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이 세상의 유수한 종교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종교다. 불기佛紀에 대한 여러 가지 이설이 있긴 하지만 올해가 2546년으로 서기西紀를 540여 년이나 앞서고 있다. 더구나 불기는 서기와 달리 부처님이 열반에 든 해를 기준으로 계산된 햇수다. 80생애의 부처님 연령을 더한다면 2626년 전에 교조 석가모니가 탄신하신 것이 된다.
이렇게 오랜 역사를 이어온 불교의 특징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 이른바 법맥法脈이라는 것이다. 법맥이란 글자 그대로 법을 잇는다는 말이다. 이 법맥이 이어짐으로써 불교의 역사가 이어지는 것이며 법맥이 끊어지면 불교의 역사가 단절되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법을 전해 받는 일이야말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유지 보존하는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예로부터 이 문제는 실로 수행의 종풍에 있어서는 어떤 것보다 우선되는 중차대한 일이었다. 마치 세속의 가정에 있어 자손이 생산되지 아니하면 그 집안의 대가 끊어지듯이 법을 전해 받는 제자가 나오지 아니하면 법통이 끊어져 버리는 것이다. 스승과 제자가 법을 전하고 받는 것을 사자상승師資相承이라 한다. 이 사자상승은 부처님 당시로부터 유래된 것으로 상수上首 제자였던 가섭 존자가 부처님의 심인心印을 전해 받아 조사祖師 법계法系의 초조初祖가 된 것이 효시가 된다. 물론 석가모니 부처님이야 ‘무사독오無師獨悟’ 곧 스승 없이 홀로 깨달은 분이지만 그가 창시한 불교가 종교의 영역을 확보하여 교조의 법을 전승하는 데 있어서는 맥을 이어 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 법맥이 선종계통과 교종계통 또는 율종계통으로 나누어질 때 선맥, 교맥, 율맥이라는 종파적인 입장을 표방하는 이름을 각각 별도로 쓰게 되었다. 참선수행을 위주로 하는 선종에서는 도를 깨친 스승이 제자의 공부가 선지禪旨를 터득, 견성오도見性悟道의 경지에 이르렀을 때 인가認可를 하여 준다. 말하자면 제자의 공부 되었음을 증명하고 보장해 주는 것이다. 이는 오로지 직관적인 관찰에 의한 체험 경계가 서로 상통할 때 이심전심으로 부합된 경지를 서로 확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반면 교학적 차원에서 불법의 이치를 궁구하는 이들은 우선 부처님의 경전을 매체로 사용하여 경학에 어느 정도 조예와 능통함이 있는지를 경전을 가르친 스승이 제자를 검사해 본다. 그리하여 제자가 경학을 통달, 남을 가르칠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이 있다고 판단될 때 경전을 강의할 자격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여 전강傳講을 하는데 이를 강맥을 잇는다고 한다. 이 강맥은 경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학문적인 교학 체계를 갖춤은 물론 불법의 심오한 이치를 이론과 논리를 통해 설명해 내는 것을 능사로 한다. 이를 설통說通이라 하고 선맥의 견성은 종통宗通이라 한다. 율맥의 경우는 강맥의 경우와 비슷하다. 계행을 엄정히 지키면서 율장律藏을 통달해 있는 제자에게 스승인 율사가 자격을 인정하여 율을 전할 때 율맥이 이어지는 것이다. 이상은 모두 법맥을 종파적인 구분에서 나누어 말하는 것이다.
법맥은 부처님의 불법 수행자가 안으로 체험(內自證)하여 이어가는 차례를 두고 쓰여지는 말이다. 여기에는 법통, 법계를 어떻게 세우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또한 전법이 한 스승에서 한 제자로 일 대 일로만 전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 나무에 여러 가지가 생기듯 법계의 갈래가 아래로 내려올수록 많아지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불교의 역사 속에 시대에 따라서 종파에 따라서 여러 가지 법통체계가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에 있어서의 법통은 조선 중엽 이후에 와서 그 체계를 다시 세워 내려왔다. 즉 서산西山 스님 이후 조선불교를 중국 선종의 한 종파인 임제종臨濟宗에 연결시켜 그 법맥체계를 잡아온 것이다. 고려 말의 태고보우太古普愚 선사가 중국의 석옥청공石屋淸珙 선사로부터 법을 전해 받아온 것을 기점으로 서산 스님 이후의 법맥을 태고의 몇 세손인가로 법을 이은 대수를 표기해 온 것이 관례가 되었다. 석옥청공이 임제의 18세손이고 임제는 육조의 5세손이며 그 위에 33조사의 법맥을 소급해 붙인다.
또한 조계종이 선종계통임을 표방하는 까닭에 선맥에 치우쳐 전등의 맥을 계산해 왔다. 이리하여 상대적으로 교맥인 강맥이나 율맥은 소홀히 취급되어 온 감이 없지도 않다. 선과 교의 상대적인 면에서 볼 때, 선에 편중된 선 위주의 맥을 중요시 여겨온 것은 한국 불교 법맥의 비중이 한쪽으로 치우침으로서 불교전반의 균형 있는 발전을 저해해 온 점도 없지 않은 것이다.
한편 불교의 수행이 자리이타의 공덕성취인 만큼 수행 자체가 나의 인격과 남의 인격을 완성시켜가는 교육적인 측면이 내재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승가교육의 중심 역할을 해온 강원은 교학의 산실이었으며 이 강원의 강학을 통하여 강맥이 전수된 것이다. 모든 사찰이 수행도량이었으나 특히 강원이 있는 사찰은 교육도량으로서 기능을 발휘하여 사집ㆍ사교ㆍ대교 등의 교과편제인 커리큘럼을 이루었고, 이러한 패턴에 의해 승가교육체계가 자리하게 되었다. 이 시기가 대략 조선 중엽으로 벽송碧松, 부용芙蓉, 경성敬聖 등을 거쳐 서산西山, 부휴浮休에 이르는 시기였으며, 뒤에 월담月潭, 월저月渚 및 상봉霜峯, 백암柏庵 등에 이르러서 강학이 흥해졌다. 따라서 이 시기에 접어들면서 강학의 성왕과 함께 강맥이 활발한 줄기를 뻗게 된 것이다. 따라서 강맥의 전통은 조선 중엽에서부터 수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소급해 말하자면 부처님으로부터 선은 가섭, 교는 아난에게 전해졌다고 말해 왔듯이 법맥의 연원을 따지자면 어느 종파 어느 맥이건 부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지만 시절인연을 따라 그 맥이 흥할 때도 있었고 쇠할 때도 있었던 것이다. 다만 18세기 후반에 들어와 연담유일蓮潭有一과 인악의첨仁岳義沾이 등장하여 양대 강맥을 이루어 연담은 호남지방에서 인악은 영남지방에서 각기 명성을 떨치면서 강학의 학풍을 한때 풍미하게 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