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흥법사지興法寺址 진공대사탑비眞空大師塔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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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의 미소 - 해인
2003년 07월 257호

하늘에는 경계가 없다. 우리가 숨쉬는 공기와 한줄기 시원한 바람이 다르지 않으며, 하늘의 구름은 더운 대지에 비가 되어 내리지만 그 둘의 경계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 하루를 두고 뜨고 지는 태양과 눈 앞을 밝혀 사물을 분간케 하는 빛은 그 근원이 하나이므로 하늘과 땅과 중생을 분별하여 그 마음을 굳이 밝히려고 하며 또 그 어디에 둔다고 한들 그것 또한 옳은 판단이겠는가. 사물의 구분도 이와 같거늘 부처와 중생을 둘로 나눌 수 없는 일이요, 다만 지극함만이 그것을 알아볼 수 있을 뿐이다.
태백 준령에서 시작한 물줄기가 큰 강을 이루어 저 서해바다로 들어가듯이 신라에서 고려로 그 나라가 바뀐 것은 그저 강물 주변의 풍광風光이 달라진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므로 앞서 흐르던 그 강물이 달리 변해 흐른다고는 할 수 없는 것처럼 그 백성 그대로 역사의 흐름 속에 함께 흐르고 있다.
진공 대사眞空大師는 선법禪法을 익혀 돌아온 후 양양 진전사陳田寺를 찾아 도의道義의 탑 앞에 제자의 예를 올리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고려의 태조太祖가 대사가 머물던 소백산 한 절로 찾아와 법문을 청해듣고 그 설법에 감화되어 훗날 왕사로서 그의 곁에 머물기를 간청하였으나 대사는 이내 사양하고 산으로 돌아갔으니 이는 지극함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았기 때문이리라. 소백산 어느 곳에서 입적하신 대사이지만 우리 나라의 선법禪法을 처음으로 세운 도의 국사道義國師를 마음의 스승으로 삼았던 까닭에 흥법사와 인연이 되어 그곳에 묘탑과 탑비가 남아 있게 되었다.
눈 앞에 들판과 작은 내를 내려다보고 있는 흥법사터에는 역사의 흘러간 자리가 마치 강물의 흔적처럼 삼층석탑과 진공 대사의 유적으로 남아 있다. 고려 태조가 직접 지었다는 비문은 세월을 이기지 못하여 따로 옮겨 보관되었으니 시간의 흐름 앞에는 역사라는 흔적도 덧없기 짝이 없다. 다만 그곳에 남아 있는 유허遺墟는 그 옛날 도도히 흐르던 강물 주변의 풍광 단편을 맞추어 보고서 전체를 가늠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