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고 하는 정의와 한계와 가치와 의무를 알고 올바른 길을 택하여 환상의 굴레를 벗고 진실한 희망의 길로 나아갑시다.
「나」라고 하니 그럼 어떤 것이 진정한 나입니까 만약 육체 본위로 살거나, 또는 물질과 식(食)과 색(色) 본위로 (色) 본위로 살아간다면 잠잘 때만이 꿈속이 아니라 눈뜨고도 꿈속이 아니겠습니까? 육체를 버리고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나 자기의 주인공인 마음을 각하고 환상에 속은 것은 바로 자아를 상실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깨우쳐서 모든 행동을 하는 것은 완성된 인격인 동시에 인간의 최고 가치를 실현하는 길입니다.
나의 한계란 육체적 소아(小我)에 사로잡혀 있음을 말합니다. 마음을 깨쳐서 모든 물질을 응용할 줄 아는 사람은 우주 천체와 세계 인류가 곧 자기의 신이나 다름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라고 하는 주관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주라는 환경과 남이라는 객체를 인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조물주가 만들었다고 하나 「나」라는 존재가 없다면 인식할 주체도 없기 때문에 이 세계는 곧 나의 마음으로 이루어진 세계 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계의 주인공은 곧 나 자신이며 이것을 가리켜 대아(大我)라고 합니다.
세계 인류는 나름대로 제멋에 삽니다. 그렇다면 자기 가치관을 얼마로 평가하는가 묻고 싶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가치를 평가 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것은 자신이 너무 귀중하여서 그렇습니까? 아니면 하찮은 존재라서 그렇습니까?
물질에 대한 욕심은 한도가 없어서 자신을 망각하고 물질의 노예로 전락하고 맙니다. 어떤 물질로도 자신을 바꿀 수 없습니다. 다만 마음을 깨쳐 만물의 영장이 된다면 가장 값어치 있는 인격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온 누리 금이라도 나의 보배 아니며
모든 성현 거룩한들 나에게 무엇되리
조계산 밝은 저 달빛 내 마음의 빛이로세
저 허공의 해와 달이 내 마음을 떠나서 있는 해와 달이 아닐 것입니다. 저 해와 달이 생명체에게 주는 혜택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산이 높다고 더 비춰주거나 물이 깊다고 덜 비춰주는게 아니고 절대 평등하게 비춰 줄 것입니다. 그러면 그 혜택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 은혜를 우리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헤아릴 수 없을 것입니다. 만일 내 마음을 벗어나지 않는 해와 달이라면 내 마음을 닦아 해와 달 같은 인간이 되어서 어둠을 헤메는 중생들을 비추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곧 신성한 나의 의무입니다.
마음을 깨치지 못하고 환경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은 잠잘 때만이 꿈이 아니라 눈을 뜨고도 꿈속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참 나」를 모르면서 살아가는 것은 그대로 장님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발 한걸음 옮겨 딛고 손 한번 들고 놓는 것이 죄업 아님이 없고 생각 한번 일으키는 것이 번뇌 아님이 없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어두운 것을 중생이라 하고 중생들이 사는 세계를 사바세계라 이르며 나고 죽는 고통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고해(苦海)라 이르는 것입니다 복을 지어 천상(天上)에 나고, 선을 닦아 인간에 나며, 시기와 질투심을 내어 아수라(阿修羅)에 나고 성을 많이 내어 지옥에 떨어집니다. 분수를 모르고 탐욕을 일으켜 행하지 못하여 축생에 나게 되니 육도고해(六途苦海)가 마를 날이 없습니다.
불(佛) 이란 각(覺)이란 뜻인데 마음을 깨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몸은 일시적인 가짜 「나」요, 마음은 영원한 진짜 「나」인 것 입니다. 그러므로 「참 나」인 마음을 깨달아 어둠에 헤메이는 모든 중생들을 광명의 세계로 인도해야 되겠습니다.
*지난 83년 12월 l6일 75세를 일기로 세연(世緣)을 거두신 송광사 우산선사의 열반을 추모하며 큰스님의 잔잔한 미소가 온 누리에 전해지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