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 여천무비 대강백 전등강맥 전수법회에 다녀와서 -</b> 지난 10월 5일 오전 11시.
송광사 대웅보전에서는 근래에 보기 드문 전등강맥 전수법회가 열렸다. 조계종 교육원장 무비 스님이 은해사 승가대학원에서 함께 공부했던 제자 아홉 명에게 강맥講脈을 전수한 전강식이 열린 것.
1996년 ‘전통강사의 맥을 잇는다’는 기치 아래 출발한 조계종립 은해사 승가대학원에서 서너 해를 꼬박 한솥밥을 먹으며 공부했던 스승과 제자들이 함께 결실을 맺는 자리였기에, 어느 화려한 법회보다 의미있고 감동이 더했다.
이번 전강식은 옛 전통에 맞게 재현하기 위해 스승과 제자들이 함께 모여 전강식 재현의 전거가 될 만한 자료를 찾고, 경험자들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하여, 다음에 전강식을 할 사람들을 위해 모델로 남기고자 염두에 두고 준비를 한 자리였다. 그런 까닭에서인지 여느 법회보다 시종 진지하게 진행되었고,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법회가 되었다.
송광사 방장이신 범일보성 큰스님의 증명 아래 사부대중 5백여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무비 스님의 법제자인 현진 스님의 송광사 승가대학 강주 취임을 계기로 치러진 이번 전강식을 지켜본 대덕스님들은 ‘종단의 장래를 위해서 의미있고 보기 좋은 모습’이었다고 입을 모았고,‘강맥을 이어받아 부처님의 혜명을 잇고 산문을 지켜갈 강사들의 탄생’을 한껏 축하했다.
전법게를 수여하는 자리에서 전강법사인 무비 스님은 자신이 편찬한 《과목현토 화엄경》 한 질을 제자들에게 신표로 전했다. 법호가 적힌 전법게와 과거칠불로부터 이어지는 전등법계보와 함께였다.
20대 초반 송광사 관음전에서 부전을 보며 간절하게 수행에 몰입해 있던 시절 ‘무명실성無明實性이 곧 불성佛性’이라는 깨달음의 불법 안목을 연 이후 ‘진정한 불법이 무엇인가’ 하는 천형과도 같은 무거운 짐을 벗었다는 고백으로 말문을 연 무비 스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사람이 이대로 곧 부처님(人是佛)이라는 사실이 저의 불교 사상입니다. 어떤 사람, 어느 생명이 부처님 아닌 것이 있겠습니까. 조사스님네들이 피나는 정진을 통해서 깨달은 것도 이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이치에 대한 확신 하나로 불가에 몸담고 모든 이에게 이 사상을 전수해왔습니다.아홉 분의 스님들은 이러한 궁극의 이치에 빨리 눈을 떠야 할 줄 믿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전강식을 영광스럽게 생각하기보다는 크나큰 짐을 졌다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불법의 안목을 여는 정진뿐 아니라, 일상생활에 있어서도 모범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학인과 강사의 차이는 두 배 더 공부하는 데 있습니다. 이 점 명심하기 바라며 여러 사부대중을 모신 이 자리에서 전강을 받았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부끄러움 없는 인천人天의 사표가 되기를 당부합니다.”
전강법사의 당부 말씀은 전강을 받는 제자들뿐 아니라 그 자리에 있었던 사부대중 모두에게 간절하고도 깊은 가르침으로 남았다.
‘사람이 곧 부처님이다’란 스승의 사상을 이어 불법을 지켜갈 아홉 명의 제자인 능허(조계종 불학연구소 소장), 현진(송광사 강원 강주), 원철(월간해인 편집장), 지상(전 은해사 승가대학원 강사), 용학(범어사 강원 강사), 정한(범어사 강원 강사), 지성(불광사회과학원 원장), 상현(전 해인사 강원 강사), 현석(동화사 강원 강사) 스님이 차례로 일진一眞, 혜등慧燈, 혜조慧照, 청림淸林, 법해法海, 현산賢山, 중산重山, 지월智月, 정암靜庵을 법호를 받으며 정법의 깃발을 높이 세우고 중생을 교화할 스승으로 거듭난 자리였다.
<b>이 법을 너희들에게 부촉하나니</b>
부처님께서 어느 때 영산회상에서 법좌에 올라 꽃을 들고 말없이 대중을 보았다. 이에 아무도 응하는 이가 없었으나 마하가섭만이 부처님의 참뜻을 깨닫고 빙그레 웃었다.이에 부처님께서,‘나에게 정법안장正法眼藏의 열반묘심涅槃妙心과 실상무상實相無相의 미묘법문이 있으니 이제 마하가섭에게 부촉하노라’ 하셨다.
선종의 초조 달마 선사는 혜가에게 법을 전하며 이렇게 말했다.
‘혜가야, 너는 내 골수를 얻었다. 너에게 법을 전한다.’
법을 전해받는 제자는 무릇 스승의 골수를 취하는 자일 터이다. 스승의 사상적 깊이와 인품을 삼켜 제 것으로 무르익히지 않으면 사제지간의 관계가 성립되지 않을 것이니, 전강을 주고 받는 스승과 제자는 구도자라는 한 이름으로 묶인, ‘한 뜻’을 지닌 동일한 사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은사를 구하여 출가 득도한 뒤 법사法師를 통한 오랜 수련 끝에 남을 지도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면 법사의 법맥을 이어받게 되는데, 스승으로부터 불법을 이어 스승이 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는 것이 전강의 의미다. 선가의 전심傳心, 율가의 전율傳律과 함께 교가敎家의 전법의 한 유형이다. 예전에 우리 불가에서 이뤄지고 있는 건당建幢과 같은 의미로 쓰인다.
《유마힐소설경》의 ‘네 종류의 마魔를 항복시키고 도량에 승리의 당幢을 세운다〔建幢〕’는 기록에서 보듯, 당이란 불보살의 설법이 중생번뇌의 마군을 항복시킴을 표시해 세우는 승리의 깃발을 뜻한다. 법을 이은 자는 대법을 드날려 펼치고자 할 때 깃발을 당간에 달아 도량 앞에 세워두기도 하였다고 전해지니, 이번 전강을 받은 아홉 명의 전강제자 또한 명실상부 정법의 깃발을 세우고, 중생을 제도할 스승으로서 우뚝 선 강사들이라 할 것이다.
지금 전해지고 있는 강맥은 제1조인 마하가섭, 27조 보리달마, 57조 태고보우로 이어지고 있는 법맥이며, 이번에 전강을 내린 무비 스님은 경허-한암-탄허 스님에게 이어진 강맥을 전수받았다.
우리 불가에선 거의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전강을 받지 않은 스님은 큰방에서 강의를 가르치지 못하고 지대방에서 강의를 했다고 한다. 전강을 받은 강사만이 큰방에서 강의를 할 만큼 전강을 받고 안 받고의 차이는 큰 것이었다. 전강의 의미가 사자상승師資相承, 즉 부처님과 스승의 학적 토대를 제자에게 물려주는 의식인 데다, 강의할 능력을 공개적으로 스승에게 인정받는 의식이고 보면 이해할 만한 일이다.
전강식이 어떻게 치러져왔는지 확실한 문헌이 없으나, 대체적으로 강講할 능력을 인정받은 강사에게 대중이 삼배를 올리고 스승이 법호를 내렸으며, 전강받은 제자는 개당開堂 설법을 통해 공인을 받음이 전례였다고 하나, 요즘엔 주로 책과 전법게를 전함으로써 강맥을 잇고 있다.
“제가 전강을 받을 땐, 일 대 일로 스님께 인사하면 당호 하나 내리고 전법게를 써 주셨습니다. 그리고 대중공양을 한번 내어 주변의 상좌와 같이 사는 대중들에게 공표하는 정도였어요.” 이번에 전강을 내린 무비 스님의 말씀이다.
그보다 더 전에는, 제자들에게도 보여주지 않던 새카맣게 메모해놓은 노트나 손때 묻은 책을 전해 주었다고 한다.
전수식에서 무비 스님은 스님이 직접 편찬한 네 권짜리 《현토과목 화엄경》 한 질씩을 제자들에게 전했다. 스승이신 탄허 스님이 제자들과 함께 교정하며 여러 해를 실험해서 펴낸 《화엄경》 48권에 손수 사인해서 전했듯, 스님도 과목과 단락을 나누고 대의를 추린, 그간 여러 권 출판한 책 중 가장 애착이 가는 《화엄경》을 제자들에게 전해 준 것이다. 초판본이 아닌 한 자의 오자도 없는 교정본을 신표로 남겼다.
무비 스님은 이번 전강식 법문에서 전강제자들에게 ‘선과 교를 둘로 보지 말며, 그 둘이 아닌 것을 생활화하는 강사’가 되기를 당부했는데, 스님의 스승인 탄허 스님 또한 선교를 겸비했던 한암 스님의 법제자에 손색이 없던 분으로, 경을 보고 원고를 쓰는 이외에는 언제나 좌선삼매에 들어 있었다고 회고했다. 전강을 받는 제자의 자격이 스승의 사상을 전수받음은 물론 선교를 겸비한 인품의 수행자여야 함을 알 수 있게 한다.
스물네 시간 모두가 수행이었던
승가대학원시절
은해사 승가대학원 원장 재임시 무비 스님이 학인스님들에게 강조했던 것은, 공부하는 동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불교에 대한 견해, 안목을 확실하게 가질 수 있어야 하다는 것이었다. 불교에 대한 근본취지의 체득이 현대적인 학문 하나 더 아는 것, 글 한 줄 해석하는 것보다 더 우선함을 항상 강조했던 것.
교학만을 익혔던 시간이 아니라, 톱니바퀴 돌아가듯 정확했던 스물네 시간 모두가 그대로 수행이었던 시절을 함께 보낸 스승과 제자였다.
“그 사람들 나 보기 싫어해요. 공부하는 동안, 아주 모진 소리, 듣기 싫은 소리만 거침없이 했거든요.”
제자들은 모진 소리를 해댔다는 스승 무비 스님에 대해 이렇게 입을 모았다.
“성실하신 분이시죠. 당신의 나이를 잊으셨는지(스님은 내년에 환갑이시다) 신학문과 컴퓨터 등 신문물을 대하면서도 도무지 겁을 내지 않았습니다.”
“전체를 보는 눈이 뛰어나셨습니다. 총론에 강해 과단科段 치고 요약하는 것에 뛰어나셨지요.”
이는 부처님의 전통적인 가르침을 법고창신法古創新, 온고지신溫故知新해서 융통성 있고 유연하게 해석할 수 있기를 강조했던 스님의 노력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이번에 전강을 받았고 승가대학원 졸업생 모임인 경학원 회장인 능허스님은 무비 스님을 ‘10대와도 같은 순수성을 지닌 분’이라고 표현했다.
“뭘 따지고 재고 그런 분이 아니셨어요. 그냥 마음 그대로를 열어 보이고 행동하셨죠. 공부하면서 한두 번쯤 무참한 꾸중을 듣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한번은 제가 공부해온 것을 발표했는데 ‘공부하려면 제대로 파악해서 발표해야지 본 주제에서 벗어나 그렇게 발표할 수 있느냐’며 한 시간 내내 야단을 치셨습니다. 다른 도반보다 승랍이 많았던 제가 그 순간 무참했던 것은 말할 수도 없죠. 그러나 그렇게 한 번 만신창이가 되도록 꾸중을 듣고 나면 다음엔 실수하지 않기 위해 다잡아 공부를 더했고 자료도 충실히 더 찾고 그랬어요.”
제자들을 어렵고 두려운 존재로 대했으되 공부할 때만은 엄격했던 스승을 통해 인불人佛사상을 다지게 되었다고 했다.
능허 스님은 전강식 때 낭독한 ‘고불문’에서 ‘……인화를 강조하시면서 스승과 제자의 격식을 무너뜨리고 족구를 하는 날이면 우리들은 모의하여 당신에게 아름다운 위해危害를 가하기도…’라고 고백했다.
“거의 매일, 잠깐이지만 대중 모두 스님과 함께 족구를 했는데, 때론 원장 스님이 공을 못 받거나 실수하도록 집중 공격하곤 했지요. 때론 얼굴에 공을 맞기도 하고 그 큰 체구에 넘어지기도 하셨어요. 그런데 웬만한 분 같으면 넘어지고 하면 그만하기도 할 텐데 끝까지 하시곤 했지요.”
이번 전강식에서 송광사 승가대학 강주 취임을 함께 치렀던 현진 스님은, 자신에게 승가대학원 시절은 ‘경을 이렇게 보면 남들에게 뒤떨어지지 않겠다’는 자신의 고정관념의 틀이 깨진 시기였고, 권위를 내세우는 법 없이 일상에서 스스럼없이 후학을 대하던 스승의 모습을 마음에 새겼다고 한다.
“음식을 먹어도 격의없이 방으로 오셔서,‘차나 한 잔 마시지’ 하셨고, 구석에 놓아둔 과자를 내어서 ‘ 같이 먹자’ 하셨어요. 어른의 입장에서 권위의 틀을 깨기가 쉽지 않을 텐데, 그런 모습을 뵈며 ‘나도 어른의 입장이 되면 저렇게 하자’ 했지요.”
공부에만 진력하는 분위기에서 좋은 스승과 도반들을 만나 탁마하면서 ‘불교가 어떻게 가야 하는가, 부처님 법을 어떻게 펴고 융성시킬 수 있겠는가’를 물었고 그 답을 함께 도출해내려고 노력했던 시간이었던 그들에겐, 은해사 시절은 또, 흩어진 공부를 종합적으로 묶으며 수행자로서의 자리매김을 분명히 한 시기였다.
승가대학원 졸업과 함께 종단으로부터 입은 혜택을 환원하기 위해 경학원經學苑를 만들어, 매년 한번 여름 해제철을 통해 제방에 있는 비구, 비구니스님들을 위해서 한 주 정도 권위 있는 스님을 초청해서 수행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강좌를 열기로 하였다. 올해 처음으로 팔만대장경을 모신 법보종찰 해인사에서 제1회 경학산림을 일주일간 열었다. 무비 스님이 《임제록》을 강의하였는데 마침 해인사 개산 1200주년을 기념한 일인지라 더욱 뜻이 깊었다. 비구·비구니 스님 70여 명이 끝까지 자리를 함께 하여 새로운 현대적 결사의 한 형태를 만들어 보였다.
“세존이시여, 저희에게 이심전심하는 가섭의 미소를 터득하고 팔만법장 다문하여 아난의 총지를 얻으며,분별망상 그대로 문수사리의 지혜가 되고, 행주좌와 일체행은 보현의 만행이 되게 하소서… 세세생생 보리의 숲에서 벗어나지 않고 화장세계에 노닐게 하여 마침내 밝고 밝은 진리 꿰뚫지 못하는 것 없어 스쳐 지나가는 곳에 진리의 향 흘러 넘치게 하소서… 형체 없는 저 허공 부서져 없어진다 하여도 금강 같은 저희 원력 끝없으리이다.”(현진 스님의 입지 발원문 중에서)
전강식이 끝나자 스승이 내린 전법게를 바랑에 꼭꼭 집어 넣고 아홉 명의 제자들은 길을 떠났다. 그들의 바랑엔 이미, 저 옛날 스승이 짊어졌던 저 천형과 같았던 무거운 짐은 들어 있지 않는 듯했다. 너른 등판을 보이며 먼저 일어서 나간 스승도, 바랑을 짊어지고 길을 떠나는 제자도 모두 아름다웠던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