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산양득일두우 山養得一頭牛하니 위산영우山靈祐 선사께서 시중示衆하여 말했습니다.
“노승이 백년 뒤에 산 밑의 마을에 가서 한 마리의 소로 태어나 왼쪽 옆구리에
‘위산의 승려 아무개’라고 써두겠다.
그때 만약 위산이라고 부른다면 그 소는 무엇이며,
또 소라고 부른다면 위산은 또 어찌 되겠는가?
대중들은 말해보라. 무엇이라고 불러야 옳은가?”
소를 가지고 후학들을 제접하고 법거량을 즐겨 한 이는 사실 남전보원南泉普願 선사입니다.
선사께서는 마조도일馬祖道一 스님의 법을 이었고 안휘성安徽省 지양池陽 남전산에 머물면서
선원을 열고는 삿갓을 쓰고 소를 치며 산에 올라 나무를 하고 밭을 일구며 선풍을 떨쳤습니다.
속가의 성이 왕씨인 까닭에 스스로 왕노사王老師라고 칭하면서
30년 동안 한 번도 산을 내려가지 않은 당나라 때 대선장大禪匠이기도 합니다.
이런 연유로 소를 치고 밭을 일구는 그의 가풍이 법문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남전 스님께서 천태산天台山 국청사國淸寺의 한산寒山과 습득拾得에게 와서 며칠동안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떠나면서 하직인사를 하자 한산이 물었습니다.
“어디로 가시오?”
“석교石橋지방으로 가고자 합니다.”
“무엇을 하시려고요?”
“오백나한을 친견하고자 합니다.”
“내가 듣건대 오백나한이 몽땅 소가 되었다는데요.”
이에 선사가 말했습니다.
“창천蒼天 창천蒼天이로다. 아이고! 아이고!”
그러자 한산이 말했습니다.
“비록 후학後學이지만 대선지식이구나.”
그러나 선사는 이를 듣고서 “허허噓噓”하면서 긴숨을 내쉬었습니다.
중생 소견으로는 신통자재한 나한승들이 ‘소가 되어 가버렸다’고 하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데
그 말을 듣고서 남전 스님이 ‘아이고 아이고’ 하고 곡을 하였고,
또 맨 마지막에는 ‘허허’하고 혀를 찼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이는 참으로 의심스런 선문답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여러분들이 화두를 바로 들고서 타파하기만 한다면 바로 알게 됩니다.
남전 스님 회상에서는 소와 함께 사는 것이 일상사였습니다.
남전 선사가 어느 날 소를 끌고 법당 모퉁이를 도는데 수좌가 소 잔등을 한 번 때렸습니다.
그러자 선사께서 법당을 돌다 말고 멈추고 서 있었습니다.
그러자 이를 보고 있던 조주趙州 선사가 풀 한 묶음을 가져다가
수좌의 앞에다가 갖다 놓는 것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서 뒷날 장산蔣山 선사는 이렇게 대신 대답하였습니다.
“조주의 콧구멍을 잡아서 끌고 가리라.”
그리고 남전 선사께서 시중示衆하여 이런 법문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내가 어릴 때부터 소 한 마리를 길렀는데,
개울 동쪽에다가 놓으려니 국왕의 물과 풀을 침범하지 않을 수 없고,
개울 서쪽에다가 놓으려니 역시 국왕의 물과 풀을 침범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분수에 맞게 가두어 놓고서 그가 전혀 방해치 않게 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
어느 날 남전 스님에게 조주 선사가 물었습니다.
“지유저인知有底人 즉 있음을 아는 사람은 어디로 갑니까?”
“산 밑 단월댁에 한 마리의 소가 되느니라.”
이에 조주가 다시 말했습니다.
“스님께서 지도해 주신 데 대하여 감사를 드립니다.”
이에 남전 선사가 말했습니다.
“작야삼경월도창 昨夜三更月到窓이라. 어젯밤 삼경에는 달빛이 창에 비치었느니라.”
또 남전 선사에게 어떤 납자가 물었습니다.
“스님께서 방장실로 돌아가시면 무엇을 가지고 지도하십니까?”
이에 선사가 말했습니다.
“지난 밤 삼경에는 소를 잃었고 새벽에는 불조차 잃어버렸느니라.”
소와 불은 모두 긴요한 것인데 필요할 때
모두 잃어버리고 아무 것도 없어 아무런 할 일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남전 스님이었기에 마지막 열반시 법거량에도 소는 어김없이 등장하게 됩니다.
남전 선사께서 열반하시려고 하니 수좌가 물었습니다.
“화상께서는 백년 후에 어디로 가시렵니까?”
“산 밑에 가서 한 마리의 소로 태어나리라.”
“저도 화상을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그대가 나를 따라오려면 한줄기 풀을 물어오라.”
참으로 남전 선사다운 가풍家風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다시 처음의 ‘위산수고우山水牛’ 공안公案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위산 선사는 “노승이 백년 후에 산 아랫마을 단월가에 한 마리의 수고우가 되어
왼쪽 옆구리에 ‘위산의 승려 아무개’라고 쓰겠다.
그때를 당해서 이 위산을 수고우라고 부르겠느냐? 수고우를 위산이라고 부르겠느냐?
필경에 뭐라고 해야 되겠느냐?”라고 한 바 있습니다.
이 물음에 그의 제자 앙산 스님은 대중 속에서 나와서 절을 하여 자기의 견처를 보인바 있습니다.
백장 선사께서 운거雲居 화상을 만난 자리에서 ‘위산수고우’에 대하여 말했습니다.
“듣건대 요즈음 위산이 한 마리 소로 태어났다고 하더군요.”
이에 운거 화상께서 말했습니다.
“피차노대彼此老大니라. 백장이나 나나 모두 늙었습니다.”
그러자 백장 선사는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습니다.
반살림을 지낸 결제대중들은 알겠는가?
앙산 스님이 절을 한 것에 대해서 묻지 않겠습니다.
왜 백장 선사께서는 운거 화상의 ‘피차노대彼此老大’라는 대답에 말문을 닫았겠습니까?
잘 참구해보시기 바랍니다.
부도위산부도우 不道山不道牛하니
인착하처유래유 認錯何處有來由오
분명열파응수회 分明裂破應須會라
회득환동불계주 會得還同不繫舟라
위산이라고도 소라고도 할 수 없으니
잘못 알았다면 어디에 이유가 있는가?
분명하게 찢어보일 때 알아차려야 하나니
알고 보면 원래가 매여 있지 않은 나룻배라네.□
불기 2547(2003)년 6월 29일(음. 5. 30.) 대적광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