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세계는 마음을 조용히 가라 앉히면 맑고 고요한 물에 하늘의 밝은 달이 비치듯이 삼라만상이 비치지만 어지러운 마음에는 사랑과 지혜의 달이 나타날 수가 없는 것과 같다. 이제 끝으로 선(禪)의 세계에서 본 중생의 의식과 무의식에 대해서 이야기해 마치고자 한다.
옛날의 어떤 선사를 찾아 다니는 맹인이 있었다. 그 사람은 대단히 예민한 귀를 가지고 있어서 모든 음색을 잘 분별했는데 특히 사람의 음성을 듣고 그의 기분을 읽는데 요를 얻었다고 한다. 누가 「반갑습니다.」 하고 축하하는 말을 하는데도 그 음성 속에는 슬픈 심정이 스며 있기도 하고 또 누가 죽었다 하여 조문을 가서 「참으로 안됐습니다.」라고 하는 말 속에도 어딘가 기뻐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수행을 많이 한 고승의 말씀을 듣고 있으면 언제나 한결같이 부드럽고 따듯한 음성이 들려온다는 것이었다.
선 수행을 통해 힘을 얻은 고승의 마음은 언제나 잔잔한 호수와 같이 평화롭고, 그리고 자비와 지혜가 넘치고 있기 때문이리라. 우리는 겉으로 표현되어 있는 칠색(七色)의 세계만을 가지고 이것뿐이라 생각하는 수가 많지만 그와 똑같은 것이 마음의 세계에 자리잡고 있어서 그것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가 어느 정도의 인간이 되었는가 하는 것은 꿈을 검사해 보면 안다고 한다. 꿈의 세계는 일체 감식이 없는 벌거숭이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또 인간의 잠재의식은 잠을 자지 않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잠자기 직전에 「매일 새벽에 몇 시에 일어나야지.」 하고 자기 암시를 하고 자면 그 시간에 정확하게 잠이 깨어지는 것처럼 잠재의식의 개발을 위한 훈련으로 잠들기 전 화두를 참구하는 선 수행을 생활화하면 자기 정화는 물론 강한 정신력을 위해서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선은 의식과 무의식의 일여(一如)를 필요로 한다. 무의식에서 의식이 나온 것이라 한다면 식이란 무의식이 밑바탕이 되어 있는 것이니, 의식이 움직이는 곳에 무의식이 잠재하고 있는 것이며, 차별이 있는 곳에 무차별이 있으며 모순 속에 모순 아닌 것이 움직이고 있다 할 것이다. 태풍이 불어 닥쳐 고목을 쓰러뜨리고 가옥을 파괴했다 하여 바람을 원망한다는 것은 상대의 세계에 있는 중생의 편견인 것이다. 바람 자신이 움직이는 것은 그저 쓱 지나가는 것이지 거기에 하등 죽인다든가 파괴한다든가 하는 계략이나 의도 같은 것은 없는 것이다.
밝은 태양이 빛나고 바람이 불고 비가 온다. 우리도 그 부는 바람 내리는 비와 더불어 하나가 되어 오고 가고 움직인다면 거기에는 대자유, 대자재만이 있는 일진법계(一眞法界)가 드러나는 것이니 아무 문제도 없는 것이다.
아뭏든 진실의 세계가 확실히 체달되었을 때 무엇이나 걸림 없이 모두 다 분명해진다는 것을 믿어야 할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