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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주의의 파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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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여연 1989년 08월 90호
미국 맨하탄에 있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오랫동안 지켜 온,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서의 위용을 무역센터인 쌍둥이 건물에 넘겨준 것은 그리 오래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그 쌍둥이 건물보다 더 높은 건물이 시카고에 세워졌다고 한다-이것 또한 머지않아 세계 제일의 권자를 새로운 다른 건물에 넘겨주게 될 터이다.
인간은 최고라는 기록에 끊임없이 부대끼며 산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최고와 제일은, 위와 같이 고정될 수도 없지만 존재하지도 않는다. 인간이 만든 최상급을 언제고 도전받기 마련이다. 운동 경기에서도 늘 신기록이 세워지지만 그 신기록이란 것은 곧 새로운 도전자에 의해 깨어진다. 그렇게 늘 깨어지면서도 최고를 향한 열망, 최상급을 이루려는 인간의 노력은 사그라들줄을 모른다. 이를 긍정적으로 보면 인류 문명을 쌓아온 원동력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나, 허망함이 그 내용인즉슨 부정적인 작용과 병폐가 더 클 성싶다.
극단적인 거대주의의 꿈에 사로잡힌 히틀러는 최고를 향한 인간 욕망의 병리적인 현상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유럽 제패라는 무분별한 권력욕에서 세계를 전쟁 속에 몰아 넣은 그는, 또
한, 거대한 건축물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의 밑에서 건축상을 지냈던 시페머의 「회고록」이 전하는 그의 건축 계획은 엄청난 규모의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시페머가 밝히고 있듯이, 건설과 파괴가 서로 병행한 것이었다. 그것은 결코 독일 민중을 위한 건설이 아니었으니, 그 거대한 건축물은 거대한 규모의 군중올 끌어들어 그의 권력 밑에 묶어 두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결국, 최고의 건축물과 그 안에 운집한 군중은 그의 권력을 상징하기 위한 노예화의 길을 면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존엄성과 문명의 파괴에 다름 아닌 것이다.
히틀러의 이러한 구상은 저 거대한 이집트의 피라밋에서 자극받았다고 하는데, 그는 그 건축물에 담긴 민중의 고통의 역사는 보지 않고, 다만 그 거대함 덕분에 수 천년 동안 존속해 왔다는 표면적인 사실만 보았다.
수 천년 세월을 그 안에 저장하고 있는 듯한 그 모습에서, 더 이상 붕괴되지 않는 권력의 상징을 그는 본 것이다. 그래서 성베드로 사원의 17배나 되는, 죽은 뒤에도 자신을 영원히 민중의 권력자로 지켜줄ꡐ궁륭형ꡑ의 건축물을 구상하게 된 것이다.
거대주의에 사로잡힌 히틀러와 비슷한 발상에서인지, 요즈음에 우리 절 집안의 불사들도 서로 앞을 다투어 최고로 큰 건물, 최고로 큰OO전, 동양 최대의 불상 들올 세우고 계획하느라
온통 야단들이다. 그런데, 그렇듯 물량적인 거대화에만 급급하다보니, 절집안의 고유한 건축미는 고사하고 그 형태가 조잡하고 치졸하기가 말씀이 아니다. 또, 저 혼자 못나게 우뚝 크기만 한 게 아니라, 그 최고의 것 하나를 짓기 위해 주변의 옛 건물과 자연경관을 이리저리 마구 망가뜨리고 있는 것이다. 지나친 짐작일까, 주지 한 사람의 기념비적이고 지속적인 권력을 상징하고 싶은 미천한 욕심 때문에 천년을 두고 가다듬어온 사원의 역사성과 균형을 하루아침에 산산이 부숴뜨리고만 꼴을 예서 제서 본다. 사실, 많은 경우에, 그렇게 큰 불사가 대중 가운데 공의(公議)되지 않고 몇몇 소임자에 의해 무모하게 결정되고 보니, 어찌 보면 대중들은 주지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소모품인 듯도 하다.
더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막대한 돈과 인력에 의해 세워진 그 불사들이 대중교육과 수행을 위한 설법이나 포교와 같은 생산적인 목적의 공간으로 쓰이지 않고, 신비주의적이고 개인출세주의적인 목적올 섬기는 경향으로만 치닫고 있음이다.
노자는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면서 미(美)는 선(善)을 그 내용으로 할 때에 아름다움의 진실을 보인다고 하였다. 여기서 선이란 평온한 마음, 평정한 삶을 의미한다. 종교는 결국 사람들의 심성과 영혼을 아름답게 평온하게 가꾸어나가는 길이다. 그러므로, 종교적 수행이 부단히 이어지고 그런 가운데 지고한 정신적 영역이 평정함을 자연스럽게 일구어내는 그런 터전을 마련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이제, 미친듯이 거대주의에 휩쓸리고 있는 오늘의 절 집안 풍토를 진정시키고 가라앉혀, 연연이 이어내려온 그 아름다운 전통문화와 그 청정하고 평화로운 수행의 터를 더 이상 망가뜨리지 않도록, 우리의 마음과 자세를 가다듬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