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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쌍월雲門雙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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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조향래 2003년 07월 257호
도리사 송림 문화부 기자로 2년가량 근무하면서 불교와 시절인연이 닿았다. 이제 해인사와도 인연이 닿았다. 이 여름에 다소 외설적인 이야기를 해야겠다. <월간 해인>에 실릴 글이 도홍색桃紅色을 띤 염문艶文이라니,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인가. 허나 아무리 무량無量한 법문法門인들 대중의 일상사를 벗어난 것이 무슨 소용인가라는 생각이 미치면서 다소 위안을 얻었다.
무더운 여름 <해인>을 읽는 독자들에게 한 점의 시원한 부채바람이라도 된다면 이 또한 미련한 중생이 할 수 있는 작은 보시布施가 아닐까하는 자위도 해봤다. 그래도 혹여 이 글이 불자들과 <해인>의 품위를 훼손하더라도 자비로운 불심佛心으로 해량海量해 주시기를 바랄 뿐이다.
그해 여름. 그러니까 필자가 신문사에 갓 입사했을 무렵인 1980년대가 저물어가던 한해의 여름날이었다. 우리는 입사 동기 5~6명이 모의를 해서 1박 2일의 일정으로 주말 피서를 떠났다. 목적지는 청도 운문사 계곡.
매미소리가 작열하는 뜨거운 신작로를 버스로 한참을 달려서 운문사 아래쪽 어느 계곡에 도착해 짐을 풀었다. 물소리만 들어도 가슴 서늘한 계곡 한 가장자리에 우리는 텐트를 치며 야영 준비를 했다.
늦도록 기승을 부리던 성하盛夏의 무더위도 지는 해와 함께 한풀 꺾이고 저녁 어스름이 계곡을 감쌀 무렵 우리는 준비해 온 음식으로 저녁식사를 끝내고 첨버덩 물속에 뛰어들었다. 발가벗은 몸으로 멱 감으며 개구쟁이들처럼 물장구를 치기도 했다. 청량한 계곡물에 몸을 담그니 세속에 찌든 속진俗塵이 말끔히 씻겨나간 듯 몸과 마음이 개운해졌다.
밤이 좀더 이슥해지자 높다란 동쪽 산봉우리가 둥근 달을 토해내며 계곡 인근 자갈밭이 잃어버린 동전을 찾을 수 있을 만큼 밝아졌다. 깊은 산골, 침묵에 잠긴 산하를 고즈넉히 비추는 교교한 달빛. 자고로 달이란 묘한 마력을 지니고 있어 잃어버린 세월이 떠오르고 가버린 사람들의 자취가 가슴 한구석에 투영되곤 한다. 그 아련한 갈증을 술로 달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흰 달빛 같고 해맑은 계곡물같은 동동주를 사다 마시며 원인모를 그리움을 달래기로 하고, 가위·바위·보를 해서 1명을 선발해 200~300m쯤 떨어진 상가로 술을 사러 보냈다. 한참 뒤 동동주 한 양동이를 들고 온 그 동료기자는 술 한사발을 너끈히 비우더니, 느닷없는 ‘쌍달(雙月)’ 타령을 늘어놓는 것이었다.
“저 하늘의 둥근 달도 좋고, 계곡 속에 잠긴 으스름달도 좋지만, 뭐니뭐니해도 술독 위에 걸린 쌍달이 최고라….”
그때 필자가 ‘술독 위에 걸린 쌍달’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 친구 두눈을 지그시 감고는 “술 사러 한번 가보면 알 것”이라는 대답뿐이었다.
권커니 잣거니 하는 사이에 자그마한 술 양동이가 바닥을 드러내자, 술잔을 들고 음풍농월을 늘어놓던 그 동료기자가 “속는 셈 치고 딱 한번만 같이 다녀오자”며 채근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친구의 인도로 자갈밭을 걷고 여울목을 건너 동동주를 파는 가게에 도착했다. 동료기자가 가리키는 커다란 술독 앞에 서서 동동주를 달라고 외치자 시원스런 모시 치마 저고리 차림의 젊은 새댁이 종종 걸음으로 다가왔다.
30대 초반쯤 되었을까. 달빛을 받아서인지 자태가 더욱 고와 보였다. 그런데 그 새댁이 술을 퍼내기 위해 술독을 향해 허리를 구부리는 순간, 나는 그만 숨이 턱 막히고 말았다. 정말 동동주 술단지 위에 둥두럿이 쌍달이 걸려 있는 게 아닌가.
“어어참 달 한번 밝다.” 같이 온 동료 노총각기자는 고개를 하늘로 향한 채 헛기침을 해대면서도, 눈길은 술독 위를 맴돌고 있었다.
혹여 그 아주머니의 ‘육탄 상술’에 말려들었던 것일까. 아아 그날밤, 나와 그 친구는 커다란 동동주 술단지가 바닥을 드러내도록 양동이를 들고 야영장과 가게를 오갈 수밖에 없었다.
‘월백주백천지백月白酒白天地白하니 산심주심객수심山深酒深客愁深이라. 밤새 동무하던 달이 서녘하늘에서 빛을 잃어가는 새벽녘에야 우리의 주흥酒興도 기울었다. 특히 동동주도 동동주려니와 운문쌍월雲門雙月에 대취한 필자와 동료기자는 텐트 옆 나뭇가지에 바지를 벗어 걸어둔 채 아무렇게나 나뒹굴어져 무아지경으로 빠져들었다.
아침 해가 중천에 걸려서야 눈이 떨어졌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두사람 다 나뭇가지에 걸어둔 바지가 깜쪽같이 없어진 게 아닌가. 주머니 속에는 몇 만원의 현금과 신분증이 들어 있었다.
처음에는 일행의 장난으로 알았지만, 기어이 우리는 바지를 잃어버리고 볼썽사납게도 반바지 차림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기분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인과응보因果應報가 아니던가.
운문쌍월에 취한 값 치고는 싸다는 생각도 들었다. 참으로 야릇한 일상에서도 부처님의 인과법因果法 가르침만은 그토록 준엄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무상無相한 일상사日常事요, 무상無常한 인생사人生事가 아니던가. 필자가 이 한시를 특히 가슴에 담고 사는 것도 운문쌍월雲門雙月과의 인연 때문일까.

미원상한취원지未圓常恨就圓遲
원후여하이취휴圓後如何易就虧
삼십야중원일야三十夜中圓一夜
백년심사총여사百年心事總如斯
둥글지 않을 때는
그것이 늦어짐이 한이더니
둥글고 난 후에는
어찌 이리도 쉽게 이지러지느뇨
삼십밤 중 둥근 밤은 단 하루
백년심사가 다 이같은 것을

언제든 달 밝은 밤이면, 아 그래도 그날밤, 그 풋풋한 설렘은 잊을 수가 없다. 아둔한 중생이 녹음綠陰에 스민 가을빛을 어찌 읽을 수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