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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바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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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아침특집-해인지, 포교지로서의 그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 - 홍미경 1985년 01월 35호
해인이 불교의 활자매체로써 이 땅에 불음(佛音)을 전하게 된지도 새해를 맞아 어느새 만 3년째 접어든다.
고등학교 때 처음 해인을 받아들고 ‘우리에게도 이런 것이 있었구나! 부처님 고맙습니다. 하고, 감격해하던 일이 엊그제 같기만 하다.
사실 그전엔 송광사 불일회보외엔 달리 이렇다 할게 없었고 그것마저 세로활자에다 한자혼용이어서 멀게만 느껴졌었다. 그러던 차에 만난 해인은 절로 감동적이 아닐 수가 없었다.
매달 꼬박 꼬박 해인의 여덟지면을 읽으면서 나는 어느 만남보다 훨씬 더 크고 소중한 만남을 갖을 수 있었다.
성철 큰스님 등 여러 스님들의 법어를 통하여 혹은 벽화 설명을 통하여, 또 독자들의 글속에서 부처님의 마음과 부처님을 향한 마음을 만났다. 해인사 구석구석이 환하게 되었고 무엇보다 가슴 한켠 넉넉한 부분이 자리하게 되었는데 훗날 만해의 님의 침묵을 읽으며, 이 부분이 바로 해인이 내게서 기루어 낸 님의 한쪽 부분인 것을 알았다. 해인이 님을 기루어 내는 소중한 작업이라는 것을 안 뒤부터 해인은 아예 내 안에 들어와 살게 되었다.
이제 만3년, 전국 방방곡곡 해인의 메아리가 울려 퍼지지 않는 곳이 없게 되었고 또한 그만큼 사람들이 해인에게 거는 기대와 관심도 크게 되었다.
이제 새해를 맞아 해인도 좀 더 자랐을까. 세돐 해인에게 우리는 무엇을 바라고 어떤 모습을 기대하고 있을까.
사람도 그렇고 나무도 그렇지만 자라지 않는 것은 죽고 만다. 살아서도 죽음이고 만다. 모든 자라는 것은 그 진실에서는 새롭다는 말이다.
그간 해인의 자립을 지켜봐 왔지만 욕심 탓일까 요즘에 와서 다소 무딘감이 없지 않다. 이는 곧 해인에 거는 내 바램과 기대가 커져서이기도 하지만 나름대로 이제까지의 해인 양식은 그 지닌 수명이 다했다는 생각이 든다. 흰 아트지에 칼라사진도 산뜻한 느낌보단 실속이 없다는 느낌을 줄 때가 있고, 지면마다의 분위기도 뭔가 지루한 감이 없지 않다. 전체적 편집 방향이 보다 새로워질 때가 되었다고 본다. 개인적 바램이지만 원고 선정에 있어서도 특별기고나 논단, 수상 등도 중요하지만 유명인들의 평가 받는 글이 의외로 독자들에게 무의미 할 수도 있다는 것을 헤아려 우리에게 보다 감동과 깨침을 줄 수 있는 얘기 거리를 찾아내어 실었으면 하고, 아이들 글이랑 나이 드신 분들의 경험담, 젊은이들의 신행수기등 살아있는 내용들이 아쉽다. 그리고 독자란은 꼭 있었으면 한다.
나는 해인이 늘 스스로에 불평과 불만을 가지고 있어 주길 바란다. 자기자신의 위대함, 사명감을 자각하는데서 오는 불평과 불만 말이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속에서 늘 새로 왔으면 한다. 해인사의 새벽예불처럼 한음으로 성스러우며 가야산처럼 맑고 깨끗하며 그 위에 펼쳐진 하늘처럼 푸르고 푸르러 닿는 가슴마다 그대로 님이 되게 참되고 참되었으면 한다.
새해를 맞아 다시 한번 원하옵건데 해인이여,
이 땅의 불교인들. 아니 모든 사랑들 가슴가슴 마다에 님이 기루어질 때까지 쓰러짐 없이 정진하소서, 정진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