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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 향기 속의 해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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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란 - 서영훈 1983년 12월 22호
절 가까운 동네에 살면서도 절의 좋은 점을 모르고 지냈습니다. 초파일 날 밤에 등불 구경은 그런대로 좋습니다만, 늘 보는 산, 절, 스님들인 관계로 크게 좋다거나 싫다는 느낌이 나질 않았습니다. 해인사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절이며 스님들의 수효도 많고 8만 대장경 같은 국보가 있어 유명하지만 말입니다.
그런 가운데서 기억에 남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해인사 강원에서 공부하는 원예반 스님들이 잘 가꾸어 이번 가을에는 온통 국화 향기 속에 절이 푹 파묻힌 것입니다. 노란 꽃, 흰 꽃, 자주 빛 섞인 붉은 꽃이며 모양도 가지가지로 거북 모양으로 할 길 넘는 꽃, 3층 탑, 5층 탑의 꽃, 큰 꽃, 작은 꽃 등으로 경내는 커다란 꽃밭이 되었습니다. 바쁜 시간에 스님들이 가꾸어 놓은 꽃들은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탑에는 고목나무에 분재한 국화가 있는데 기술이 놀라왔습니다. 스님들은 아마 손끝에다 국화꽃 가꾸는 요술을 감추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참, 생각납니다. 지난, 여름 뙤약볕에서 국화에 물주던 스님들의 모습이 하도 기억에 역력해서 몇 번 더 생각에 떠올린 적이 있습니다.
골몰한 듯 하면서도 잔잔한 호수 같은 표정으로 물주던 모습입니다. 맑은 공기 속에서 오로지 신심만으로 일하는 탓일까요? 옛날 스님들의 이야기에 “하루 일 하지 않으면 하루 굶는다”는 정신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부처님은 이날 따라 큰 웃음을 띠고 계신 듯 하였습니다.
요전에는 눈이 내렸습니다. 해인사에 얼른 가 보고 싶은 생각에 일이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기가 바쁘게 해인사로 향하였습니다. 아, 그 울긋불긋하고 싸아한 국화 무더기는 간데 없고, 스님들만이 파초를 짚으로 묶는 일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번 월동준비는 첫눈이 빨리 와서 서두르는 모양이었습니다.
해인사는 우리 집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어느 것을 꼬집어서 말하기는 힘듭니다. 부처님에서부터 법당, 스님, 경내 나무들까지 모두 우리 집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그날 국화꽃의 향기는 아직도 코끝에 와 닿습니다.
스님의 이야기에 우리들이 중간의 뜻으로 많이 쓰고 있는 “절반” 혹은 “반절”이라는 말은 옛날 신라시대에 비롯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때의 경주(서라벌)시내에는 절과 민가가 반반으로 있어서 “절이 반”이라는 말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경주는 특히 우리 어머니의 고향이기에 더욱 정이 가는 곳이기도 합니다. 옛날의 경주는 이웃과 이웃이 절로 이어져서 경주 시내에서 불국사까지 가는데 비 한 방울 맞지 않을 만큼 빽빽하였다고도 합니다. 생각만해도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그때에는 부처님 탁자 앞에 피어올린 향 냄새가 온 시내를 감싸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이번 가을, 국화 향기 묻힌 해인사는 여러모로 뜻 깊은 일을 남겼습니다. 국화를 가꾼 스님들을 우러러 보는 것은, 도 닦는 여가에 자립정신을 몸소 보여준 사실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 국화 향기가 모든 이웃에게 고루고루 퍼져서 “절반”이던 경주의 그 향기와 똑같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불교는 이제 젊은 스님들의 어깨에 매어져 크게 날 것입니다. 다시 한번 “절반”이 될 그날을 기다리며 조용히 합장합니다.

<합천군 가야면 해인 중학교 1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