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장주 한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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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대방 한담 - 지묵
1989년 08월 90호
여행 순례길에는 재미난 이야기가 따른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는 곳마다 낯선 이들을 만나서ꡐ지구촌 가족ꡑ으로서 함께 즐기는 동안 생의 환희를 느끼기도 한다.
내가 인도 여행 순례길을 떠난 날이 오월 이십일일이니 벌써 두 달이 지난 셈이다. 내가 인도로 떠나기 약 한 달 전에 성지 순례를 마치고 귀국한 송광사 스님들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가 있다. 이제, 나는 그 이야기의 현장에 와서 재미있게 들었던 그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 본다.
약수암 주지 스님은 작설차를 따라 건네주면서, 극적으로 청전(淸典)스님을 찾은 일을 풀어놓기 시작하였다.
앞서 유학와 있던 청전스님이 머물고 있는 다람살라에 두 스님이 늦게 도착하여 호텔에 숙소를 정하고 나니 한밤중이었다. 동행한 현음(玄音)스님은 약수암 주지 스님의 길 안내역을 맡고 있었다. 여러 해 동안 스리랑카에서 유학한 경험이 있을뿐더러 영어에도 능하여 그이상 좋은 안내역은 없는 터였다. 그런데, 피곤했던 탓인지 이틑날 아침이 되어서도 현음스님은 그냥 잠에 빠져 있었다. 어쩔 수 없이 혼자 아침 산보길을 나선 약수암 주지 스님은 숙소 주위를 거닐면서 거리 구경을 하기 시작하였다. 주지 스님은 영어도 못하고 더구나 인도어나 티벧어는 전혀 몰랐다. 다만 제치가 있고, 또 어떤 상황에 청하였을 때는 판단력이 빨라서 곧잘 위기를 모면하곤 했던 스님이다. 한번은 현음스님과 주지 스님이 인도버스에 함께 승차했다가 내릴 때는 따로따로 내려 버려서 반나절을 서로 찾고 헤맨 일이 있었는데, 그때에도 주지스님은 기지를 발휘해서 숙소로 있던 호텔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호텔 주소는 물론 전화번호조차 모르는 주지 스님은 버스를 타고 지나쳐 온 길을 다듬어서 정확히 숙소까지 걸어갔으니 놀라운 일이었다. 이날 아침 산보길에서 주지스님은 한 티벧 할머니의 손목에 끼여 있던 한국 합장주(合掌珠)를 보고서 청전 스님이 머물고 있는 집을 찾아 내었던 것이다.ꡒ아니, 코리아!ꡓ길거리에서 티벧 할머니의 합장주를 본 주지스님의 입밖으로 새어나온 말이다. 영어라고는ꡐ코리아ꡑ밖에 모르는 스님은 합장주가 한국 제품인 것을 얼른 알아채고는ꡐ코리아ꡑ한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을 듣고서ꡐ코리아ꡑ사람을 찾는구나 하고 생각한 티벧 할머니가 손짓을 해가며 방향을 일러주니, 주지 스님은ꡐ내가 코리아라고 하니 한국사람을 가르쳐 주겠다는 말이로구나ꡑ하고 얼른 그 뜻을 알아채고는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골목길을 따라서 삼백 미터 가량 들어간 곳에서 티벧 절의 비구니 처소로서 한국 비구니 경우(耕牛)스님이 머물고 있는 방이 있었다. 경우스님은 전날 밤부터 심한 감기몸살을 앓은 뒤 아침에야 겨우 정신을 차려서 깨어나 있을 때였다.ꡒ똑, 똑, 똑.ꡓ밖에서 노크 소리가 나기에 경우스님은 불편한 몸을 움직여서 문을 반쯤 열고 내다보았다. 티벧 할머니는 뒷전에 물러나 있고 웬 스님 한 분이 큰 눈으로 빤히 쳐다보고 서 있는 것이었다. 경우스님은 얼른 일본 스님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에도 일본 스님 한 분이 방문한 적이 있어서 얼핏 그런 생각이 든 것이다. ꡒ.......ꡓ밖에 서 있는 주지 스님도 말을 못하고 방안에서 내다보는 스님만을 말똥말똥 쳐다볼 뿐이었다. 두 스님은 서로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확실하게 짐작이 안 되었다. 두 스님이 그렇게 마주보고 서 있는 동안 티벧 할머니는 그들 곁에서 떠났다. 한참만에 경우스님이 손짓을 해보이며 방안으로 주지 스님을 모셨다. 주지 스님이 머뭇거리며 방안에 들어가서 침대 한쪽에 걸터앉으니 마침 경우스님이 기침을 두어 차례 터뜨렸다. ꡒ콜록,콜록.ꡓꡒ아니, 감기?ꡓ하고 주지 스님이 혼잣말을 하였다. 이 말을 듣고는 경우스님이 주지 스님에게 말하였다.ꡒ스님, 한국 스님이셔요?ꡓ주지 스님이 대답하였다.ꡒ예, 스님도 한국 사람 맞소?ꡓꡒ예, 저도 한국 비구니예요.ꡓ두 스님은 서로 어느 나라 사람인지 궁금해 하다가 말문이 열리자 반가웠다. 주지 스님이 말하였다.ꡒ청학(靑鶴)스님이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ꡓꡒ청학스님은 어제 이곳을 떠났어요.ꡓꡒ청전스님은?ꡓꡒ여기서 공부하고 계십니다.ꡓꡒ청전스님을 뵐까 하는데 집좀 가르쳐 주겠소?ꡓ경우스님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하였다.
ꡒ청전스님은 지금 공부하고 있는데 좀 기다렸다가 가르쳐 드리겠습니다.ꡓ경우스님은 다시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었다. 주지 스님은 한시가 급한 마음에서 다시 입을 열었다.ꡒ나는 청전스님을 잘 아는 사람이요. 가는 길만 가르쳐 주면 그 뒤는 내가 알아서 할 터이니 가르쳐 주십시오.ꡓ경우스님은 망설였다. 한국에서 온 여행객들과 스님들이 번번히 찾아오므로 인도 현지에 유학와서 머물고 있는 한국 스님들의 번거로움은 말할 수 없이 크기 때문이다. 찾아오는 이들은 냉대할 수도 없으니 매번 곤란을 겪는 것이다. 여행객들은 어떻게 주소를 알고 찾아오는지 잘도 찾아와서는 며칠씩 묶고 떠나니, 만나면 반갑긴 하지만 공부하는 이에게는 큰 불편이다.ꡒ스님, 청전스님이 머물고 있는 집이 어디입니까?ꡓ경우스님은 하는 수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길 안내를 하였다. 청전스님은 티벧 비구 스님들이 묶고 있는 집안에 방을 한 칸 잡고 있었다. 창문을 열면 툭 트인 전망이 그만이다. 히말라야 기슭 위에 덮인 눈이 아스라이 내다보인다.ꡒ아니 스님이!ꡓ청전스님은 급히 뛰어나와서 주지스님을 맞아들였다. 두 사람은 긴 포옹을 하면서 기쁨을 나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