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길은 천차만별이다. 이 길로 갈까, 아니면 저 길로 갈까하며 사람들은 회의하고 방황하며 또한 고민하게 된다. 누구나 할 것 없이 자신 앞에 놓여진 인생의 길 앞에서 숱한 망설임과 방황을 하기 마련이며, 방황 끝에 겨우 어떤 길을 선택하고도 불안감과 뉘우침과 그에 따른 우수와 번민으로 괴로워하는 경우를 수없이 보고 또한 직접 체험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택한 길 이외의 다른 어떤 길을 선택했다 하더라도 그 길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의 후회와 뉘우침이 있었을 것을 생각하면, 가끔 우리는 처음부터 그 어느 길이든지 선택하는 것마저 차라리 포기해 버려야 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그러나 인간의 역사는 끊임없이 흘러서 사람이 존재하는 한 어느 쪽이든지, 어느 방향으로든지 가고 있으며 또한 가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우리가 어떤 길이든 스스로 길을 선택하여 떠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뜻이 있다.
부처님께서 위야(委若)국의 금반녹림(金槃塵林)에 계실 때 나형범지 가섭이 고행자를 부처님께서 왜 꾸짖으셨는가하고 물은 데 답하여 부처님께서는 고행(苦行)에도 선과 악의 두 갈래가 있음을 밝히시고 다만 출요(出要)가 아님을 말씀하셨다.
저는 들었습니다. 사문 고타마는 일체의 모든 제사의 법을 꾸짖고 고행하는 사람을 욕하며 더러운 것이라 한다고. 부처님은 말씀하시기를ꡒ가섭이여 나는 저들 고행하는 사람들을 보면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 지옥 가운데 떨어지는 자도 있고 또 고행하는 사람으로서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 하늘의 좋은 곳에 나는 자도 본다. 나는 이 두 세계의 갚음을 받는 곳을 다 알고, 다 본다. 그런데 내 어찌 모든 고행자를 꾸짖어 더러운 것이라 하겠는가ꡓ
당시 인도에서의 수행은 철저한 고행이 아니면 쾌락주의였다고 한다. 부처님은 일찍이 이 두 가지의 극단을 떠나서 수행하여 보리를 중득하였던 것이다. 다른 경전에서도
세간의 이익 주려고 큰 마음 내고
그 마음 시방세계 두루 퍼지니
중생과 국토들과 삼세의 법과
부처님과 보살의 수승한 바이다
모든 갈래 차별과 수 없는 망상
업과 맘과 과보도 하나 아니며
근기와 성품들도 제각기 달라
큰 마음 한번 내면 밝게 본다네
분별하고 분별할 것 둘이 다 없고
물들고 깨끗함을 취하지 않으며
속박이다 해탈이란 지혜도 잊어
삼세를 구하여도 얻을 수 없네
라고 하였다.
강물이 흘러가는 길은 지세를 따라 열리고 불길이 타오르는 화염은 바람의 세력에 따라 번져가기 마련이다. 자연은 순응만 있고 어떤 선택도 없지만, 사람은 스스로의 길을 선택하기 위하여 고뇌하기 때문에 육도의 길에서 깨달음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부처님은 일체 중생이 누구나 다 불성을 구족하게 갖추고 있으므로 한번 놀라셨고, 그러나 이 불성이 무명으로 덮이고 가리워져 밝지 못함을 보시고 또 한번 놀라셨다고 하였다.
수행의 길에는 선택이 있어 어느 길이 바른 길인지 알기 어렵기 때문에 고뇌하고, 바른 길을 선택하고도 게을러 실답게 행하지도 않으면서 어렵다고만 한다. 이와 같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은 확고한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ꡒ가섭이여 도(道)가 있으면 자취가 있는 것이어서 비구가 그 가운데서 수행하면 곧 스스로 알고 스스로 보는 것이다. 사문 고타마는 때를 알아 말하고 진실로 말하고 이치대로 말하고 법대로 말하고 규칙대로 말하느니라.ꡓ
우리는 대승경전 금강경에 익숙해져서 ꡐ여래는 변함이 없는 것을 말하고 실다운 것을 말하며 헛되지 않은 말을 하며 두 가지로 말하지 않는다ꡓ는 구절을 떠올리게 하는 말씀이다.
진실, 법, 율대로 말하고 진실을 본대로 이해하고 실천하며 그대로 확신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그것을 보아 확인할 수 있음을 분명히 말씀하신 것이다. 대승경전에서는 부처님이 이 세상에 출현하신 뜻은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을 밝히기 위한 것이요, 그것은 바로 믿고(信) 알고(蘇) 행하고(行) 체험하여 느끼게(證)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아주 옛날에는 짐승의 자취를 따라 길을 가며 생업의 터전을 향하는 길을 열어 갔었다. 그것은 자연에 순응하는 길이었고, 그 길이면 만족한 때가 있었다. 그리하여 도교는 자연에 순응하는 길을 가르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활의 길이 관념의 길과 떨어져 존재할 수 없는 오늘날의 가열된 노선경쟁은 자연의 길이 아닌 인위의 길이 되고 말았다. 요즈음은 어느 길을 택하여 수호하지 않으면 그 길은 황폐해질 뿐만 아니라 그 길로 가던 수많은 사람들의 생활마져도 봉쇄되어 존재의 위협을 받는 지경에 도달하고 말았다. 그러므로 생각은 낙엽처럼 뿔뿔이 흩어져서 역사의 대세에 밀리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해서 우리 스스로가 선택하는 길을 보다 큰 길로 일구어 나가는 일꾼이 되는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 길이든, 저 길이든 우리가 찾는 길은 나 하나만의 길이 아니요 우리의 길이어야 하고 우리의 역사적인 현실에 적합해야 하며 또한 영원으로 향하는 길이어야 한다. 따라서 이 길은 단순한 길이 아니라 최상의 길, 지고의 길, 해탈을 위해 우리 손으로 닦는 최선의 길이어야 하는 것이 대원칙이어야 한다.
ꡐ비구는 그 가운데에서 수행하여 스스로 알고 스스로 본다ꡓ는 것이 어떤 것이며 어떤 자취인가를 그 다음에 이렇게 밝히고 있다.
ꡐ가섭이여 비구는 염각의(念覺意)를 닦을 때에는 지식(止息)을 의지하고 무욕(無慾)을 의지하고 출요(出要)를 의지한다. 법, 정진, 회(喜), 의(猗), 정(定) 사(捨)의 각의(覺意)를 닦을 때에도 지식을 의지하고 무욕을 의지하고 출요를 의지한다. 가섭이여 이것을 도라 하고 자취라 한다ꡓ
영원한 것과 영원하지 않은 것, 그것은 바로 해탈이며 윤회인 것이다.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이데오르기는 민주주의이다. 그동안 늦추어져 온 민주주의를 하루 빨리 이룩해야 한다고 말하며 다수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집단의 행동이 가열화된 현실을 본다.
그러나 입으로는 민주를 외치지만 그 속에 내재되어 있는 것은 이기섬과 욕심인 경우를 적지 않게 목격하게 된다.
옛 사람이 닦아 놓은 길은 위대한 길이 많이 있지만 그 방법론에 있어서 새로운 해석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그때의 역사나 풍토, 사람, 관점이 달라졌으므로 오늘날의 관점으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일단 역사의 물길이 바뀌면 우리는 거기에 맞추어 새로운 다리를 놓아야하고 돌아가는 길도 단축해야 하고 험한 길도 평평하게 바꾸어야 할 것이다 목적지를 두고 가는 길에서 어려움을 피하여 가장 짧은 길을 희구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본래의 소망이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몰락의 길은 쉽고 향상의 길은 어려웠다. 눈앞의 평탄에 속아 결국 절망의 자취를 따르지 말고 험난하더라도 바른 길을 쫓아 극복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 길을 갈까, 저 길을 갈까 하는 것은 언제나 우리 자신의 결정권이다. 그런데 그 목적이 우리 한 개인만의 길이 아니고 적어도 민족과 인류를 위한 대승적인 길일 때에는 언제나 영원하고 진실한 길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부처님은 아무리 고행을 하더라도 그것이 한 개인의 이
익만을 위한 것이거나 한 집단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하나의 극단이라고 보신 것이다. 아무리 간고한 고통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자신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임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래서 해탈을 추구하는 것이 개인적으로 윤회를 벗어남과 동시에 모든 중생을 해탈에 이르도록 하려는 원(願)이 있어야 함을 강조했다.
ꡒ가섭이여 사문의 법과 바라문의 법은 어렵다. 옷을 벗은 나체의 고행자는 무수한 방편으로써 그 몸을 괴롭게 부린다. 그러나 그는 계(戒)를 구족하지 못하고 소견을 구족하지 못했다. 또 다만 그 마음이 성냄이 있는 마음인가, 성냄이 없는 마음인가, 원한이 있는 마음인가, 원한이 없는 마음인가, 해롭게 하는 마음인가, 해롭게 함이 없는 마음인가를 모르기 때문이다. 만일 마음을 안다면 사문 바라문을 어렵다고 이름하지 않을 것이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문 바라문이 어렵다고 하는 것이다ꡓ
출요란 어리석음과 어두움과 욕심을 멸하고 삼매의 마음으로써 맑은 지혜를 내어 정근하고 전념하여 잊지 않으며 즐기어 방일하지 않음을 말한다. 엄격하게 말해서 설사 행동으로 나타난다 하더라도 그 마음속의 상태가 이기심에 불타고 있다면 도를 닦아 범행을 닦는다고 하더라도 무여열반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여름에 따르기 쉬운 온갖 불쾌지수와 함께 나타나는 번뇌의 열기를 바닷물에 식히듯이 어리석음과 어두움의 때를 씻는데 주저하지 말아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