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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으로 가는 길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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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삼매 - 일타 1983년 10월 20호
「천지는 춘하추동을 행하게 하여 만물을 양육해 낸다. 그러나 아무 말이 없다. 나 또한 말없기를 좋아한다.」
이것은 공자님의 말씀이다.
이른바 불립문자(不立文字)를 표방하고 갚은 산 길은 골에서 면벽관심(面壁觀心 ; 벽을 향하여 좌선하여 자기 마음의 본 성품을 똑똑히 관조하는 것)을 즐기는 산승 선객이 무슨 말을 쓸 줄 알 것인가.
나는 숙세(宿世 ; 지난 세상의 생애. 즉 과거세) 에 무슨 인연이 있어 불법의 선문에 몸을 담고 믿음을 얻음에 이르른 바, 일생을 바쳐 이것을 참구코자 하는 간절한 원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호랑이가 산중에 묻혀 살듯 평생을 바위틈 솔가지 아래에서 아무것도 아는 일 없이 지내다 가고 싶을 뿐이다. 이것은 독선이 아니고 내가 나를 알아 분수를 지키려는 것이니까 그야말로 안분(安分)이라 해서 옳은 것이다.
그런데 때로는 온전히 타의에 의해서, 안정에 끌려 그 분수를 지키지 못하고 그래서 분수 밖의 일을 자주 범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누가 말했듯이 글을 쓴다는 것은 낮잠을 자고 난 나머지요,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손재주를 부리던 나머지요, 늙어 빠지도록 산다는 것은 겁파(劫波 ; 헤아릴 수 없는 아득한 시간)의 나머지라 했는데 이것을 세가지 여유(三餘)라고 불렀다. 사람이 무슨 일에나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지낸다는 것이 또한 필요한 일이고 생활하는 사람의 맛이라고도 할 것이다. 아무리 하기 싫은 일이라도 부득이 해야 할 것은 억지로라도 해보는 것이 더러는 유익한 일일 수도 있는 것이니 공덕과 흑암은 언제나 간격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어린 시절 어떤 스님으로부터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모든 것은 마음 하나에 달려 있고 마음 하나로 조작되는 것이므로 좋고, 궂고, 슬프고, 괴롭고, 또 무슨 일이 되고 안되고가 마음 하나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기에 이 마음자리 하나가 「참나」인 것이지 이 몸뚱이가 참 나는 아닌 것이라고.
이 몸이 자동차와 같은 것이라면 이 마음은 운전수와 같은 것이어서, 몸은 마음의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라고 했다. 이 마음은 모양이 없으니 청황적백(育黃赤白)도 방원장단(方圖長短)도 아닌 것이지만 여의보주와 같아서 검은 것이 오면 검게 비치고, 붉은 것이 오연 붉게 비춘다. 또 한 없는 허공과 같아서 눈깜짝할 사이에 천리 만리도 다녀오는가 하면 전파처럼 가지 못하는 곳도 없다. 또 천백억으로 몸을 나투고 우주를 포용하는가 하면 티끌 속에도 들어간다. 천년을 지내어도 늙지 않고 만겁이 되어도 그대로이다.
이것 하나를 바로 깨달아 믿어서 쓰면 바로 붇다(覺者)가 되는 것이고, 이걸 알지 못하고 미(迷)해 버리면 묻다(迷夢者)가 되어서 취생몽사(醉生夢死) 하면서 업(業)을 짓고 과보를 받으며 세세생생을 윤회하게 마련이라고 했다.
그리고 다음으로 인과(因果)법문에 젖었으며 이걸 해탈하는 것이 불법(佛法)이고 열반을 얻는 것이 목적이라고 가르쳐 주셨다.
나는 얼마 후 출가 입산하게 되었으며 많은 스승에게 불교의 교리를 배우게 되었다. 모든 경전에는 그저 한결같이 마음 하나를 보고 다스리고 닦아 증득하는 방법과 절차와 결과의 작용에 대한 맑고 깊은 이야기들뿐이었다. 이를테면 마음 하나의 세계로 향하는 노정기이기에 열심히 배우고 읽고 익힌 터이지만 그러나 약방문이 바로 약은 아니듯이 학문만으로 해탈 경지에 이룰 수는 없는 것이었다. 언어와 문자의 세계를 해탈해야만 비로소 참 열반의 길에 오를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학문을 탐구한다는 것은 명상(名相 ; 귀에 들리는 것을 명, 눈에 보이는 것을 상이라 하는데 다 같이 헛된 것으로 법의 실상에 계합하지 않으나 범부는 이 명상을 분멸하여 여러가지 망혹(妄惑)을 일으킨다.)의 덤풀이 엉키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명상이란 그 사물, 그 존재에 윤곽을 뚜렷하게 해주지만 그러나 그 무엇이라는 이름의 굴레를 쓴 이상 그 명상만의 틀 속에 갖혀 배려서 자유를 잃어 버리고 그 이름의 속박을 받게 마련일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이름의 가면(假面)에 둘러 씌워져 자신을 위대한 자로 만들기 위해서 헐떡이고 고생들을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나는 도인이다.」 「나는 박사다.」 「이렇게 해야 한다.」그러나 해탈 열반의 진리는, 결코 그런 허울을 쓴 곳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그 허울의 그림자라도 남아 있는 한 불법(진리)은 벌써 거기에서 떠나 버리고 없는 것이었다. 〈해인총림 율주〉

*해인사 지족암에 계시는 일타스님께서 3회에 걸쳐 「선의 정신」에 대해서 법문해 주시겠습니다. 해인 가족 여러분과 함께 스님께 감사드립니다.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