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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시의 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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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류동천 - 김홍영 2002년 11월 249호
해인사 창건 이래 실로 많은 문인 학자들이 이 곳을 찾아 시를 남겼다. 이 가운데 현재 전하는 기록 가운데 확인되는 가장 앞선 인물로서는 고려조의 남양南陽 백비화白賁華(1180~1224)를 들 수 있다.
백비화의 자字는 무구無咎인데, 소시부터 학문에 힘쓰고 시문에 능하여 19세에 이미 과거에 급제하고 27세부터 벼슬을 시작하여 내직의 여러 직책을 두루 역임하며 임금을 가까이에서 모신 지 19년이었다. 45세이던 갑신년(1224)에 지금의 성주 땅 경산부京山府 부사副使로 부임하여 그 해 7월 병으로 관소에서 세상을 마쳤다. 남양은 만년에 선법禪法을 좋아하여 자호를 참선거사參禪居士라 하기도 했다.
짐작컨대, 남양이 해인사를 찾은 시기는 가야산 해인사에 인접한 경산부의 부사로 부임한 해가 아니었던가 생각되는데, 공무의 겨를에 해인사에 이르러 눈 앞의 정경을 다음과 같이 읊었다.

석경유심조반행石徑幽深鳥伴行 돌 길 그윽하고 깊어 새와 함께 걷겠고
만헌연월방환정滿軒煙月放歡情 난간 가득한 연월에 기쁜 정 펼치겠네.
당번엄영계함영幢幡掩映溪涵影 불당의 기 그늘 지우매 시내엔 그림자 잠기고
종범장양곡답성鍾梵洋谷答聲 범종 소리 멀리 울리자 골짜기에 메아리치네.
좌구동운생우멸坐久洞雲生又滅 앉은 지 오램에 골 안의 구름 생겼다 또 사라지고
담여롱촉암환명談餘籠燭暗還明 담소의 나머지에 등롱의 촛불 어두웠다 다시 밝구나.
허다풍물감취사許多風物堪取捨 허다한 풍물 정히 취하고 버릴 만하니
작기오금괴이정作記吾今愧李程 기록을 남기는 내가 오늘 이정에 부끄러워라.

이 시는 백비화의 시집인 《남양선생시집》 하권에 <차운하여 해인사에 적다(次韻題海印寺)>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는데, 아쉽게도 그 원운原韻이 누구의 시였던지는 알 길이 없다. 이 시집은 저자의 아들 희심希이 수집 편차하여 1249년(고려 고종 36)에 2권 1책으로 간행했고, 그 책판은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 필자 주:《남양선생시집》은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된 것이 있는데 책 끝에 ‘昭和十八年八月海印寺雜板新印’이라고 적힌 기록이 있어 그 책판이 해인사에 있음을 알 수 있는 단서가 된다. 이 책은 민족문화추진회에서 간행한 《한국문집총간(韓國文集叢刊)》 2에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