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불가를 생각하며
찬불가는 대학생불교연합회와 같은 젊은 불자들의 집회를 위해서 새롭게 작곡되어지기 시작하여 점차 그 영향이 켜져 오늘날에는 모든 집회에서 삼귀의례를 비롯한 여러 노래들이 불리워지고 있다. 그러나 그 양(量)에 있어서나 특히 질(質)에 있어서 부족한 상태이고, 또 창작곡도 대부분이 기독교의 찬송가를 가사만 옮겨 놓은 듯한 착각을 일으키고 있다.
오늘날 모든 사조(思潮)가 서구화한다고 하여 불교의 성가 마저 서구화할 필요가 있을까? 찬불가는 불교의 현대적 수용이며 시대적 순응의 한 산물일진데 마땅히 현대화되어야 할 것이지만, 현대화라는 말이 서구화라는 말의 의미는 결코 아닐 것이다. 또 종교음악이란 세속음악과는 달라서, 단순한 연주 감상용이 아니라 신성한 종교적인 감흥이 있어야 함을 전제로 할 때 더욱 창작 태도가 신중해야 할 것이다. 누가 쉽게 많이 창작하여 세상에 발표하느냐가 문제가 아니고, 일생에 몇 곡을 창작하더라도 진정한 의미의 불교음악을 후세까지 전할만한 위대한 성가곡을 창작해야 할 것이다. 또 무조건 창작했다고 해서 발표하지 말고 찬불가에 대한 심의기구가 있어 불교성가로써 적합한가를 심의하여 적합하다면 널리 부르도록 하는 제도적인 장치가 있어야겠다. 혹자는 노래가 부족한 현재 상태에서 그렇게 엄격히 할 필요가 있느냐? 또 불교적 색채를 풍겨야만 하느냐 하는 반대 의견도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찬불가는 한 종교를 대표할만한 음악이어야 하며, 또 제정된 노래는 역사의 장(章)속에 영원히 남을 문화재임을 생각하여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찬불 작곡하는 모든 분들은 불교음악의 선구자적 사명감과 불퇴전(不退轉)의 신심을 가지고 작곡에 힘써야겠다.
찬불가는 문화적인 면에서나, 종교적인 변에서 세속과 영합하여 속화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속화되어 있는 세속적인 요소를 대중이 찬불가를 부르고 들음으로 해서 종교적으로 승화되어야 할 것이다.
대중이 일본식의 노래를, 서양식의 노래를 좋아한다고 해서 불교계마저 불교성가를 일본식, 서양식의 노래로 작곡하여 대중의 기호에 맞출 필요는 없다. 성가는 대중가요가 아니기 때문이며, 불교성가를 작곡하는 작곡가는 적어도 불교인이며 동시에 예술가이지, 음악을 파는 인기인이나 상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불교성가인 찬불가는 참으로 우리의 정신과 빛깔에 맞게 작곡하였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 기회에 첨언해 두고 싶은 말은, 진정한 불교음악을 위해서 뱀패를 전문으로 가르치는 기구가 있어서, 그 전통과 맥을 잇도록 해야 하겠다. 또한 새로운 창작곡을 현상 공모하기도 하고, 불교음악 연구기관을 신설하는 등, 이러한 기회와 전문기판을 통하여 찬불가의 질을 높이는 계기를 삼아야 할 것이다. 매스콤을 비롯한 각종 자료를 이용 보급하는데도 적극적이어야 하겠다. 위대한 종교음악가의 한 사람인 바하(J.S Bach)도 그의 천재로서만 천재가 된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모든 환경과 이해가 그 같은 천재를 낳은 것임을 알아야겠다.
음악이란 작곡, 연주, 감상이 함께 있어야 되는 것과도 같이 음악가와 일선 행정인이 서로 불교음악을 이해, 보호, 육성시켜야 되리라고 본다.
연재를 마치며
편집진에서 10회로 한정한 이 글을 처음 쓸 때에는 개괄적인 불교음악에 대한 골이 10회면 어지간히 쓸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는데 글을 요약하는 실력 부족으로 차츰 지면이 적음을 느꼈고, 결과적으로 꽁지 빠진 닭같은 글이 되고 말았다. 첨삭할 부분이 많고 미숙한 점은 더 공부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하고 다시 연구하고 선박(先博)에게 널리 불어 견식(見識)을 넓힐 것을 다짐하면서 아쉽게 필을 놓는다.
이 졸고를 쓰는데 한만영 교수의 불교음악에 판한 논문과, 국악학자 장사훈, 성경린 선생님의 논문과 나운영, 이성천 선생님의 저서와 논문에서 많은 참고와 도움 있었음을 부기(付記)하여 둔다. (끝)
*관심 속에 연재해 오던「불교음악에의 초대」를 이번 호로 연재를 끝내고 다음 호부터「불교 미술의 세계」가 이어지겠습니다. 많은 성원을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