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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국주의의 원종(圓宗) 설치(3)-원종 고문 다께다 한지(武田範之)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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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상 - 김호성 1989년 08월 90호
원종의 성격이 제국주의 지배를 위해 그 전위인 조선낭인 다께다가 설치, 경영한 꼭두각시 집단으로 인식될 때는 그에 대한 임제종 운동의 성격도 반(反)제국주의적 맥락을 띠게 되는 것으로 새롭게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그와 같은 차원에서 논자는 임제종 운동의 역사적 의의를 다음 두 가지로 정리하고자 한다.
첫째, 노약(老弱)한 조선불교, 잠자던 조선불교에 일대 경종을 울린78) 한국불교사상 최초의 조직적인 운동이자 의식운동으로서 이후 모든 근대적 불교운동의 연원이 되었던 것이다79) 이에 대해서는 만해 한용운이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음에서도 잘 알 수 있다.
ꡒ조선불교에 청년운동이 있는 것은 역사적으로 소고(爛考)하건대 시일이 그다지 없지 아니하다. 그 남상(藍薦)으로 말하면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 조선불교의 역사적 페이지를 돌려놓은 유명한 임제종 운동…… 그리하여 조선불교청년운동은 입으로 전하고 마음으로 받는 훈련기간의 잠재세력으로 십 년의 성상(星露)을 지나다가 경신년(1920) 6월에 불교중앙학교학생을 중심으로 경성에서 결성되어 유수한 사찰에 지회를 두게 되었으니, 이것이 구체적 형식으로 나타난 것이 불교청년운동이다.ꡓ80)
즉, 임제종 운동의 정신이 불교청년운동으로 계숭되었음을 회고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임제종 운동 참여자들 스스로 자각적인 의식을 갖고 있었는지는 분명한 근거 자료가 없으나, 일본 제국주의의 꼭두각시 집단인 원종에 대응하여 반대운동올 전개했다는 것은 일본 제국주의에 대항한 항일(抗日)의 의의까지 갖는 것이다.81) 서울에 임제종 포교당을 내면서,ꡒ임제종의 도덕을 세계에 포교할 목적으로ꡓ82) 했다는 것은, 비록 나라는 빼앗겼으나 조선의 존재, 독립의 의지를 임제종올 통하여 세계에 알리고자 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처럼, 제국주의의 종교침투에 대항하여 민족의 전통적인 불교를 옹호했다는 것은, 임제종 운동의 반제국주의적 민족불교의 성격을 나타내 주고 있는 것이다.

V. 맺음말
① 문제의 정리
이제ꡐ들어가는 말(I)ꡑ에서 제시한 여섯 가지의 문제에 대하여 그 고찰의 결과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첫째, 원종의 고문 다께다는 단순히 조동종의 한 승려로서 원종의 고문에 있었던 자가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과 지배를 위해 아시아주의의 논리로 무장하여 침략과 전위(前衛)로서 활약한 우찌다(內田良平)의 흑룡회(黑龍會)에 소속된 조선낭인이었다.
둘째, 조선낭인 다께다는 원종의 성립 이후에 비로소 고문으로 추대받아서 취임한 것이 아니라 원종 성립을 처음부터 그 스스로 계획하고 실현시켰던 것이다. 그는 1907년 「권불교재홍서(動佛敎再興書)」를 써서 조선불교의 일본화를 의도하고 있거니와, 조선불교의 보다 효과적인 통제를 위해서 원종과 같은 통일기구를 만들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성립 과정에서도 통감부에 보내는 「청원서(請願書)」, 「의견서(意見書)」 등을 작성하고 있다.
셋째,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원종의 명칭, 유래에 대하여 여러 가지 논의가 있었다. 그러나, 논자는 다께다의 「원종육제론(圓宗六諸論)」에 나타난 원종주의(圓宗主義) 종교이념을 분석, 아시아주의의 종교적 표현인 원종주의 실현이 그의 목적(이념)이었다고 보고, 그런 차원에서 원종의 명칭 역시 그가 지었거나, 아니면 적어도 그로부터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해 보았다.
넷째, 원종이 조동종과의 연합을 추진한 것은 한일합병으로 인하여 장래의 조선불교의 기반이 약화될까 우려해서 조동종과 연합을 하고자 비로소 시도한 것이 아니라, 원종 성립 당시부터 다께다의 의중에는 그러한 계산이 짜여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찰령으로 인하여 무위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는데, 총독부와 다께다의 입장이 서로 달랐다는 것을 알수 있다. 그러나, 총독부의 무단통치에 의한 조선불교의 직접적 지배방식이다 다께다의 조동종을 통한 연합에 의한 우회적 지배 방식이나 조선불교의 통제를 통한 정신의 지배라는 목적에서는 동일한 것이었다.
다섯째, 이와 같은 원종의 성격은 조선 승려들의 자각에 의한 자주적인 종단이었다고 결코 평가할 수 없으며, 따라서 원종은 초기에는 일본색을 탈피한 자주적 종단으로 출발하였으나 한일합병으로 인해서 부득이 친일로 전락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종여일하게 일본제국주의의 조종에 이용된 꼭두각시 집단이었던 것이다.
여섯째, 원종의 조동종 연합 추진으로 인해서 표면화된 원종 반대운동인 임제종 운동은 단순히 교단내부의 종통(宗統)의 차이로 인한 대립의 차원이 아니라 일제(日帝)에 대한 저항, 반(反)제국주의적 민족불교운동이었다는 의미까지 갖는 것이었다. 그와 같은 임제종 운동은 조선불교 최초의 조직적인 의식(意識)운동으로서 이후의 불교청년운동의 최초의 연원이 되었던 것이다.

지난 호에 편집상의 착오가 있었던 것을 이번 호에서 바로 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