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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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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론 - 현담 1985년 01월 35호
우리가 불교를 믿는다는 것은 불교를 통한 우리들의 인간과 세계에 대한 조명이 비교적 타당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비교적이라는 단서를 붙인 것은 어떠한 논리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보다는 부단히 우리들의 삶 가운데서 적용하고 검토하는 과학적 태도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러한 가운데서 추출된 가치를 신뢰하기 때문이다. 불교는 결국 인생과 역사를 소중히 생각하고 그 가운데서 의미를 찾는 사람들에 의해 생성 발현되어진 것이고 그렇게 살려는 사람들에 의해서 존재하는 가치, 즉 세계관이다. 이러한 불교적 세계관을 통해서 오늘날 우리의 모습, 현실과 역사를 보는 것이 불교인의 자기 태도이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의 차이는 크다고 하던가. 우리 불교의 현실이 자기 고유의 가치와는 너무나 무관하게 보이는 것이 솔직한 오늘의 모습이다. 오늘 우리에게는 진정 현실과 역사에 대한 사려 깊은 애정의 태도를 보기 어려우며 동시대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진지한 자세를 찾기 어렵다고 하는 것이 오늘 우리 불교의 초라한 모습이다.
모든 중생을 위한 부처님의 자비 원력은 결국 인간 문제로부터 출발해서 인간의 문제 가운데 계신다. 중생이 항구하기 때문에 부처님은 영원하시다. 보살 또한 마찬가지다. 모든 보살, 모든 부처님은 오늘 우리들 가운데 계신다.
우리불교는 이제 이러한 자명한 진리가운데 겸허하게 다시 돌아와야 한다. 진실로 다시 돌아와서 우리들 인간의 삶을 찾아야 하고 역사를 새롭게 발견하여야 한다. 이러한 역사와 인간과 사회가운데서 자기를 회복하여야 하고 그 존재 의의를 찾아야 한다. 막연히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인간과 역사가 아닌 오늘날의 가장 갚은 중심부에서 허덕이는 구체적인 중생의 삶과 고통가운데서 소생의 길을 찾아야 한다. 우리 불교가 아무리 많은 숫자를 나열하고 팔만장경이 산간에 가득 쌓여 있을지라도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중생의 신음 소리 가운데 있지 않는다면 그건 정말 슬픈 허장성세에 다름 아닌 것이다.
날이 가고 해가 바뀌어 새로운 날의 잔치가 시작되었어도 우리 불교가 즐길 판은 보이지 않고 젯상에 올릴 과일이며 떡 또한 변변치 않다. 온갖 잡귀신 소리 드높고 먼지 자욱히 일으켜도 제어할 힘이 없다. 뿌리 비록 깊다 하여도 하늘 바칠 가지 부실하니, 달밤에 눈물 흘린다고 어울릴 풍경은 아니다.
이제 우리는 벽력치듯 단단히 알아야겠다. 모순은 결국 내적인 것이다. 우리불교의 다리를 걸고 넘어지는 것은 밖의 도깨비보다도 오히려 자기 안방 깊숙히 자리 잡고 있지 않은가도 살펴봐야 할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밖에서 문제를 찾고 있을 때 도적은 더욱 고요하고 어엿하게 자리를 틀고 앉아 불교를 더 큰소리로 외칠 것이고 더 현란하게 희롱하는 것은 아닌가도 살펴봐야 할 것이다. 어설픈 어우러짐과 부추김보다는 오히려 더 치열하게 분리하고 경계하는 것이 시급하지 않은가도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이렇게 근본의 입장에 서서 철저히 자기부정과 변혁을 이루지 않는다면 우리 한국불교는 앞으로 엄습할 거센 한파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존재냐 소멸이냐의 절박한 명제 앞에 해답할 길은 달리 없다. 오늘 이 땅의 역사와 민족과 민중의 요청 앞에 뜨겁게 응답하는 그 길 밖에 다른 길이 없다. 그 가운데서 새로운 자기형식과 모습을 가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길은 그렇게 어려운 길이 아니다. 한국사에서 우리불교가 걸어온 그 낯익은 산과 강과 구름을 열심히 맨발로 혜쳐나가다 보면 이른 바 민족문제와 불교문제, 민중현실과 불교현실이 정면으로 마주치는 자리가 있을 것이다. 이 온갖 모순이 통일되는 자리가 바로 불국정토라고 할 수 있거니와 이 불국 세계는 저 먼 서방의 땅이 아닌 바로 이 땅의 민족통일과 민족, 민중의 해탈이 실현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 한국불교는 그 유래 없는 대 파국의 국면에 처해 있다. 내외적인 모순의 와중에서 주체적인 응전력을 갖지 않으면 살아남을 도리가 없는 상황가운데 있다. 이 땅의 진정한 민족의 종교, 민중의 보금자리일 수 밖에 없는 우리불교는 그야말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싸움을 시작하여야 한다. 안으로는 전근대적인 보수봉건적인 비역사적인 구태가 그것이요 밖으로는 지난해 초파일을 전후하여 한국불교에 대한 일대 침략을 감행한 로마 카톨릭과 그와 한 무리인 매판기독교 일체의 매판적 외래문화가 그것이다. 그리고 저들 세계기득계급의 대부요 문화적 제국주의 권주의자들과 동조한 세력 또한 우리들의 문책해야 할 대상이며 교과서 왜곡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자들과의 문제도 우리가 해결해야 할 긴급한 과제이다. 이 싯점에서 어떠한 고급 유화론도 또한 배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