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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到彼岸寺 鐵造毘盧遮那佛坐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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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의 미소 - 편집실 2002년 11월 249호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이 세상에서 피안彼岸과 차안此岸은 산문山門을 경계로 나눈다지만, 마음 속의 그것은 무엇으로 나눌 것인가. 그 저쪽 언덕이 강물 너머로 보이는 곳이라면 그리 멀게 느껴질 일도 아닐 것이므로, 하늘과 땅의 동서남북이 자로 그은 듯 보여지지 않는 것처럼 우리가 건너야 할 피안은 짐작도 가지 않을 때가 더더욱 허다하다.
신라 하대의 경문왕景文王 재위시절을 살던 사람들의 피안은 그들 마음 속에서라도 꼭 찾아가야 할 어느 곳이었다. 왕의 권위가 떨어졌으며, 진골 귀족간의 세력다툼이 심해져가던 시기였다. 임금은 이미 백성들의 하늘이 아니었으며, 백성들은 임금이란 배를 띄울 강물도 되지 못했다. 왕은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나라를 바로 세우고자 하여 황룡사 구층탑을 개조하였으며, 황룡사皇龍寺로 또 감은사感恩寺로 정성을 다했으나 이미 기운 물결을 다시 돌리긴 어려웠다.
어두운 세상에서 문자는 더 이상 등대가 되지 못하였으니 불교는 문자 이외에서 불성을 찾았으며 마음에 의지하기를 세상의 불빛을 찾는 듯했다. 이 때를 당해 도선道詵 국사는 일천의 향도香徒와 함께 이 곳 도피안사를 창건하고 비로자나불을 조성하여 모셨고, 이 곳은 팔백의 비보사찰裨補寺刹 중의 하나가 되었다. 거친 풍랑 속에서 큰 배가 바른 길로 가기를 바라는 것은 임금과 백성의 마음이 다르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부와 권력에서 비켜 서 있던 향도들의 마음은 금은金銀으로 치장한 부처님이 아닌 오로지 그들이 가졌던 철鐵을 부어 조성한 이 부처님의 모습에 더욱 간절히 녹아 있었으리라. 그러므로 부처님의 설법 장소가 천상에서 지상으로 옮겨온 《화엄경》에 의지하기를 더욱더 열심이었을 것이며, 이 경을 설하시는 비로자나 부처님의 모습을 더욱 바랐을 것이다. 그러기에 도피안사의 이 비로자나 부처님의 모습은 천상의 모습보다는 필부匹夫의 모습에 더욱 가깝다. 높은 육계도 버렸으며, 상호 또한 섬세함이 더욱 드러난다. 하지만 전혀 움츠리지 않은 당당한 어깨는 조성한 이들 마음의 강건함을 그대로 드러낸다.
정靜하니 산이요, 동動하니 계곡이 응한다. 형식이라는 산을 넘어 그들이 기둥으로 삼은 것은 오직 보리심菩提心이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