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를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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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칼럼 - 편집실
1983년 12월 22호
12월은 한 해를 마감하는 달이다. 무시무종(無始無終)인데 어디 시작과 끝이 있으랴마는 카렌다의 마지막 한 장을 보면서 우리는 또 제야(除夜)의 종소리를 온갖 추억과 함께 들을 것이다. 사람에게 추억이란 언제나 구체적으로 남아 있다가 결국은 망각속으로 사라지기 마련이지만 계해년 한해는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 한 해였다. 눈 덮힌 가야산은 언제까지나 변함없지만 인간사(人間事)야 어디 그런가.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고 말씀하셨고 구도자들은 영원한 것을 동경하여 무상하지 않는 열반을 찾아 고행의 길을 나서는 것이 아니겠는가! 오히려 무상하기 때문에 모든 것은 더욱 소중해지고 절실해지는 것은 아닐까? 보편적으로 가치란 언제나 상대적이지만 열반만은 상대를 초월한 세계이므로 더욱 소중한 것이다.
아무튼 이제는 12월! 장지문을 닫고 뜨락을 쓸고 지나가는 바람소리를 들으며 선열(禪悅)에 잠기는 것도, 긴 누더기를 입고 뜨끈한 한 잔의 차를 마시면서 도반들과의 정이 깊어지는 것도 이 겨울에는 맛 볼 수 있는 풍정(風情)이다. 맑게 울리는 죽비 소리와 차로(茶爐)에서 물 끓는 소리와 잡목 숲에 내리는 흰 눈송이를 바라보면서 마지막 달을 우리는 보낼 것이다. 모든 근심과 번뇌는 세월의 강물에 흘려 보내고 눈 덮힌 겨울 나무를 보며 맑은 미래를 꿈꾸어 보자.
한(恨) 맺혀 응어리 진 모든 것들을 다 싣고 떠나가는 계해년에게 조용히 손 흔들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