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하늘이 저만치 멀리 보이고 바람도 훨씬 싸늘하게 느껴지던 날, 오래도록 잊은 채로 지냈던 아니 공기 속에 호흡하며 살고 있으면서도 그저 고마움을 잊은 채 무심히 살아왔던 것 같은 사실을 새삼스럽게 생각하게 되었다.그것은 나의 일상적인 역할상 늘 언어를 통하여 말하며 설명해 왔던 보살행菩薩行에 관한 정의定義와 스승님에 대한 개인적 상념想念이다.
《화엄경》에서 십주十住 십행十行 십회향十回向 십지十地 등은 모두 보살의 실천 수행점차들과 관련된 가르침들이다. 십지의 한 단계 한 단계가 십바라밀十波羅蜜 하나하나와 밀접한 관계에서 설명되는 것처럼 십행의 낱낱 행도 십바라밀과 연관된 내용들이다.
십행의 맨 첫 번째 실천덕목이 환희행이며 십지의 처음도 환희지임을 상기했을 때 결국 보살은 기쁨을 실천하는 것이고 그것을 실천함으로써 자신은 물론 타인에게 기쁨을 주게 되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자리이타自利利他의 행을 성취하고 마음으로 기뻐하는 것이 마치 땅이라는 대지가 온갖 생명을 길러내고 땅을 의지하여 모든 것이 뿌리내리게 하고 저마다 각기 제 모습으로 존재케 함으로써 기쁨의 땅, 환희지라고 할 수 있으며 그것이 곧 보시행과의 직접적인 관계임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보살마하살의 환희행인 것이다.
훌륭한 큰일을 해내는 사람이란 곧 대시주大施主가 되어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는 평등한 마음으로 일체의 중생에게 베풀고 베풀어 준 다음에는 후회를 하지 않으며 그 대가도 버리지 않는 것이다.
수승한 곳에 태어나는 것조차도 바라지 않으며 물질적인 이익이나 육신의 안락도 바라지 않고 다시는 일체 중생을 구원하고 보호하기만을 생각하는 이, 부처님이 행하신 모범되는 행위만을 실천하기를 원하며 부처님의 행위를 잊지 않고 기억하여 그 분의 행위처럼 자신의 행을 청정하게 간직하고 자기 스스로 그러한 모습을 드러내며 그 행하신 모범된 행위를 모든 사람에게 알도록 하여 누구나 다 기쁨을 느끼도록 하는 이….
이렇게 실천 수행하는 것이 보살 마하살의 환희행이다. 이렇듯 장황하게 매우 사전적인 설명으로써 보살의 환희행을 정의하며 생각하여 본 나의 구체적인 이유는 사실 나의 스승님을 의식해서였고 더 솔직히는 현실적으로 감히 스승님의 크신 은혜의 내용은 이렇게 상세한 문자로서만이 설명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옛 사람의 말처럼 멀리 계시면 아주 가까운 듯, 가까이 계시면 매우 멀리 계신 듯….
나의 좁은 소견으로는 그 뜻을 다 헤아려 표현하기 어렵고 송구할 따름이다. 언젠가 도반 스님과 차를 마시며 우연히 나눈 화제가 은사 스님 이야기였다. 연전에 입적하신 은사 스님에 대한 애틋한 생각을 간직하고 있었던 그는 이제는 더 이상 자신을 꾸지람해 주실 어른이 이미 계시지 않다는 사실이 슬픈 일이라고 말하였다. 이제 어디서든 어떤 어른 스님을 뵙던지 장하고 훌륭하다고 대견해 하시며 덕담을 해 주실지언정 은사 스님이 해 주셨던 꾸지람의 말씀은 이제 더 들을 수 없다고 가슴 아파했다. 그의 그러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반드시 강사가 되기를 요구하셨던 나의 은사 스님을 생각하였고 육친의 어버이처럼 후원해 주시고 보살펴 주시는 은사 스님을 바쁘다는 핑계로 이제는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는 죄스러움과 어린 시절 무서운 은사 스님으로조차 기억되는 생각까지 모두 합해서 이제는 하나의 커다란 그리움과 안타까움의 커다란 그 무엇이 시공時空 저편에서부터 밀려올 뿐이다.
스승이란 무엇인가?
제자란 누구인가?
언제까지나 아무런 걱정도 없이 다소곳이 낮은 책상 앞에 앉아 먹줄을 짚어가며 묵향과 함께 기쁘게 받아 지니는 이, 그 뜻을 쏟아 부어 주는 이, 그런 관계인가?
내가 현실적으로 스승됨의 입장도 부인할 수 없을 때 그 스승의 역할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실감하게 한다. 글을 가르치고 잔소리를 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사람을 깨우쳐 바르게 안내하는 일이 참으로 말이나 글만으로 가능할 수 있는 일일까?
온갖 지식과 정보, 명예로운 인정서를 가진 스승이 제자 내면의 본질을 스스로 꽃피워 열매 맺도록 할 수 있는 일인가?
스승, 제자 이렇게 분별하는 것은 역시 나 제자 입장에서만 일으킨 생각일 뿐, 내가 기쁨으로 살도록 하시는 스승님은 상관할 바 아니다.
보살은 그저 묵묵히 환희행을 실천하실 때 일체의 중생은 환희하며 애경愛敬한다. 모든 사람이 기뻐하고 서로 사랑하는 마음, 서로 존경하는 마음을 내게 하는 환희행만이 존재할 뿐이다.
나를 기쁨으로 살게 하시는 스승님께는 이 한 수의 시를 적어 드림으로 스승님에 대한 나의 상념들을 마무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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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향기 퍼지는 시방十方 저 끝에
고현高玄한 그 모습 후박의 어머니
백일홍이 백날로 무르익을 때
옥수玉手의 손짓으로 달빛 아래 모으시고
속진의 모든 번뇌 은하수로 씻어 주시네.
별빛이 내리는 청초한 새벽
두 손 모아 비시나니 일심一心의 소망
불타의 크신 교해敎海 널리 퍼져지이다.
한 풀잎의 기움도 눈여겨 살피시며
무정無情의 어버이로
풀빛 위에 군림하시나니
하늘에는 다시 푸른 강물이 넘쳐흐르고
목련의 흰 이마는 이슬로 고개 숙여
잎이 필 그날까지 들을 줄을 모릅니다.
삼십三十년 긴 세월을 어제 빛 그대로
진리를 이르시는 운문의 보좌寶座
걸망 진 그대들은 당신의 분신分身
시방十方으로 삼세三世로 영원하시나니
처처의 연잎 위에 당신은 미소하시고
이 자리 여읜들 여읠 날 있으리요.
법체의 크신 자비
만세로 향기로우소서.□</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