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마지막까지 남아 불법을 수호하리라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이달의 이야기 - 철운 2002년 11월 249호
철운-법주사 강주 - 나의 전강식傳講式 소감 -

얼마 전 청명한 결실의 계절 가을날에 여천무비如天無比 대강백大講伯의 전강식에 수희 동참하기 위해 송광사에 다녀왔다. 들판은 누런 벼이삭들이 점점 고개를 숙이고 나무에는 여러 가지 과일들이 무게를 더하며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어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넉넉하고 평화로운 가을 풍경이었다. 좀 빨리 도착했다고 생각했는데 도량에 들어서니 벌써 많은 스님들과 신도님들이 운집해 있었다. 대웅전에 들어가 식에 동참했는데 방장 스님께서 이 행사에 많은 관심을 가지시고 사중에서 적극 지원해서 준비했기 때문에 참으로 여법하고 장엄스러웠다. 훌륭한 자격을 갖춘 아홉 분의 전강 제자들은 불법의 밝은 미래를 상징하듯 덕망 있고 당당하게 보였다. 거듭 전강을 받으신 아홉 분의 스님들에게 축하를 드리고, 앞으로도 불법 홍포를 위해 진력해 주실 것을 간절히 청원하며, 소납이 전강 받을 때를 회상하여 간략히 기술해 보고자 한다.

부족함이 많은 소납은 2년 전에 법주사에서 중산혜남中山慧南 대강백大講伯으로부터 은혜로운 전강을 받았다. 스님과의 인연은 해인사강원 대교반 학인 때에 강주로 취임해 오심으로 해서 시작되었다. 스님이 오시기 전에는 몇 달간 강주 소임이 공석이어서 학인들은 강주 스님 모시기를 갈망하고 있었는데 마침 스님이 강주 스님으로 와 주셔서 감사하고 즐거움에 우리들은 정성을 다하여 모셨고 공부도 열심히 하게 되었다. 그 때 우리는 스님으로부터 《화엄경》 강의를 들었다. 강원 졸업 후에는 마음으로는 스님을 존경했으나 모시고 살 기회가 없다가 해인사 강원에서 중강 소임을 보고 나서 걸망을 지고 선방을 몇 철 나던 중에 법주사 총지선원에서 한 철 나게 되었는데 그 때 스님께서 법주사 강원 강주로 주석하고 계셨다. 그 인연으로 해서 법주사 강원에 중강 소임으로 들어가서 강사, 학감을 보면서 3년 가까이 진실하게 스님을 모시고 배울 소중한 기회가 주어졌다.

어느 조용한 날 스님께서 법주사와의 인연이 얼마 남지 않으신 걸 아시고 지나가는 이야기결에 나에게 전강을 받을 마음이 있느냐고 슬며시 물으셨다. 지금껏 내가 전강을 받는 것에 대하여 생각해 본 바가 없고, 그저 전강 받았다는 스님들을 존경할 뿐이었고, 내 스스로가 강의하면서도 교학에 두루 밝지 못함을 느끼고 있었는데, 스님의 이 말씀은 나에게 너무 큰 말씀이어서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 후로부터 전강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도반들과 지인들을 통하여 이야기하게 되었다.

경진년 하안거 중에 스님께서 안거가 끝나면 법주사를 떠나신다는 말씀이 계셨다. 나는 몇 번을 망설이다가 저녁 예불 때에 부처님과 역대 조사님께 전강 받기를 발원한 후에 용기를 내어 가사장삼을 수하고 스님 방으로 올라가서 삼배를 드리고 ‘저도 부처님의 교법을 이을 작은 등불이 되고자 하오니 전강을 내려 주십시오’ 하고 간청을 했다.

스님께서는 잠시 침묵하고 생각에 잠기시더니 ‘잘 할 수 있나’ 하고 물으셨다. 나는 ‘부족한 점이 많지만 항상 스님의 뜻을 잘 받들고 비상한 신심을 내어서 교학을 공부하고 널리 펴는데 심신을 다 받치겠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스님께서 ‘응! 그래’ 하시면서 승낙하시고 돌아가서 수 일 내로 본인이 평생 사용할 수 있는 법호와 게송을 지어오라고 하셨다. 인사를 드리고 방문을 열고 나와 어둠이 내려앉는 도량을 혼자 걸어오는 길에 몸에서 알 수 없는 기운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법호와 게송을 지어오라는 스님의 숙제 때문에 한시漢詩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는 나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며칠간 온통 생각에 잠겼다. 개울에 나가 흘러가는 물과 나무나 돌을 관심 있게 바라보기도 하고 때로는 푸른 하늘을 멍하니 쳐다보기도 했다. 그러다가는 경전과 어록을 뒤적여 보기도 하고 그래도 마땅한 이름을 생각할 수 없어 수정봉 꼭대기에 올라갔다. 그 봉우리에 앉아서 결국 생각해낸 것이 법호를 향산香山이라고 지었고 그것에 대한 게송을 지었다.

향화시감밀香花施甘蜜
덕산장영초德山長靈草
향기로운 꽃은 달콤한 꿀을 베풀고
덕스러운 산은 신령스러운 풀을 기른다

이외에 두 구를 더 지어서 저녁 예불 후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스님방에 올라갔다. 스님께서 한참을 보시다가 ‘그런 대로 괜찮다’ 하시고 뒤의 두 구 대신에 철운이라는 법명을 넣어서 즉석에서 게송을 지으셨다.

철운광자발撤雲光自發
경리하친소鏡裏何親疎
검은 구름이 걷히면
광명은 스스로 발휘되나니
맑은 거울 바탕에
무슨 친하고 소홀함이 있으리오.

스님의 따뜻한 마음이 담긴 법호와 항상 마음속에 새겨야 할 밝고 맑은 게송을 받으니 환희심이 우러나왔다. 그리고 스님께서 〈전강기傳講記〉를 작성하라 하시면서 전강 게송을 건네주셨다.

비여암중보譬如暗中寶
무등불가견無燈不可見
불법무인설佛法無人說
수혜막능료雖慧莫能了
비유컨대 마치 어둠 속에 있는 보배를
등불이 없으면
가히 볼 수 없는 것과 같이
불법을 능히 설하는 사람이 없다면
비록 지혜가 있어도
능히 요달하지 못하리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날 수 없어서 어둠 속에 헤매는 중생들을 위해서 부지런히 부처님의 교법을 설해서 등불과 같이 밝은 진리의 세계로 인도하라는 법사의 중요성을 설한 게송이다.

게송을 받아 방으로 돌아와서 어떻게 〈전강기〉를 만들어야 할지 며칠간 궁리하다가 앞면에는 신상과 법호와 게송 그리고 전강게를 기록하고 뒷면에는 불조 계보를 작성해서 스님께 올라가니 ‘그렇게 하라’고 허락하시고 전강식 날짜를 하안거 해제가 임박한 7월 13일로 정하여 주셨다. 그리고 해인사에서 강의하고 있던 강원 도반 지우智雨 스님도 함께 받기로 했다. 그로부터 혼자서 분주하게 행사 준비를 했다. 전강식 전날 저녁 예불 후에 스님께서 부르심이 계셔서 올라가니 몇 가지 책과 접게 되어 있는 소책자를 내어놓으시고 진지하게 설명하셨는데, 한 권은 석전정호石顚鼎鎬 스님이 필사해서 운기성원雲起性元 스님에게 전하고 다시 스님에게 전하여진 《정주사산비명精註四山碑銘》인데 이 책을 해석하고 공부하며 문장을 익히라 하셨고, 또 한 권의 소책자는 <대한불교불조원류영호대종사문파大韓佛敎佛祖源流映湖大宗師門派>였다. 스님은 이 책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시며 특히 불조佛祖 72대代의 백파긍선白坡亘璇 스님은 한국의 선맥과 강맥을 겸하여 이으신 분이라고 강조하시며 선교를 두루 수행할 것을 말씀하셨다. 나는 법맥계보法脈系譜의 설명을 듣는 동안 가슴에서 감동적인 희열이 올라오는 것을 느끼며 역대 조사 스님들에게 감사하고 책임을 다하리라고 다짐했다. 이 책들은 《화엄경》과 함께 다음날 전강식 때 전하여 주기로 했다.

전강식은 법주사 대웅보전에서 율주 혜정慧淨 스님과 산중 대덕 스님들을 모시고 선원 강원 스님과 도반 스님 등 200여 대중이 운집한 가운데 서울 홍원사 원명元明 스님의 집전으로 역대 강맥을 이어 주신 조사 스님들에게 다례茶禮를 올리는 것으로 시작했다. 중산혜남 대강백中山慧南大講伯으로부터 <전강기>와 《화엄경》 등 신표를 받고 법어를 통해 ‘부처님께서 영축산에서 부촉하신 법이 오늘은 속리산에서 전하여진다’고 말씀하시고 ‘교법을 널리 펴고 불조 혜명이 끊어지지 않게 하라’고 당부했다. 나는 ‘부족한 저에게 전강을 전하여 주신 것을 감사하고 신명을 다 바쳐 교법을 펴고 어떠한 법난을 만나 불법을 행하기 어려울지라도 마지막까지 남아 불법을 수호하고 홍포할 것’을 부처님과 대중 앞에 서원했다. 사리각 스님, 미룡당 스님, 주지 스님, 해인사 강주 스님 등께서 더욱더 용맹심을 내어 정진하라는 격려와 전등 강맥을 이은 데 대한 감동적인 축사를 해 주셨다. 참석한 대중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전강식을 마쳤다.

전강식을 하고 두어 달 뒤 가을 단풍이 곱게 물들어 가던 어느 날, 스님께서는 홀연히 속리산을 떠나 천안 광덕산 산그늘 아래에 있는 자그마한 암자로 떠나셨다. 스님께서 떠나시고 서너 달 뒤 섣달 중순에 나는 법사 스님의 은혜를 입고 산중 대덕스님들의 덕화로서 법주사강원 강주 소임을 맡게 되었다.

전강은 부처님께서 부촉하신 교법을 영원히 호지하고 오롯이 후대에 전하기 위한 교단의 전통 의식이다. 전강식을 통하여 전강을 전하는 스님은 제자에게 전등 강맥을 전수함으로서 비로소 그 책임을 다하는 것이고 전강을 받은 제자는 불조의 강맥을 계승한 영광스러움과 함께 열심히 교학을 연구하고 후학을 양성해서 강맥을 이어줄 책임과 의무가 있는 것이다.

《화엄경》에는 ‘미진경권’의 비유가 있다.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일이 쓰여진 경책이 한 티끌 속에 들어 있어 중생들에게 이익을 줄 수 없었는데, 지혜가 밝은 사람이 천안을 구족하고 꾸준히 노력한 힘으로 작은 티끌을 깨뜨리고 큰 경책을 꺼내어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이익을 얻게 하였다는 이야기다.

전강을 받은 스님들도 시대의 사명감을 갖고 중생의 마음 속에 있는 삼천대천세계와 같은 경전을 찾아내어 중생을 이롭게 하는 데 꾸준히 정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