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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불암(七佛庵) 터의 석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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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의 명소와 유물 - 편집실 1984년 02월 24호
칠불암(七佛庵) 터의 석불 ; 가야산 상봉 바로 아래 우측으로 3Om쯤 작은 길을 따라 들어가면 오랜 세월로 마멸되어 가는 석조여래입상(보물 제264호)이 외로이 서 있다. 학자들의 얘기로는 위 석불의 조성 연대를 통일 신라로 보고 있지만 해인사에 구전되어 오는 이야기로는 훨씬 그 이전 가락국시대에 모셔진 석불이라고 한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의하면 가락국의 시조 김 수로왕은 인도 아유타국(阿踰陀國) 의 공주 허 황옥을 왕후로 맞아 들여 열 명의 왕자를 두었다고 한다. 그 중 첫째 아들은 수로왕의 뒤를 이어 가락국의 2대왕이 되었고 둘째 아들은 왕후의 성을 따서 허(許) 씨가 되었는바 지금도 김해 김씨와 허씨는 한 핏줄을 타고 났다 해서 결혼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세째 아들은 일본에 건너가 최초의 왕이 되어 고대 일본을 통치했다고 하며 나머지 일곱 왕자는 허 황후와 함께 아유타국에서 건너온 보옥(寶玉)선사(장유화상이라고도 부른다)를 따라 출가하여 가야산에 들어와 수도했다고 한다. 그때 일곱 왕자가 수도한 곳이 칠불암이며 위의 석불도 그때 일곱 왕자가 일곱 부처님을 조성해 모셨는데 지금은 l구(軀)의 석불만이 남아 그 당시를 회상하게 해 준다. 일곱 왕자가 가야산에서 수도 할 적에 어머니 되는 허씨 왕후가 찾아 왔지만 도를 깨쳐 성불하기 전에는 누구도 만나지 않겠다고 하여 허 황후가 눈물을 흘리며 해인사 일주문 앞에 있는 조그만 연못에 비치는 가야산 상봉의 그림자만 보고 돌아갔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그 연못을 영지(影池)라고 부른다. 가야산에서 3년간 수도를 한 일곱 왕자는 다시 보옥 선사를 따라 의령의 수도산을 거쳐 지리산으로 들어가서 참선하다가 일곱 왕자가 한꺼번에 도를 깨쳐 성불했다고 한다. 김수로왕은 일곱 왕자가 성불한 자리를 기리기 위해 절을 지었으니 그것이 지금의 지리산 칠불암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설화들은 고증할 만한 자료의 부족으로 학계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김해 지방을 중심으로 구전되어 오는 이야기나 현재 남아 있는 유적들을 보면 이 나라에 불교가 중국을 통해 고구려에 처음 들어온 것이 아니라, 인도에서 바다를 건너 가락국으로 바로 전래되어 왔음을 보여 준다. (서기 48년)
해인사 칠불암의 석불은 오랜 세월 동안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어깨와 두 팔 부분이 깨어지고 목이 떨어져 있던 것을 14년 전에 김해에 사는 김해 허씨 후손되는 불자들이 찾아와 복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