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코 없는 부처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꽁트 - 이청 1989년 08월 90호
불암골 윤규의 논배미 위 풀밭에는 땅 속에서 불쑥 솟아난 돌부처 하나가 서 있다. 골짜기 깊은 곳의 지대 높은 자리의 계단식 논배미들은 모두 윤구의 조상들이 대대로 물려준 유산이었는데 천수답 치고는 웬만한 가뭄에도 마르는 법이 없어 가을걷이가 넓은 들판의 상답 못지 않게 실팍한 땅이었다. 제일 꼭대기에 있는 논배미 위의 땅도 항상 축축하게 젖어 있어 잘만 개간하면 자그마한 논바닥 하나 더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작년 가을걷이 후 파헤쳐 본 것인데 뜻밖에도 땅 속에서 돌부처 하나가 솟아난 것이었다.
처음에는 귀찮은 바윗덩어리인 줄 알고 정으로 깨보다가 그것도 안될 경우에는 폭약이라도 구해다 깨뜨릴 심산이었는데 삽으로 대충 둘레를 파보니 그게 바위가 아닌 사람의 형상이 분명하였다. 마을 사람 몇을 놉하여 꺼내 놓고 나니 그 돌부처라는 것의 상호가 몹시 기괴하였다. 눈과 귀와 입은 형용이 뚜렷한데 코는 납작하다 못해 그 붙었던 자리가 도리어 움푹하게 패여 있었다. 부처는 똑바로 선 입상이었는데 원래부터 땅속에 박아서 세워 두었던 것인듯, 족좌(足坐)의 밑부분에 둥근 기둥 모양의 뾰족한 삽입폭이 길게 붙어 있었다.
ꡒ아하, 땅에서 있는 부처님이 대체 무슨 힘으로 천년 풍상을 견디며 버티고 서 있는가 궁금했더니 바로 요런 꼬리가 있었구만.ꡓ
여럿이 목도질을 하여 부처를 논배미 위의 빈 풀숲으로 옮기면서 누군가 시시덕거렸다.
ꡒ그나저나 코는 어디 갔을꼬?ꡓ
ꡒ그것도 모르나. 애 못 낳는 여자들이 다 갈아 마셨지. ꡓ
ꡒ갈아마셔?ꡓ
ꡒ에라, 이 병신. 옛날에는 애 못 낳는 여인네들이 부처님 코를 갈아서 그 돌가루를 물에 타 마시면 애를 낳는다고 했거든. 그러니 절간 밖에 서 있는 돌부처들은 몽땅 수난을 당할 수밖에.ꡓ
ꡒ하필이면 왜 코였을까?ꡓꡒ부처님 × 알을 갈아 마실 수는 없으니까 코였겠지.ꡓ
ꡒ과연!ꡓ
그 말을 듣고 보니 처음에는 기괴하게 느껴졌던 움푹 패인 코가 차츰 성스럽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잘 모르기는 하지만 지장보살이라는 보살은 천하중생이 다 부처가 될 때까지 자신은 부처가 되지 않은 채 중생의 고통을 함께 지고 있다지 않은가. 가엾은 여인네의 한 서린 소원을 풀어 주기 위해서라면 이 돌부리는 코뿐만 아니라 몸 전체를 다 주어도 좋다는 그런 자세로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날 저녁, 집에 와서 아내 복순이에게 부처님의 코 얘기를 하자 복순은 몹시 심란한 얼굴로 천장을 쳐다보다가 방바닥을 내려다보다가 하였다. 그러고는 어깨를 들먹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ꡒ이봐, 당신더러 돌부처 갈아 마시라는 얘기는 아니야ꡓ
ꡒ그래도, 이상하지 않아요?ꡓ
ꡒ뭐가 이상해?ꡓ
ꡒ시어머니 돌아가시기 전에 들려준 얘기로는 박씨 가문이 대대로 자손이 귀하기가 가뭄에 콩 나듯 하는지라 사대독자 오대독자는 식은죽 먹기였다고 했잖아요. 당신만 해도 사대독자인데도 결혼한 지 아홉해에 아직 자식이 없으니 이게 보통 일은 아니잖아요.ꡓ
ꡒ쓸데없는 소리.ꡓ
ꡒ그 돌부처 코는 박씨 가문 여인네들이 대대로 갈아 마신 게 분명해요.ꡓ
ꡒ에이, 조상들 욕먹이는 소린 왜 해.ꡓꡒ욕먹이다니요. 오죽 간절했으면 그토록 코가 있던
자리가 움푹 패일 정도로 갈고 또 갈았을까. 따지고 보면 당신 몸 속에는 그 부처님 코에서 떨어진 돌가루가 스며들어 있을 거예요.ꡓ
ꡒ갈수록 미친 소리.ꡓ윤규는 아내의 객적은 소리를 틀어막았다. 그러나 그날 밤 꿈속에서 윤규는 먼 조상이 되는 박씨 가문의 젊은 여인 한 사람을 만났다. 때는 신라 시대 같기도 하고 고려 시대 같기도 하고 또는 조선 시대 같기도 했다. 자세히 보니 그 여인은 아내 복순이를 빼닮은 모습이었다.
박씨 가문의 사대독자를 남편으로 둔 그 여인은 시집 온 지 몇 해 동안 아이를 낳지 못하였다. 그러자 시어머니는 어느 날 며느리를 마을 뒤편 골짜기에 있는 암자 입구의 돌부처가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깜깜한 밤중이었다. 시어머니는 부러진 숟가락으로 돌부처의 코 부분을 긁어내기 시작했다. 지켜보던 며느리는 시어머니로부터 숟가락을 받아 부처의 코를 긁어내는 작업을 계속하였다. 산등성이에 달이 떠오르자 어둠 속에 묻혔던 돌부처의 얼굴이 떠올랐다. 슬픈 듯, 연민에 차있는 듯, 돌부처의 표정은 헤아리기 어려웠다. 어찌 보면 웃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아마도 그 돌부처는 얼굴을 다 긁어내고 동체만 남더라도 여전히 웃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돌부처의 코를 긁어온 며느리는 그것을 탄 물에 간절한 소망을 함께 풀어 마신다.
그러나 여인은 끝내 아이를 낳지 못한다.ꡐ나도 이 돌가루를 수없이 마셨다. 어차피 자손이 귀한 집에 시집을 왔으니 오로지 부처님 가피에 맡길 뿐 다른 도리가 없느니라.ꡓ
이렇게 아픔을 달래주던 시어머니도 차츰 며느리를 경원하기 시작하였다. 그 다음 해에 남편은 새 여자를 맞아들였다. 집안도 천하고 행실도 단정치 못하였으나 몸은 튼튼하기가 새끼 밴 암소 같았다. 그래서 그랬는지 새로 들어온 여인은 겨우 몇 달만에 아이를 뱄다.
마침내 아들을 낳자 둘째 마누라와 첫째 마누라의 위상은 바뀌었다. 게다가 신체가 튼튼한 새 마누라는 농삿일도 잘하여 시부모의 귀염도 아울러 받았다.
본래의 며느리는 설 자리가 없었다. 원래 농삿일을 하지 않고 귀하게 자랐던 몸이지만 머슴이나 마찬가지로 들에서 일을 했다. 몸이 약하니 날이 갈수록 건강을 잃어 갔다. 그리고 얼굴은 삽시간에 늙어갔다. 그녀에게는 세월이라는 것이 속절없이 길기만 하였다. 둘째 여인의 기세는 등등하기만 하여 그 천박한 말짓거리로 구박을 받을 때마다 첫째는 그저 어서 죽어 버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어느 어두운 밤 첫째는 부처님 앞으로 나아갔다. 여인은 지난 날 당신의 코를 긁어 마신 죄를 용서해 주십사고 한없이 빌었다. 다음날 암자의 주지스님이 탁발을 하러 마을로 내려오다가 돌부처 앞에 쓰러져 있는 여인을 발견하였다. 몹시 쇠약한 그 여인은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다. 밤새도록 절을 했는지 손바닥에는 피멍이 들어 있었다
꿈에서 깨어난 윤규는 아내의 코에 손을 대 보았다. 숨을 쉬고 있었다. 불을 켜고 손바닥을 보았다. 피멍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 서슬에 복순이 눈을 떴다. 셜흔 다섯인데도, 농촌에서 태어나 농군에게 시집와서 농삿일을 해온 탓인지 얼굴도 손도 모두 거칠었다.
ꡒ배가 아파요?ꡓ복순이가 하품을 하며 한다는 소리가 그랬다. 뒷간에 가려고 일어난 줄로 아는 모양이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몸이 아프지 않으면 새벽잠을 설칠 이유가 없는 줄로 아는 천진한 마누라의 눈을 바로 보기 어려웠다. 그녀의 눈을 마주보기 어려운 것은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ꡐ나는 속으로 마누라가 죽기를 바랬는지도 모른다. 아이 없다는 핑계로 농토 팔고 도시로 나가 젊고 예쁜 도시 여자들과 살고 싶어했었지. 그게 박씨 가문 대대로 이어져 온 남자들의 내력이었을 테니까.ꡑ
그는 코를 잃어버린 돌부처가 그 기괴한 모습으로 아득한 세월을 건너뛰어 하필이면 지금 땅 속에서 불쑥 솟아난 이유가 무엇일까를 헤아리며 요즘 밤마다 잠을 설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