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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속의 불교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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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현종 1984년 01월 23호
인간은 이 지구상에 생존하는 생물들 중에서 가장 지혜롭고 신성한 존재라고 말한다. 특히 인류가 건설한 문화는 지혜의 힘으로 이룩해 놓은 보탑(寶塔)이라 할 것이다.
20세기는 과학의 세계라 불리운다. 도킹에 성공한 우주 과학과 유전 공학은 인간의 의지를 하늘에까지 뻗치는가 하면 똑같은 복제인간을 만들게 하는 등 온갖 조화를 부리고 있다. 청동기 시대에는 고작 20년 정도 살던 목숨을 현대인의 평균 수명을 70세까지 늘려 주었고 얼마 후에는 의사가 환자에게 “당신은 몇 살까지 살기를 원하느냐?”는 등 인간 수명의 장단이 의사의 손과 기술에 달려있게 되리라고 한다.
기계의 발전과 계량의 척도에 따라 사람은 생활 속에 더 안정되고 편안하게 된다는 유물주의의 세계관은 역사상 유례없는 풍요와 편의를 제공하였고 인간은 그 속에 탐닉하여 물질만능, 과학만능의 패기 찬 오만으로 자연을 정복해 왔다.
그러나 우리 주변의 세계는 갈수록 모호해지고 갈등과 번뇌의 구렁으로 빠져 들고, 풍요한 물질 문명에 취했던 군중들은 비로소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인식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찬란한 과학기술 문명은 각종 자원의 고갈, 환경오염과 생태계의 교란, 인구조절 문제와 식량위기, 세계적 기상이변, 전쟁 발발의 위험성, 매카니즘에 의한 인간가치의 상실, 그에 따른 인간의지의 심약과 정신분열 등등의 부정적면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말았다. 또한 지금까지 믿어왔던 전통적 사고방식과 신앙에 대한 실의는 우리들에게 더 어두운 방황의 시련을 안겨 주었다.
이러한 문제들은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서적을 통해 충분히 인식되었을 줄 믿고 그 구체적인 내용은 생략하기로 한다. 하지만 이 문제는 선진 문명국에 갈수록 더욱 심화되고 있으며 각기 사람에 따라 그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지성인들과 인간 생존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매우 민감한 감각을 지니고 있는 사람일수록 그를 수정하기 위한 노력에 심혈을 쏟고 있다고 하겠다. 필자가 일년 반의 짧은 기간 동안 유럽에 체류하면서 소위 현대 문명의 첨단을 달리고 있는 서구인들의 의식구조와 생활상, 또 그들이 바라고 있는 미래의 희망 등등에 대해 깊은 반성을 가지고 유심히 관찰한 바 있다.
물론 필자가 느낄 수 있었던 것은 크게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몇 가지 사항에 불과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곳 서양의 지성인들과 일부 활기 있고 창조적인 젊은이들이 동양사상, 특히 불교와 도교사상에 심취해 있고, 수행면에서도 동양사상의 심묘한 정신세계를 직접 높은 경지까지 체험한 사랑들도 상당수 된다는 것이다.
필자는 여기에서 서양의 지성인들이 동양의 정신세계로 고개를 돌리고 있는 사실과, 과연 불교는 그들에게 무엇을 시사하고 있는가에 대하여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간략하게 나마 고찰해 보고자 한다. 불교는 자력신앙 또는 자기 실천적 종교라고 말해지고 있다. 또한 세계의 어느 종교보다도 인간을 문제시 한다. 그리고 인간적인 입장에서 인간의 현실 생활을 철저히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특징이다. 불교는 인간학이면서 그것에 그치지 않고 본직적으로 인간의 고뇌를 해결하려고 시도된 종교이다. 그러나 불교는 단순한 이성적 종교가 아니라 그 내면 깊은 곳은 인간의 지혜를 초월한 이른바 열반적정, 상락아정(涅槃寂靜, 常樂我定)의 피안이 있다.
이 같은 측면은 스스로 빠져 들어간 혼란으로부터 지금 다시 일어설 방법을 어느 시대보다도 더 필사적으로 찾고 있는 근대 서구인에 대하여 커다란 시사를 주었다.
지금까지 오온(五蘊)으로 이루어진 것들을 실체적 자아라고 생각하고 아집과 편견, 욕망들에 끌려 전도몽상(顚倒夢想)에 헤매면서 고통을 자초하던 자신이 그것이 참된 자신이 아님을 알고 보면 절대적 자아의 자각과 확립으로 참된 우주적 인간이 된다.
이것은 반야지(般若智)에 의해. 이루어진다. 여기에는 생사가 없으니 영겁을 통한 생이요, 상대가 끊어졌으니 과학이다, 자연이다, 자유다, 공산이다 하는 양극단이 없다.
이러한 정각을 깨친 불타의 가르침 속에는 영원하고 진실된 인간상을 형성해 갈 수 있는 걸이 어디에서나 제시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