음보살님… 세상의 온갖 시름이 이 소리에 부서지는데 하물며 ‘더위쯤이야, 이쯤이야’ 싶어지는 것이다. 불교신자가 아니어도 여름이면 찾게 되는 곳 중의 하나가 산중인데 하물며 나와 같은 이에겐 그야말로 피서가 따로 없음이다. 법당에서 지그시 눈을 감고 가부좌를 틀고 앉는다. 내 마음이 허허롭고 맑으니 부처님께서도 지그시 미소지어주시고 난 잠시나마 선정 속으로 들어간다. 5분이 흐르고 10분 20분… 시간이 흐르니 머리가 맑고 가볍다. 여름은 이미 멀리 도망가 버리고 없다. 가끔은 해인사 여름수련회 때 성철 스님 사리탑에서 보낸 참선 기억이 도드라지게 날 때가 있다. 지금과는 또다른 새로웠던 기분, 이렇게 앉아 있으면 그때의 기억이 더욱더 새롭다.

산을 내려올 때면 이미 올라갈 때의 마음과는 사뭇 다르다. 심신이 가볍고 건강하니 기쁘고 감사하다.

2년 전 해인사 여름수련회를 다녀오고서 나에게 남겨진 기억은 참으로 많다. 회향식을 할 때는 힘들었던 기억이 꼬리를 물면서 다시는 기억하지 않을 것 같더니만 여름만 되면 어김없이 그리워진다. 그중에서도 1,080배에 대한 기억은 내가 여름을 잘 이겨낼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또 하나의 튼실한 고리가 되었다. 사실 그전에는 108배 이상은 엄두도 못 내던 나였다. 겁도 났지만 해야 되는 이유에 대한 것도 잘 깨닫지 못한 터라 괜히 다리 운동만 하게 되는 것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찌는 듯한 여름의 한가운데인 8월 초! 해인사 대적광적에서 치러진 1,080배는 무지했던 나에게 절 삼매경에 빠질 수 있는 큰 호사를 누리게 해주었고 신심을 더욱 돈독하게 하는 크나큰 계기가 되었다. 게다가 마음을 다해 무엇에 몰두한다는 건 더위도 물러서게 한다는 가르침도 덤으로 얻게 되었다. 예전에 무릎을 굽혔다 폈다만 하며 절할 때와는 사뭇 달랐다. 우선 마음자세부터가 말이다. 그래서인지 여름이되면 일부러라도 몇 번씩 3,000배나 1,080배에 도전을 하게 된다. 때로는 찌는 듯한 여름의 한낮에, 때로는 굵은 빗줄기가 뿌려대는 장마철에도 말이다. ‘뚝?’ 땀이 수건속에 배이면서 삶이 나에게 준 화두를 한번씩 곱씹어 보게 된다. 때로는 관세음보살님만 호명하며 절 삼매경에 빠져드는데 다리가 아픈 줄도 모르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조차도 잊게 된다. 예전에 성철 스님께서는 3,000배를 하지 않으면 사람을 만나주시지 않았다고 하는 일화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 이유도 조금은 알 것 같다. 절이 모두 끝나고 산사를 둘러보면 또 모든게 새롭다. 하늘도 절 앞마당도 법우님들도….
《금강경》에 보면 부처님께서 “어떤 것이 모양으로 분별되는 곳이면 그곳에는 속임수가 있다”라고 말씀하셨다. 모든 사물을 정심으로 바라보게 되는 일을 절 수행을 통해 조금은 배울 수 있게 되는 모양이다.

조금 있으면 본격적인 여름이 우리 앞에 펼쳐진다. 더운 여름에도 긴 장삼을 걸치시고 넉넉한 웃음을 지으시는 스님들의 모습이 부럽지 아니할 수 없다. 우리도 올 여름에는 스님들의 모습을 닮아 수행속에서 더위를 잊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