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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공해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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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연기영 1989년 08월 90호
1. 하나뿐인 지구촌
이십세기에 들어오면서 밀어닥친 물질문명의 고도화에 따라 지구촌의 환경은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다. 산업화와 도시화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에 이룩한 과학기술의 발달과 경제성장은 물질적으로는 풍요한 사회를 가져왔다. 그러나 한면으로는 그러한 발전 과정에서의 무절제하고 무모한 개발 행위로 말미암아 인간은 유해하고 유독한 물질로 자신의 환경을 오염시키고 파괴시킴으로써 인간 자신을 포함한 지구촌의 모든 생명체들을 큰 위험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온 인류의 공동소유인 ꡐ하나밖에 없는 지구ꡑ를 도저히 회복할 수 없을 만큼 파괴시키고 오염시키는 치명적인 불행을 자초한 것이다. 이러한 자연환경의 파괴와 오염을ꡐ공해ꡑ라고 한다.
공해라는 용어가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불과 이십여 년밖에 되지 않았다. 학문적으로는 물론 그전에도 쓰였지만, 1964년에만 해도 국어사전에ꡐ공해ꡑ라는 낱말은 없었다. 그러다 70년대에 이르러 급작스러이 일반화되어 자주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그것은 5.16군사정권이ꡐ조국근대화ꡑ라는 이름 아래 주도한 경제개발종합계획에 의해 고도성장의 길로 치달아가면서 그 부작용으로 환경파괴 또는 공해 문제가 차츰 심각해진 때와 일치한다. 60년대 말까지만 해도 공해 문제를 학술적으로 실증적으로 자유롭게 연구-토론할 수 있는 분위기가 성숙되어 있지 못했고, 오히려 행정당국이나 기업들은 이 문제를 은폐하고 금기시했다. 그 무렵 어느 교수가 공업지대가 밀집되어 있는 해안과 하천의 오염 실태를 학술적으로 연구하여 발표했다가 곤욕을 치렀다는 신문기사를 대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다 유신시대에 들어서면서, 정치적 집권세력과 대기업 사이의 정경유착 현상이 더욱 깊어짐에 따라 공해 문제는 거의 극한점에 다다르게 되었고, 그와 더불어 그 문제의 심각함에 대하여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곧, 기업이 이윤의 극대화만을 고려하여 환경오염으로 인한 피해를 시민들에게 전가시키려는 무책임하고 비윤리적인 기업활동을 일삼음에 대하여 그러한 폭력을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는 시민의식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부터 비로소 공해는 ꡐ산업화 및 도시화를 향한 생산활동의 결과로 부산물 가운데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반(反)생명적인 것ꡑ이라는 개념이 통용되기 시작하였다.

2. 인류의 위기
공해 문제는 오늘날 지구상의 온 인류의 공동의 관심사이다. 인류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기에 그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더욱 고조되어 있다. 환경파괴, 오염 따위는, 사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면서부터 이미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과학기술이 고도화된 현대의 산업사회에 들어서면서 더욱 두드러지게 되었으니 지구와 더불어 온 인류를 생존의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산업화가 가장 먼저 시작된 영국에서는, 이미 십구세기말에 대기오염으로 인하여 수많은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이십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는 미국을 비롯하여 유럽의 여러나라에서 수천명의 인명피해를 냈던 공해 사건만도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각국은 경제성장을 통한 산업전쟁을 계속해 오고 있는 터이며, 그 결과로 공해로 말미암은 피해는 양적으로 더욱 축적되어 국제적인 문제로 치닫게 되었다.
이십세기 후반에 있는 우리에게 이 환경 오염 및 파괴로 인한 공해 문제는 이제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인류 문명과 생존을 현실적으로 위협하는 과제가 되고 있다. 결국, 인간이 자연생태계와 구성분자로서 저 자신이 자연의 일부임을 깨닫지 못한 채 개발이라는 명목 아래 자연환경을 마구 파괴시키고ꡐ공해ꡑ라는 재난을 유발시켜 온 셈이다. 인류는 위기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3. 부처님의 가르침
인류를 위기에 몰아넣고 있는 이 공해 문제를 법과 제도의 정비만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모든 사회의 구성원이 저마다 환경보존 및 지구의 생태계에 대한 공동체적인 책임의식을 자각하여 자연의 존엄성을 지켜나가려 하는 정신이 바탕이 되어야만 근본적인 해결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인간의 무절제한 욕망의 추구가 자연과 생태계를 파괴시키기에 이르른 오늘날, 우주의 질서 속에서 겸허하고 슬기롭게 살아갈 바른 길을 가르치는 부처님의 가르침이야말로 그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불성이 있음을 깨우쳐 준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비롯된 불교는 물론 인간 중심의 종교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개개인의 인격과 생명용 중시하는 불교의 생명존중사상은 나아가 자연계의 모든 생물의 생명과 그 가치를 존중하여 불살생(不殺生)의 계율과 사상을 낳은 것이다. 이제 우리는 자연의 파괴로 말미암은 공해에서 스스로 벗어나 인간다운 삶을 확보할 길을 불교의 가르침에 의거하여 모색해 보아야 할 것이다.
먼저, 지구 생태계의 구조와 관련하여 현실세계를 파악하는 원리로서 부처님이 제시한 사법인(四法印)을 생각 할 수 있다. 이 사법인의 원리는, 첫째, 현상계의 모든 자연과 인간과 물질의 존재를 늘 움직이는(변화무쌍한) 것으로 파악한 것이다〔諸行無常〕. 이는 모든 만물은 개별적으로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인연의 화합에 의하여 조작된 것이므로 늘 변천한다는 가르침이다. 둘째는, 객관세계에 늘 주재하는 절대적인 실체의 존재를 부정하고 주관적인 영혼의 실체의 존재도 부정하는 가르침이다〔諸法無我〕. 자아라고 하는 것은 영속적, 통일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대(四大) 또는 오온(五蘊)의 일시적인 화합에 의해 존재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실천적인 입장에서 불교는 인간의 아집과 아만과 아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수행을 요구하고 있다. 셋째는, 우리 인간은 영원토록 머물러 있으려 하고 또 현실에서 절대적인 만족을 얻으려 하는 욕심을 쉽사리 버릴 수 없으므로 늘 고통의 바다를 항해하는 것이라는 가르침이다〔一切皆苦〕. 이것은 단순한 생리적, 심리적 고통만을 뜻하지 않으니, 내면의 무명(無明)과 탐욕에 그 뿌리가 있다고 한다. 넷째는, 마침내는 인간의 위와 같은 현실적인 고통을 모두 이겨내고 영생과 정각의 열반에 도달하여 이상세계를 건설하게 된다는 가르침이다〔涅槃寂靜〕이러한ꡐ사법인ꡑ의 철학적 기반 위에 세워진 원리가 바로 사물의 발전법칙이라고 할 수 있는ꡐ연기론ꡑ이다. 붓다는 이러한 연기의 이법(理法)을 깨달음으로써 부처가 되셨다. 연기의 법칙은 인과관계이니, 인과 연의 결합에 의하여 사물의 발전이 이루어져 과(果)를 낳는 법〔眞理〕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원리는 극단적인 인간의 이기심이나 탐욕이 끝내 자연생태계를 파괴한다면 인류는 자멸하고 말 것이라는 인과응보의 실상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물질문명을 이룩하기 위한 경제성장의 과정에서 자연환경의 파괴와 오염 및 정신의 황폐로 말미암아 인간성까지 상실되는 결과를 초래한 원인인 인간의 욕심에 대한 고통을 이겨내는 길은 무엇인가. 부처님은 고통의 생성과정과 그것을 이겨내는 길을 사성제․팔정도의 원리로써 제시해 주고 있다. 곧, 고뇌에 대한 진리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苦聖諦〕.
ꡐ…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부터 고뇌다. 늙고 병들고 죽는 것도 고뇌다. 미워하는 자와 만남도 고뇌며, 사랑하는 자와 헤어짐도 고뇌다. 곧 인간생활을 구성하는 물질적, 정신적인 모든요소는 고뇌인 것이다…(中阿含經, 柔轉經)ꡓ
이제 이러한 현상계의 사실인 고통의 원인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集聖諸〕. 이에 대해 부처님은 ꡒ고뇌의 원인은 갈애(渴愛) 곧 환락과 탐욕을 갖추고 이곳저곳에서 쾌락을 추구하는 욕망이다…(中阿含經, 初轉法輪經)ꡓ라고 말씀하셨다. 고는 결국 욕망과 아집에서 생기며, 또 이를 알지 못하고〔無知〕 깨우치지 못함〔無自覺〕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한편, 갈 갈애를 끊음이 윤회를 초월해서 자유로운 이상세계인 열반에 이르는 길이라고 가르치신다〔滅聖諸〕. 열반은 온갖 번민과 고통을 초월환 경지로서 영원한 자유의 세계, 기쁨의 세계인 것이다. 이 깨달음의 영원한 세계에 이르기 위해 고뇌를 여의는 수행의 길어 ꡐ팔정도ꡑ이다[道聖諦〕. 이러한 사법인, 사성제, 연기론과 같은 부처님의 기본적인 가르침은 환경과 공해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서 안간에게 사상의 바탕을 일깨워주며 원리를 제시해줄 수 있다고 믿는
다.

4. 깨끗한 환경을 위한 보살의 길
앞에서 밝힌 부처님의 가르침은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원리를 우리에게 깨우쳐 준다는 점에서 그 소중함을 재삼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대승불교적 보살의 길을 실행하여 적극적으로 청정한 불국정토를 건설함의 중요성을 또한 인식해야 할 것이다. 보살은 보디(苦提, Bodhi)와 살타바(廳睡婆, Sattva)의 합성어이다. ꡐ보디ꡑ는 깨달음〔覺〕을 뜻하고, ꡐ살타바ꡑ는 중생 곧 유정(有情)을 뜻한다〔覺有情〕. 저 관세음보살이 오로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열아홉 또는 서른두 가지의 몸을 나타내보이듯이, 보살은 한 마디로 구세주, 구제자를 뜻한다. 중생 구제의 실천행에 앞서서 보살은 더욱 자율적
이고 자각적인 여러 가지 수행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곧, 사홍서원(四弘醫願)과 삼취정계(三緊博폈)와 사섭법(四構法)이 그것이다. 여겨서 특히 네 가지 중생을 포섭하고 섭수하는 원리가 사섭법인데, 그 가운데 첫번째가 널리 베풀어주는 것〔布施擔〕 이다. 이것은 물질적이건〔財施〕, 교육적이건〔法施〕, 정신적인 위안이건〔無畏施〕 물을 것 없이 어떤 형태로든지 남에게 베풀어주는 것을 의미한다. 또, 구체적인 보살행도의 내용을 6바라밀(또는 10바라밀)
이라고 하는데,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진수가 곧 보시바라밀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참고 견디는 인욕(忍辱)바라밀, 끝없는 노력을 계속하는 정진(精進)바라밀의 가르침도 중요하다. 이렇듯 남에게 모든 것을 베풀고 모든 것을 참고 용서하며 끝없는 노력을 이어가는 보살행의 정신이야말로 환경과 생태계의 파괴를 미리 막는 데에 가장 절실한 것으로서 요청되는 바이다. 오늘날 불교는 환경 문제와 같은 사회현상에 깊은 배려와 올바른 지침을 마련해 주고 있다. 따라서 불교인은 그러한 가르침을 몸소 실천해가는 겸허한 자세를 되찾아야 할 것이다. 연기의 법칙과 자비의 보살 정신의 불교원리가 올바르게 인식되고 실천됨으로써, 더욱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을 가진 불국정토(佛國浮土)의 건설을 위해 모든 인류가 노력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환경 문제의 해결을 위한 부처님의 큰 가르침을 되새겨보면서, 우리는 부처님 제자로서 다시 한번 옷깃을 여미고 스스로를 머리 숙여 먼저 반성하는 것으로서 오늘의 삶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