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맞춘다고 서둘렀음에도 결국 시작 시간을 맞추지 못하고야 말았다.송광사의 무비 스님 전강식에서
9명이 전강을 받다
법당 안은 이미 발 디딜 틈도 없고, 안에서 자리를 못 잡은 이들이 법당 밖에서 합장하고 있었다. 성능 좋은 스피커에서는 전강식 진행을 맡은 일귀 스님의 듣기 좋은 음성이 법당 안의 전경을 짐작케 해주었다.
대체로 전강식은 사중에서 조촐하게 치러졌다. 더구나 따로이 날 잡아 하기보다는 행사 말미에 더불어 행해지곤 했다.
그러나 이번 전강식은 좀 달랐다. 송광사 사중의 스님과 신도들 뿐 아니라 전국 강원의 강주 스님들이 참석하는가 하면 교계는 물론 일간지 신문기자들이 취재경쟁을 벌이느라 연방 플래시가 터지고 있다. 전강식이라는 용어 자체도 생소해진 요즘 이만큼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더더구나 보기 드문 일이었다.
전강법사는 무비 스님이고 전법제자는 능허, 현진, 원철, 지상, 용학, 정한, 지성, 상현, 현석 등 아홉 분의 스님들로 은해사 승가대학원 1, 2기 출신들이다. 이렇게 많은 스님들이 한꺼번에 전강을 받는 것도 유례가 없던 일이기는 하다.
은해사 승가대학원은 개혁종단이 들어서면서 세운 종단 유일의 강사 배출 교육기관으로 무비 스님은 이 곳의 원장을 지내셨다. 아홉 분 스님 모두 은해사 승가대학원을 통해 무비 스님과 인연을 맺었다.
어쩐지 은해사에서 해야 어울릴 것 같은데, 전강식의 인연은 송광사와 맺어졌다. 송광사와 여러 가지 여건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일단은 방장이신 보성 큰스님의 교학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첫째였고, 이번에 전강을 받은 스님들 중 한 분인 현진 스님이 송광사 강원의 강주가 돼 기념의 의미도 있었다. 그리고 승가대학원 1기인 일귀스님이 송광사 교무소임을 맡고 있다는 것이 행사진행을 순조롭게 했다.
행사진행의 책무를 맡은 일귀 스님
일귀 스님은 이번 전강식을 위해 행사 준비에서부터, 진행, 뒤처리까지 실제적인 제반 사항을 도맡았다.
사실 전강식이라고 하여 이러이러한 순으로 진행된다는 정해진 틀이 전해져 내려오는 것은 아니었다. 시대에 다라 그 형식도 달랐지만 일 대 일 전승이 대부분이라 의식을 크게 생각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고불문, 전법게 수여 및 법어, 입지발원문 등 전통적으로 진행돼왔던 의식에다가 대중법회행사라는 의미까지 결합시켜 여법하게 전강식을 구성하려 무척 애를 썼다.
보는 이나 따르는 이에게는 크게 변화가 있어 보이지 않아도 실제 일을 해본 사람이라면 자그마한 변화가 얼마나 많은 고민 끝에 나올 수 있는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예전에는 전강식이라는 것 자체의 필요성을 크게 못 가졌을 거예요. 가르침을 받던 스승이 나이가 많아지면 후학 중에서도 그중 나은 제자에게 ‘다음부터 네가 해라’ 하면서 책도 물려 주고 했겠지요, 그렇게 인가해 주셨겠지요. 그러면 이제 제자가 이어서 학인들을 가르치고.”
그러나 우리도 한 번 의식절차를 제대로 밟아 위상과 위의를 바로 세워보자는 뜻이, 승가대학원을 졸업한 스님을 중심으로 모아져, 몇 년을 벼른 끝에 이루어진 것이 이번 전강식이었다. 뭔가 처음을 만든다는 것은 그만큼 쉽지가 않다. 그래도 시절인연이 닿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가장 애쓴 스님들 중의 한 분인 일귀 스님은 정작 전강을 받지는 않았다. 이미 1995년 박한영 스님의 강맥을 이은 운성 스님으로부터 전강을 받았기 때문이다.
전강을 두 번 받을 수는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옛인연을 소홀히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은해사 승가대학원 졸업생 가운데 일귀 스님만이 전강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일귀 스님을 비롯한 몇몇은 이미 다른 스님께 전강을 받은 바 있고, 다른 스승을 염두에 두고 있는 이도 있을 것이며, 전강받기를 원하지만 아직 스승의 인가가 나지 않은 경우도 있다.
전강은 과정만 끝나면 받는 졸업과는 달리 강맥을 이을 제자를 선정하는 만큼 받는 이의 자격심사가 나름의 잣대로 다시 이루어지게 된다.
그러나 전강은 스승만이 신중을 기하는 것이 아니다. 전강을 받는 이도 이 한 번의 기회를 신중하게 고려하게 된다.
송광사, 전강법사가 법상에 올라
설법하다
일귀 스님이 본인은 전강을 받지 않으면서 이 전강식을 위해 동분서주한 데는 이유가 있다. 전강식의 전통을 살려, 이것이 하나의 법식이 되고, 강사들이 스스로를 다시금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전강식을 갖지 않더라도 승가대학원을 나오면 누구든 강사 자격은 주어진다. 그러나 전통의식을 통해 강사들이 불법을 부촉받은 공인으로서의 사명감을 더욱 절감케 하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젊은 강사들의 의지를 고맙게도 송광사에서 흔쾌히 수용하였다. 그 과정에서 방장 스님, 주지 스님 그리고 일귀 스님의 공이 컸다.
그리고 송광사에서는 전강법사에게 법상에 오르도록 하였다.
언제부터인지 법상에는 선사만 오르지 강사는 올라가 강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 무비 스님이 법상에 올라 대중을 향해 설법을 하였다. 그 때만은 증명법사로 나와 앞서 법상에 올랐던 총림의 방장 스님까지도 법상 아래에서 강사 스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일귀 스님은 이 부분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총림에서 강사가 법상에 올라간 것은 의미있는 일입니다. 한국불교는 선 중심이잖아요. 선사는 법상에 올라가 설법을 해도 강사는 오를 수가 없었던 것이 그동안의 관례아닌 관례였습니다. 오늘 송광사에서 옛 전통을 복원한 거예요. 아마 다른 절이라면 쉽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는 모르죠, 송광사가 물고를 텄으니.”
선과 교가 양립할 때만 해도 전강법사뿐 아니라 전강을 받는 제자들도 법상에 올라 대중설법을 했다고 한다.
물론 이번 전강식에서 전강제자들은 설법 대신 자신들의 뜻을 한데 모아 ‘입지발원문’으로 대신했다. 인원이 9명이나 되기 때문에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그러나 전강제자들도 자신들의 지식과 깨달음이 어디에 이르렀는지지 대중 앞에서 드러낼 수 있는 개당설법이 있어야 명실상부한 전강식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일귀스님은 말한다. 그리고 설법은 법상에 올라앉아 해야 할 것이라고.
그러나 아직 제자들까지 법상에 올라 설법을 할 수 있기까지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고 수긍하고 넘어간다.
총림에서 강사가 법상에 오른 이번 일을 이번 전강식 준비를 맡아온 일귀 스님은 이것이 사중의 단순한 배려라고는 보고 있지 않다.
이는 다른 한편으로 불교계 내에서 강사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음과, 강을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는 교학의 필요성을 자각해가고 있음을 반증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교학의 중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한두 해 전 이야기는 아니다. 종단에서는 이미 10년 전부터 출가자의 학력을 고졸 이상으로 높였고, 행자교육원을 졸업하면 5급 승가교시를, 강원 4년 이수자에게는 4급 승가고시를 보도록 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선원 4안거 이상을 성만한 이에게 3급 승가고시를 보도록 해 앞으로 절 주지가 되려면 3급 승가고시를 통과해야만 한다. 그만큼 교학의 중요성과 더불어 선교의 조화가 필요함을 이 시대가 요구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구산 스님 시봉할 때의 일이다. 행자 때부터 구산 스님으로부터 화두를 받아 챙겼던 일귀 스님은 어느 날 나름대로의 깨달음을 얻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너무나 기뻐 화두가 ‘잡혔다’며 구산 스님께 말씀 드렸더니, 스님은 모든 일을 멈추게 하시고는 방에 앉아 일주일을 용맹정진하라 이르셨다.
충천하던 기운이 한 5일은 갔다던가. 6일째부터는 몸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그날이 효봉 스님 기일이었는데, 제자의 상태를 눈치 챈 스님이 문앞에 오시더니 “이놈아! 헐떡거리지 말고 나랑 큰절에 가서 제사나 지내자.”하시더란다. 두말없이 큰스님을 따라 나섰는데… 이 때 스님은 수행이 쉽지 않음을 깊이 헤아리게 되었다 한다.
그동안 선방에서 여러 차례 안거도 성만했고 입승 노릇을 하기도 했지만 스님은 강사이기를 자처한다. 선을 통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것도 수행자의 본분이지만, 강을 통해 학인과 신도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르게 전달하는 것도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로 모아져 선교겸수禪敎兼修로 이어진다면 이보다 더한 금상첨화가 어디 있을까.
지금 맡아서 하고 있는 교무라는 소임은 원주와 함께 사중의 궂은 일이 몰려드는 자리다. 스님들은 사중 소임 중에서도 원주와 교무를 가장 싫어한다. 그러나 주위가 복잡해지면 오히려 단순해지고 산만하면 할수록 정定에 들기 쉬운 일인지, 스님은 출가 초기보다 요즘 오히려 수행을 더 열심히 한다. 수행도 이력이 붙게 마련이고 공부도 하고 싶을 때가 있다.
구산 스님께서 지어 주셨다는 스님의 법명은 화두를 연상시킨다.
만법은 하나로 돌아가기마련인데(萬法歸一), 그렇다면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一歸何處)?
스님은 일주일에 한 번씩 여수에 있는 불교대학에 설법을 하러 간다. 신도들과 만남의 자리를 자주 하면서 교회로 둘러싸인 불교대학의 지붕 한켠에 빈녀일등 하나 걸어둘 참이다.□
취재·글/이연정, 사진/백종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