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13일은 뜨거운 날씨만큼 내게 특별한 날이었다. 지방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로서 잊을 수 없는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의정부에서 미국 병사의 장갑차에 치여 숨진 효순이와 미선이의 참변 소식은 더욱 잊을 수가 없다.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 이슬처럼
내 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에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그런 가운데 이따금 “효순아! 미선아!” 하고 그 애들의 영혼을 부르는 것 같은 애타는 소리는 시민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모두에게 애들의 부모 형제 자매와 똑같은 애통한 심정을 갖게 하는 순간이었다. 그 틈에서 망자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스님의 목탁 소리와 불자들의 염불 소리는 내 마음을 더욱 처연하게 만들었다. 시민들의 촛불 시위는 억울하게 죽어서 구천을 떠돌고 있을 ‘우리 모두의 딸 효순이 미선이’의 혼령을 극락 세계로 인도하는 천도재薦度齋와도 같았다.
하늘과 땅을 감동시킬 만큼 장엄莊嚴한 촛불시위는 우리의 두 딸이 극락세계로 가는 길을 훤히 밝히는 의미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큰 의미는 촛불이 갖는 상징성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몸을 태워서 어두운 세상을 밝힌다는 상징성. 우리의 두 딸은 촛불처럼 자기 몸을 희생해서 깨닫지 못한 한국인과 미국인을 깨우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에게 미군은 고마운 일만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했고, 미국의 잘못된 행위에 대해서 항의할 수 있는 눈을 뜨게 만들었지 않는가. 나아가 수십만 시민들에게 강대국 미국의 잘못을 비판하고 시정을 요구하며, 평화를 갈구하는 촛불시위에 참여할 수 있는 용기를 안겨주었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치켜들었던 촛불에서 흘러내리던 그 애들의 눈물 같은 촛농이 자꾸만 생각나는 것은 웬일일까.
또한 서울 한복판 광화문에서 밝힌 장엄한 촛불시위는 지구촌 곳곳에 퍼져나가, 콧대 높은 미국 대통령이 주한 미국대사를 통해서나마 한국인들에게 사과하도록 만들었고, 1주기를 맞이해서도 미국 대사가 유가족을 직접 만나 사과하는 계기를 만들었으며, 주한미군들이 우리 두 딸에 대한 추모행사를 하도록 만들었지 않는가. 이러한 미국의 행동은 우리 수사관이 사고현장을 조사할 때 입회조차 꺼렸고, 재판에서는 훈련 중에 일어난 사고라는 이유로 사고를 일으킨 미군에게 무죄판결을 했던 처음과는 다른 태도인 것이다. 이런 태도가 임시방편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고 진실로 미국이 잘못을 반성하고 고치려는 신호라면 위안도 되련만….
이제 효순이와 미선이가 발원하는 것은 ‘차별하는 사람도 없고 차별 받는 사람도 없는 세상을 만들어 달라. 자신들처럼 억울하게 죽는 사람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 달라. 나아가 한국과 미국 사이에 맺어진 불평등한 소파(한국 주둔 미군지위에 관한 협정:SOFA) 협정을 평등한 협정으로 바꾸어 달라’는 것일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리기에 꿈도 많았을 효순이와 미선이, 힘이 강한 나라와 힘이 약한 나라 사이에 존재하는 차별과 불평등을 없애는 일은 우리 어른들에게 맡기고, 이젠 극락 세계에서 영면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