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가야산도 짙은 녹음의 외투를 벗고 알록달록 개성이 가득한 빛깔로 새롭게 새 모습으로 단장을 하고 선선한 바람결에 들려오는 겨울의 소식에 하루하루 분주해 하는 11월.
겨울을 바라보는 문턱에 들어서서 항상 새로움으로 무료함을 달래고자 하는 이들에게 안식처가 되어 주는 어머니 같은 가야산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 포근함을 전해 준다. 또한 그 곳에 자리한 천년고찰 해인사는 이번에 1200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전국 각지에 있는 다인 120명, 스님 열 분이 그 날 부처님 전에 헌다를 했는데 그 인원의 의미는 1200주년 개산대재의 1200을 의미한다고 한다. 두 달 전부터 사중과 강원 소임자 스님들의 빈틈없는 계획과 행사 준비 덕분에 그 동안 기다려온 개산대재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특히 이번에는 부처님 전에 헌다식까지 함께 거행할 계획이어서 전날은 차문화와 헌다식에 관해 많은 공부와 연구를 하신 선혜 스님과 여연 스님 두 분을 모시고 강좌를 듣는 시간도 갖기도 하였고 또한 개산대재를 원만히 회향하기 위해 헌다 기본교육과 함께 행사준비를 하기도 하였다. 개산대재 당일은 1200주년 개산대재를 축하하고자 훌륭하신 대덕 스님들께서 그 자리에 참석해 주시고 빛을 내어 주셔서 한층 그 분위기가 고양된 것 같았다.
또한 이번 개산대재는 여느 때와는 다른 1200주년이어서인지 방장스님께서 많은 사부대중들 앞에서 훌륭하신 법문을 하여 듣는 이로 하여금 귀를 열어 주시고자 그 어느 때 보다 목소리에 힘이 있어 보였고 행사를 지켜보러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은 큰스님의 이 같은 법문을 조용히 숨 죽여가며 듣고 있었다.
이 같은 좋은 날에 여러 큰 스님들의 축사가 연이어 진행되고 각계 인사들도 또한 산문의 행사이지만 모여들어 큰스님의 법문과 축사를 경청하기도 하였다.
또한 이 날을 축복하고 빛나게 하고자 부처님께 헌다를 하는 전통의식까지 거행했다. 그래서 부처님전에 올려질 차 공양은 우리들에게 참 마음과 수도하는 마음을 갖게 함으로 이를 표현하고자 오늘 모여든 다인들의 모습들이 마치 하늘에서 내려 온 선녀같이 새하얀 고운 한복과 갖가지 아름답게 물들인 한복들로 예쁘게 차려입고 있어 너무나 아름다워 보였다. 오늘 뜻 깊은 이 자리에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은 개산대재와 함께 이어진 헌다식의 정성스런 모습에 흠뻑 빠져 있는 듯했다. 나는 대중소임을 맡고 있어서 헌다식에 직접 참여하여 부처님전에 헌다를 할 수 없어서 참으로 아쉬움이 많았다. 항상 열심히 준비하던 도반스님인 진일 스님 역시 그 동안 노고의 결과인지 이 날의 행사의 근엄함을 보여 주었고 정중앙을 가로 지르는 헌다식 앉는 자리는 마치 기러기떼가 피안의 세계를 향해 날아가는 것처럼 양쪽으로 여러 줄씩 가지런히 준비되었고 바로 앞에 보이는 비로자나불의 광명 속에 들어가고자 하는 소망을 담기 위해 따뜻한 녹차의 물과 함께 정성스레 다완에 담고 있었다. 또한 마치 옛 궁궐에서 임금의 연회에서나 들을 법한 전통 국악이 사중 곳곳에 울려 퍼지고 야단법석에 모여든 사람들은 그 장엄함에 도취되어 입 안에 고인 침마저 조용히 삼키는 듯했다.
이렇듯 보기 드문 행사를 지켜 보면서 그 동안 간결화된 우리의 많은 불전의식들을 다시 찾고 왜곡됨 없이 그대로 계승하여 그 장엄함과 옛 모습들을 오늘날에도 체험할 수 있게끔 했으면 하는 마음이 너무나 간절하였다. 대적광전 앞 마당은 120송이 화려한 꽃잎을 뿌려 놓은 듯 각양 각색의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다인들이 오늘 이 자리에 자신이 연꽃이 되어 부처님 전에 꽃 공양을 올리는 듯 싶었다. 부처님에 대한 간절한 신심과 광대한 원력을 바탕으로 하여 그들 자신의 몸에서 맑은 향기를 뿜어낸다면 그것이야말로 부처님 전에 올리는 가장 훌륭한 꽃공양이 아니겠는가! 또한 정중앙을 중심으로 양쪽에 가지런히 놓여진 여러 줄의 자리에 다인들은 자신들이 준비한 차를 조심히 들고 120명의 다인과 열 분의 스님은 전통국악에 맞추어 일제히 안행을 하여 대적광전을 향해 한발 한발 계단을 오르는 모습이 아직도 눈 앞에 아른거리고 가슴을 설레이게 한다.
이번 1200주년 개산대재에 동참할 수 있게 된 것은 정말 금생에 있어 크나큰 복이었다고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런 날 이 자리를 더욱 빛낼 수 있도록 준비한 헌다식 또한 볼 수 있지 않았던가! 다음 1300주년은 우리 모두 또한 지켜볼 수가 없다는 생각을 하니 이번 1200주년 개산대재는 나에게 있어 감회가 더욱 새롭기만 하다. 개산대재 마지막 부분인 헌다식 때 잠깐의 소나기가 내려서 모든 이들로 하여금 걱정을 하게 했지만 그래도 엄숙한 분위기에 젖어있던 다인들과 스님들의 굳건한 마음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진지해 보여서 비를 피해 지켜보던 사람들에게 미안함을 느끼게 했다. 이제 1200주년 개산대재는 무사히 회향을 했다. 그 때의 잔잔한 감동은 아직도 내 기억 속에 내 마음 속에 자리하고 있다. 수많은 사부대중과 대덕 스님들께 생일 축하를 받은 해인사는 영원히 그 모습과 명맥을 유지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