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는 가을이 되면 단풍으로도 유명하다. 산들은 어느새 단풍의 명소로 바뀌고 곳곳의 절과 정원들은 고운 단풍들로 가을 단장을 하고 배관객들을 맞는다.한 예로 봄에 벚꽃의 명소였던 기요미즈데라(淸水寺) 절은 일본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단풍의 명소로 특히 밤에 라이트 업 되는 단풍은 볼 만하다. 또한 교토 서북부에 위치한 다카오(高雄)라는 지역은 헤이안(平安) 시대부터 귀족들이 단풍놀이를 즐겼던 전통적인 단풍의 명소이다. 교토 역에서 슈산(周山) 다카오 방면의 JR버스를 타고 1시간쯤 걸리는데 이 지역은 예로부터 관동 지방으로 통하는 중요한 교통로였으며 지금도 좁은 고갯길로 많은 차량들이 오간다.
버스에서 내려 돌계단을 한참 내려가면 세이류가와(淸龍川) 계곡이 나온다. 다리를 건너 다시 높은 돌계단들을 한참 올라가면 고풍스런 진고지(神護寺) 절의 산문이 보인다.
계곡과 다리, 그리고 돌계단과 그 위쪽의 산문 사이의 단풍이 한 폭의 그림과 같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사진에 주워 담다보니 어느새 필름 한 통을 다 찍어 버렸다. 헤이안 시대의 귀족들은 이 다리를 통해 피안彼岸 세계를 들여다보고 이 세이류가와 계곡 주변에서 단풍놀이를 하였다고 하며 실제 이러한 장면이 그림으로도 전해져 온다.
진고지(神護寺) 절의 창건에 관한 확실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으나 8세기 후반에 오사카(大阪)의 가와찌(河內) 지역에 와케키요마로(和氣淸麻呂) 가문이 세운 진간지(神願寺) 절과 지금의 진고지 절에 있었던 다카오산지(高雄山寺) 절이 합쳐져 진고지 절이 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후 와케 일족은 9세기 초에 중국에서 돌아온 사이초(最澄) 스님과 구카이(空海) 스님을 이 절로 초대하여 전법관정傳法灌頂을 행하게 하였다. 특히 구카이 스님은 여기서 14년간이나 주석하여 이후 진언도량으로서 자리를 잡았다.
이 절에는 본존인 약사여래상과 오대허공장보살상五大虛空藏菩薩像과 다카오만다라와 헤이안 시대의 불화 등이 전래되고 있다. 특히 구카이 스님과 그 제자들의 문집들이 전래되고 있어 다카오 진고지 절을 더욱 유명하게 만들고 있다.
금당에 안치되어 있는 약사여래입상은 원래 진간지 절의 본존으로 8세기 후반에 만들어졌으나 그후 진고지 절로 옮겨와 본존이 되었다. 상의 재질은 목조이며 두부에서 대좌까지 한 나무로 조각한 상이다. 높이는 170.6센티이고 광배와 연화대좌를 갖추고 있다.
나발螺髮은 대립大粒으로 육계가 높이 솟아 있어 전체적으로 두부를 굉장히 강조하고 있다.
이 불상의 얼굴 표정은 지금까지 보아왔던 자비로운 불상의 이미지와는 달리 코와 입이 얼굴 중심에서 조금 비껴나 있고 굵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어 전체적으로 노여움을 띄고 있다.
한편 볼에는 거친 징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도 다른 불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징 중의 하나이다. 대의는 몸을 감싸며 복부와 양대퇴부를 깊이 새겨 볼륨을 잘 드러내고 있다. 양어깨에서 흘러내리는 옷주름의 끝과 양팔에서 떨어지는 옷주름의 끝, 그리고 다리 옷주름 끝자락 등은 부드러운 곡선을 긋고 있어 바람에 살짝 흩날리는 듯하다. 측면관도 양감을 확실히 느낄 수 있으며 오른쪽 어깨에서 보면 마치 작은 파도와 큰 파도가 번갈아 물결치듯 옷주름을 뚜렷하게 새기고 있다.
이 상은 여러 가지 점에서 일본 조각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우선, 상의 재질이 목조이면서도 하나의 나무로 만들어진 이찌보쿠쯔쿠리(一木彫) 조각의 시발을 이룬 상으로 추측되어진다. 또한 이 상의 인상이 뭔가 위압적이고 강렬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기에 처음 배관할 때는 섬뜩함마저 느끼게 한다. 지금은 검은 옻칠을 하여 전신이 검은빛이며 금당 안이 어두운 탓에 더욱 위압적이다.
처음 교토에 와서 이러한 불상을 접하면서 왜 이와 같은 불상의 이미지를 만들고 소중하게 봉안해 오는지에 대해 궁금함과 동시에 마음이 끌렸다. 진고지 절의 약사사여래상이 만들어진 8세기 후반부터 9세기 초는 사회적으로 굉장히 불안한 시기였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정쟁 속에서 정치적인 실각자가 속출하며 무참히 최후를 마치는 사람이 많아졌다. 이러한 사람들로부터 원한을 산 귀족과 그 일족들은 부처님의 힘을 빌려 이들의 원한을 막고자하는 어령불御靈佛을 만들어 자신의 원찰에 봉안하였던 것이다. 진고지 절의 약사여래상도 이러한 어령불의 일종으로 조성된 것이었으며, 이외의 어령불 중에서 나라의 마쯔오지(勝尾寺) 절의 약사여래상과 신야쿠시지(新藥師寺) 절의 약사여래상, 미에켄(三重縣) 현 간보다이지(觀菩提寺) 절의 십일면관음상 등은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이들 불상들의 특징으로는 얼굴선의 중심선이 비틀려 있거나 얼굴이나 몸의 부분에 징의 자국이 남아 있으며, 무엇보다도 뭔가를 제압하려는 듯한 위압적인 분위기가 강하다. 따라서 이러한 어령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사회적인 배경과 불상을 조성한 사람의 조성 원의願意를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일본인 중에는 이러한 어령불에 대해서 어떤 사람들은 부처님의 상호로서는 너무나 위압적이라서 싫다고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일본의 전통문화와 습합된 불상으로 그 독특한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아까 올라갈 때도 보았지만 산문으로 통하는 돌계단 위에는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아마도 이 다카오의 단풍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사람들을 피안세계로 이끄는 역할에는 변함이 없는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