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한 사람이 선한 일 하는 사람을 일부러 찾아와 귀찮게 굴더라도 스스로 참고 견디면서 그에게 성내거나 꾸짖지 말라. 남을 미워하는 자는 스스로를 미워하는 것이다. 내가 도를 지켜 큰 자비를 베푼다는 말을 듣고 어떤 사람이 일부러 찾아와 나를 꾸짖고 욕했다. 그러나 내가 잠자코 대꾸하지 않았더니 그는 꾸짖기를 그쳤다. 내가 그에게 「만일 당신이 어떤 사람에게 선물을 주려 했을 때 그가 받지 않는다면 당신은 그 선물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그는 「그냥 가지고 돌아가지요.」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조금 전에 당신이 나를 욕했지만 나는 그것을 받아 들이지 않았소. 그러니 당신은 그 욕을 당신 자신에게 한 것이요. 마치 메아리가 소리에 응하고 그림자가 물체를 따르는 것과 같이 당신은 당신이 범한 죄업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오. 그러니 부디 악한 일을 하지 마시오.」 악한 사람이 어진 사람을 해치는 것은 허공을 향해 침을 뱉는 일과 같다. 침은 허공에 머물지 않고 자기 얼굴에 떨어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바람을 거슬러 티끌을 뿌리는 일과 같다. 티끌은 저쪽으로 가지 않고 도리어 자기 몸에 와 묻을 것이다. 어진 사람은 해칠 수 없는 것이며 화는 반드시 자신에게 되돌아 오고 만다.』
위의 말씀은 불조삼부경(佛祖三部經) 의 하나인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에 나오는 한 귀절이다. 사십이장경은 불교의 많은 경전 중에서 중요한 부분만을 발휘하여 엮어진 것으로 “나란타” 대학에서 초심승려들의 교과서로 쓰여졌다고 한다. 내용을 보면 부처님의 말씀을 42조목으로 나눈 것으로 고(苦) 무상(無常), 무아(無我) 등 불교의 근본적인 가르침으로 되어 있다. 또 애욕을 버리고 자비와 보시를 행해야 한다는 것을 일상의 비근한 예를 들어가면서 말하고 있기 때문에 불교도 뿐 아니라 일반 사람들에게도 널리 읽혀져 온 경전이다.
그런데 오늘날에 있어서는 불교 신자조차 잘 알지 못하는 이가 많은 것 같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십이장경은 후한 명제 영평10년(서기67년)에 인도에서 불교 사절단으로 건너온 “가섭마등”과 “축법란”의 두 스님에 의해서 한역되었다. 한문으로 번역된 최초의 불경인 셈이다. 사십이장경에 나오는 부처님의 간절한 법문을 몇 귀절 옮겨 본다.
「사람이 많은 허물이 있으면서도 스스로 뉘우치지 않고 그대로. 지나버리면 빗물이 바다로 들어가 점점 깊고 넓게 되듯이 죄가 무겁게 쌓일 것이다. 그러나 허물이 있을 때 스스로 그릇된 줄 알고 악을 고쳐 선을 행하면 죄가 저절로 없어질 것이니 병자가 땅을 내고 차차 회복되어 가는 것과 같다.」
「사람들은 감정과 욕망에 이끌려 명예를 구하지만 명예가 드러날 만하면 몸은 이미 죽고 만다. 하잘 것 없는 세상의 명예를 탐하느라 도를 배우지 않고 헛수고만 하니 마치 향을 사루어 그 향기를 맡기는 했지만 향은 이미 재가 되고 만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몸을 해치는 불이 명예 뒤에 숨어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애욕으로 인해 걱정이 생기고 걱정으로 인해 두려움이 생긴다. 애욕에서 떠나 버리면 무엇을 걱정하고 무엇을 두려워 할 것인가. 내 제자들이 내게서 멀리 떠나 있더라도 내가 가르친 계율을 항상 생각하면 반드시 도를 성취할 수 있을 것이지만 내 곁에서 항상 나를 보고 있더라도 내 계율에 따르지 않으면 끝내 도를 얻지 못할 것이다.」
「부모 형제와 이별하고 출가한 사문은 욕망을 쉬고 애욕을 끊어 자기 마음의 근원과 법의 깊은 이치를 알아서 무위법(無爲法 : 생사와 변화가 없는 참된 법)을 깨달아야 한다. 안으로 얻을 것이 없고 밖으로는 구할 것이 없어 마음은 진리에도 얽매이지 않고 업도 짓지 않는다. 생각도 없고 지음도 없으며 닦을 것도 없고 증득할 것도 없다. 여러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스스로 가장 높은 것이니 이것을 일러 도(道)라 한다. 출가사문이 되어 내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은 세속의 영예와 재산을 헌신짝처럼 버려야 한다. 사람의 마음을 덮어 어리석게 하는 것은 애착과 탐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