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 맺음말
① 문제의 정리
이제ꡐ들어가는 말(I)ꡑ에서 제시한 여섯 가지의 문제에 대하여 그 고찰의 결과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첫째, 원종의 고문 다께다는 단순히 조동종의 한 승려로서 원종의 고문에 있었던 자가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과 지배를 위해 아시아주의의 논리로 무장하여 침략과 전위(前衛)로서 활약한 우찌다(內田良平)의 흑룡회(黑龍會)에 소속된 조선낭인이었다.
둘째, 조선낭인 다께다는 원종의 성립 이후에 비로소 고문으로 추대받아서 취임한 것이 아니라 원종 성립을 처음부터 그 스스로 계획하고 실현시켰던 것이다. 그는 1907년 「권불교재홍서(動佛敎再興書)」를 써서 조선불교의 일본화를 의도하고 있거니와, 조선불교의 보다 효과적인 통제를 위해서 원종과 같은 통일기구를 만들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성립 과정에서도 통감부에 보내는 「청원서(請願書)」, 「의견서(意見書)」 등을 작성하고 있다.
셋째,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원종의 명칭, 유래에 대하여 여러 가지 논의가 있었다. 그러나, 논자는 다께다의 「원종육제론(圓宗六諸論)」에 나타난 원종주의(圓宗主義) 종교이념을 분석, 아시아주의의 종교적 표현인 원종주의 실현이 그의 목적(이념)이었다고 보고, 그런 차원에서 원종의 명칭 역시 그가 지었거나, 아니면 적어도 그로부터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해 보았다.
넷째, 원종이 조동종과의 연합을 추진한 것은 한일합병으로 인하여 장래의 조선불교의 기반이 약화될까 우려해서 조동종과 연합을 하고자 비로소 시도한 것이 아니라, 원종 성립 당시부터 다께다의 의중에는 그러한 계산이 짜여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찰령으로 인하여 무위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는데, 총독부와 다께다의 입장이 서로 달랐다는 것을 알수 있다. 그러나, 총독부의 무단통치에 의한 조선불교의 직접적 지배방식이다 다께다의 조동종을 통한 연합에 의한 우회적 지배 방식이나 조선불교의 통제를 통한 정신의 지배라는 목적에서는 동일한 것이었다.
다섯째, 이와 같은 원종의 성격은 조선 승려들의 자각에 의한 자주적인 종단이었다고 결코 평가할 수 없으며, 따라서 원종은 초기에는 일본색을 탈피한 자주적 종단으로 출발하였으나 한일합병으로 인해서 부득이 친일로 전락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종여일하게 일본제국주의의 조종에 이용된 꼭두각시 집단이었던 것이다.
여섯째, 원종의 조동종 연합 추진으로 인해서 표면화된 원종 반대운동인 임제종 운동은 단순히 교단내부의 종통(宗統)의 차이로 인한 대립의 차원이 아니라 일제(日帝)에 대한 저항, 반(反)제국주의적 민족불교운동이었다는 의미까지 갖는 것이었다. 그와 같은 임제종 운동은 조선불교 최초의 조직적인 의식(意識)운동으로서 이후의 불교청년운동의 최초의 연원이 되었던 것이다.
지난 호에 편집상의 착오가 있었던 것을 이번 호에서 바로 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