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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 향하여 찾는 것은 진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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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이야기 그림이야기 - 설곡 2003년 07월 257호
빠따산련 그림/청대 모든 것은 네 안에 갖추어져 있다
중국의 마조 스님은 어느 날 자신을 찾아온 수행자에게 냉정하게 물었다.
“나를 찾아와서 무엇을 구하려고 하느냐?”
“제가 천리 먼길을 찾아온 것은 스님께 오직 불법을 구하고자 함입니다.”
“자기의 보배창고는 살피지 않고 집을 떠나 사방팔방 치달려 무엇을 구하고자 하는가? 나에게는 아무 것도 없다. 아무 것도 없는 내게서 무슨 불법을 구하겠는가?”
큰스님의 명성을 듣고 불원천리不遠千里 찾아온 수행자는 물러서지 않으며 절하고 다시 물었다.
“무엇이 나의 보배창고입니까? 자세한 가르침을 주소서.”
“지금 나에게 묻는 바로 그것이 너의 보배창고이니라. 그 보배창고에는 일체가 다 갖추어져 있어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이미 모든 작용이 부족함 없이 자유자재하거늘 하필 밖에서 구할 필요가 있겠느냐?”
수행자는 당장 그 자리에서 마음의 편안함을 얻었다. 자신의 마음이 부처인 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선수행은 밖으로 무엇을 구하려 나선다면 이미 크게 그르치고 있는 것이다. 밖을 향해 무엇을 찾아 나설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내면을 향해 눈을 돌려야 하는 것이다. 선수행의 지도자 역시 수행자로 하여금 밖으로 치닫는 마음을 내면의 세계로 향하도록 하여 스스로 깨닫게 해야 한다.

옛 선시禪詩 가운데 이런 시가 있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온종일 봄을 찾아 헤맸지만 끝내 봄을 찾지 못했도다.
신발은 다 해지고 몸은 지칠 대로 지쳤다.
도리 없이 되돌아와 툇마루에 걸터앉아 먼 곳을 바라본다.
눈 가는 처마 끝 그곳 매화 가지에 봄이 하나 가득 매달려 있었구나.

밖으로 찾는 것은 진실된 것이 아니다. 밖으로 향하는 눈을 돌려 자신을 볼 때 거기에 모든 것의 진실이 그대로 있는 것이다.
선수행은 철저한 기성관념의 타파에서 시작한다. 기존의 모든 관념을 철저히 부정하지 않고는 새로운 세계에 도전할 수 없다. 그 기존의 관념이 설사 부처라 하더라도 관념으로 이룩된 것이라면 그것을 깨뜨려야만 진정한 깨달음의 세계를 새롭게 건립할 수 있다.
어떤 수행자는 기성의 고정관념을 버리지 못하고 스승을 찾아 이 산 저 산을 헤매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스승은 단도직입적으로 그의 고정관념을 무너뜨리는 방법을 쓴다. 그래서 선사는 ‘부처가 무엇이냐’고 묻는 수행자에게 ‘마른 똥 막대기(乾屎)’ 혹은 ‘뜰 앞의 잣나무(庭前栢樹子)’ 등 기상천외한 대답을 던짐으로 질문자의 기존관념을 일격에 무너뜨린다. 그렇게 하여 수행자로 하여금 공부의 첫걸음을 스스로 내디딜 수 있게금 돕는다. 이런 것이 선이다.

부리를 가슴에 묻고 눈을 감았지만
송대의 선화에 이어 지금부터 명말청초明末淸初의 승려인 빠따산런(八大山人)의 작품을 통해 선화의 진면목을 감상해 보자.
빠따산런은 명明 왕실의 후예後裔로서 이름은 주답朱畓이고 빠따산런은 불명이자 자호이다. 1626년에 태어나 1705년까지 80세를 산 그는 높은 학문과 동시에 고매한 인품을 지닌 훌륭한 문인이자 정치가였으며 예술가였다. 19세 때에 명이 망하고 청淸이 들어서자 23세에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그는 나라를 빼앗기고 가문이 멸문당하는 크나큰 좌절을 겪었다. 그것이 그에게는 오히려 새로운 계기가 되었다. 이 사건은 그로 하여금 불문에 들어와 선수행에 입문케 하였으며, 이 선수행이 기성관념을 버리고 새로운 안목을 얻게 해주었다. 그는 이 선적 안목으로써 자신만의 예술의 길을 열어갔다. 출가 후 닦은 선적 안목은 출가 전에 쌓은 탄탄한 서법 위에서 독창적 예술로써 승화된 것이다. 중국 미술사가美術史家들은 빠따산런을 중국회화사의 흐름을 바꾼 중대한 인물로 평가한다.
이 그림은 그리 크지 않은 소품으로서 작은 병풍처럼 책으로 접어 만든 안만첩安晩帖에 실려 있다.
원숙圓熟의 극치를 구가謳歌한 걸작으로 평가되는 그의 이 그림은 윤곽을 그리지 않는 몰골법沒骨法, 젖은 먹을 사용한 발묵(潑墨法), 단숨에 휘갈겨 그린 일필휘지의 필법이 특징이다.
화면의 중앙에 부리를 가슴에 묻고 눈을 감은 채 외발로 서있는 새는 이 그림의 핵심 포인트다. 이 한 마리의 새는 사실 빼앗긴 나라의 현실에 눈감고 싶은 빠따산런 그 자신을 표현한 것인지도 모른다. 또한 새의 자태는 정적靜寂함을 드러내고 있지만 혼침昏沈에 빠진 적적寂寂이 아니라, 삼매에 들어 화두를 들고 있는 성성惺惺함을 느끼게 한다.
그의 작품은 언제나 풍부한 여백으로 여유를 보이면서도 동시에 엄청난 힘의 기세氣勢와 명쾌함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그는 역대의 어느 작가보다 먹색을 능숙하게 사용했다. 단색單色의 먹을 쓰지만 색감은 단조롭지 않고 밝으며 또한 변화가 다양하다. 수백 년이 지난 이 작품이 아직까지 먹색이 어둡지 않고 명쾌하게 살아 있는 것을 볼 때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화선실 수필畵禪室 隨筆》이라는 화론은 “기운 생동하는 느낌은 배워서 이룩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천부적으로 타고나야 하는 것이다. 아니면, 만 권의 책을 읽거나 만 리의 길을 여행한 뒤라야만 그것을 배워 얻을 수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빠따산런의 작품이 주는 이 기운 생동하는 느낌은 천부적으로 타고난 위에, 그의 굴곡진 인생역정과 뒤이은 선수행에서 성취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