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전하여 있고 없음을 끊어야
참된 법 드러나니
한 점의 외롭고 허명한 이 몸은
태양과 같으리라.
곧바로 조사의 선격을 이은들
棒으로 맞을 뿐인데
어찌 차분하게 좌선하면서
몰래 다른 생각하리오.
有無坐斷露眞常 一點孤明若太陽
直下承當猶계棒 那堪冷坐暗商量
진각국사 혜심의 선기시에서는 참선을 하는 가운데 선사가 학인들에게 ‘봉’으로 내리치며 ‘유무’에 대한 음의 인상印相을 끊고 선관禪觀을 통하여 진리를 체득하도록 교도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선정의 세계에서는 모든 상을 잊고 벗고 끊어야 그야말로 선탈禪脫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이다. 조사들의 선관을 아무리 잘 받들고 터득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에서조차 벗어나 마음의 안정과 고요를 이루지 못하면 끝내 진리는 나타날 수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선정이라는 목적을 위해 원용되는 ‘출기出機’의 방편이 체용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바로 선기시의 체격을 구성한다. 자수 선사가 〔불조진심선격초佛祖眞心禪格抄〕에서 <조사선격祖師禪格>을 말하는 가운데 다음의 <권설중조사선權說中祖師禪>에서 ‘출기’ 야말로 상도를 보존하고 정신을 보존하는 방면임을 밝힌 바 있다.
때로는 내려치고 소리 치고 말없으며
선기 들어 눈으로 부딪쳐야 상도가 보존된다.
이 경지에 이르러야 감히 귀 기울이지 않고
의젓히 걸어가 벼랑에 매달려 백균을 들리라.
부싯이나 번갯불도 오히려 이보다 둔하니
생각고 의논해 보아도 도달하기 쉽지 않다.
달리는 말 머리 위에서 집안을 편안히 여기고
급작스런 천둥소리에 정신을 보존할 수 있다.
惑捧惑喝惑語혹 擧機目擊常道存
到玆不敢傾耳聽 䦚步懸崖擧百鈞
石火電光猶是純 思量擬議難得臻
走馬頭上安家戶 疾雷聲中可存神
이는 ‘선학강화’라는 의미에서 선화시에 해당되지만, 여기에서 ‘거기목격學機目擊’이라는 말은 바로 선기시의 체격을 시사하는 내용이다. 선정이 비록 ‘불립문자’라는 초언어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으나, 선사들은 상식 밖의 공안이나 화두와 같은 ‘반상합도反常合道’의 초월적 논리와 관념으로서 선정의 세계를 노래한다. “한점 외롭고 허명한 이 몸은 태양과 같으리라(一點孤明若太陽)”는 시구는 마치 ‘이심전심’의 선정과 진여의 세계를 제시하는 듯이 말과 생각을 떠나있다. 그리하여 중국의 마조 선사는 학인들에게 ‘뇌질성雷疾聲과 같은 ‘할喝’을 외치며 초논리적인 선기를 제시한 적이 있다.
만일에 큰 기백이 아니라면
다만 작은 선기의 칼날이라.
스님께서 한번 할을 외치니
학인은 사흘간 귀가 멀었다.
若非大氣觸 只自小機鋒
老子一聲喝 學人三日聾
유극장의 〈마조에 나타난 것처럼 선기는 선정 수행으로 체득한 무아의 경지에서 표출되는 마음의 작용으로서 본질을 찾지 못하고 말과 사물에 마음이 매여 분별하거나 분석하려는 학인들을 깨우치는 방법이 된다. ‘이언절려離言絶慮’ 의 기봉機鋒을 보여준 것이다. 자수 선사의〈회융삼선횡대직용會融三禪橫對直用〉에 나오는 〈겸대선秉對禪〉을 보면 더욱 구체적으로 선기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
우주는 허공의 기운 위에 있고
동쪽 서쪽은 땅 끝에 벌려 있다.
물어 흐르나 본디 바다에 있고
달이 지지만 하늘을 못 떠나네.
비바람도 땅을 벗어나기 어렵고
어룡魚龍인들 어찌 연못을 피하리오
화두마다 모두 부처의 얼굴이요
물건마다 모두 조사의 선기로다.
宇富居氣上 東西列坤邊
水流元在海 月落不離天
風雨難逃地 魚龍溪避淵
頭頭皆佛面 物物盡祖禪
말을 떠나고 생각을 끊어야 하는 선정의 경계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바다가 있고 하늘이 있고 땅이 있고 연못이 있는데 흐르는 물과 지는 달과 비바람과 어룡魚龍에 집착한다면 어찌 본질에 접근할 수 있겠는가 다라서 화두마다 모두 부처의 모습이고 외물마다 조사의 선기가 아님이 없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불립문자’ , ‘이심전심’의 종지를 말한 것이라 하겠다. 원감국사 충지도〈지원구년임신삼월초입정혜작게시동범至元九年壬申三月初入定慧作偈示同梵〉에서 이러한 맥락에서 ‘반상反常’ 의 ‘이언절려’를 말하였다.
계족봉 아래에 옛스런 도량 있어
오늘 따라 산빛이 유달리 빛난다.
맑은 시내 절로 광장설 두었으니
어찌 다시 공안 들어 말을 하리오
鷄足峰前古道場 今來山翠別生光
廣長自有淸鷄舌 何必喃喃更擧揚
소동파가 ‘시냇물 소리는 바로 부처님의 설법이요, 산빛은 어찌 청정한 몸이 아니리오(溪聲便是廣長舌 山色非淸淨身)’ 라고 했듯이 삼라만상이 도가 아님이 없으니 굳이 공안을 들어가며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말을 잊고 생각도 버리며 묵묵히 선관하는 가운데 만물이 모두 불법이요 진리임을 깨닫게 된다고 하였다. 선정은 바로 시냇물 소리를 듣는 것과 같은 명상과 내관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현재 눈 앞에 흐르는 물에만 집착하여 물이 지니고 있는 본연의 실체를 보지 못한다면 선병禪病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정혜사에 처음 들어간 원감국사는 학인에게 삼학의 계, 정, 혜를 닦듯이 철저한 성찰과 조사를 통해서만 전체의 현달이 이루어 진다는 선리禪理를 위의 게송으로 가르쳐 준 것이다. 띠라서 자수선사는 <횡설중조사선橫說中祖師禪>에서 다음과 같이 선정의 관문을 말하였다.
크고 그윽한 선정 관문 신비롭고 멀지만
전체로 나타나 온 마음에 풀리게 되리라.
하늘 아득히 고요하고 해는 맑게 빛나며
산은 말 없이 조용하고 새는 지저귄다.
大寂玄關雖秘邃 全體卽現解諸心
天寂寂兮日唱唱 山嘿嘿兮鳥喃喃
중관 대사 해안도 <희인언선戱人言禪>에서 ‘반상합도’의 선기에 근거하여 세상 사람들의 그릇된 선행과 인식에 대하여 노래한 바 있다.
어릴 때 하늘가의 달을 알지 못하여
우리집 하얀 옥쟁반이라 부르곤 했지.
늙어서 이 몸이 북두를 간직하고자 하여
남쪽을 바라보니 주위 사람들이 웃었다.
少時不識天邊月 呼作吾家白玉盤
老欲此身藏北斗 傍人笑我面南看
이백은 ‘소년은 달을 알지 못하여 하얀 옥쟁반이라고 불렀다(少年不識月呼作白玉盤)’라는 시구를 절취하여 선행으로 체득한 자신의 심오한 선기를 제시하였다. 어린 시절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아서 하늘의 달을 보고 우리 집의 옥쟁반이라고 불렀던 순진무구한 마음이야말로 본성을 그대로 간직한 천진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천진한 마음, 짧을 찾는 것이 불제자들의 수행 영역이건만 학문과 지식이 성숙하여 비록 달이라는 개념을 이해하였다고 한들 누적된 습기의 꺼풀로 인해 그 본연성을 잃고 진정한 각오조차 성취하지 못하는 학인들의 선병을 지적하였다. 그리하여 북두성을 간직한다고 말하면 북쪽하늘만 바라볼 뿐 남쪽하늘을 바라볼 줄 모르니 앞만 보고 뒤를 보지 못하는 모습이 안타깝기만 했을 것이다. 북두성은 내 마음 속에 있기에 남쪽을 바라본다고 해도 언제나 내 마음 속에 있는 것이다. 북쪽은 임금과 같은 절대자의 자리인만큼 북쪽에 있는 상좌上座는 언제나 남쪽을 바라볼 수 밖에 없다. 내 몸이 부처님에게 귀의했다 하여 불상만 쳐다보고 앉아 있으면 되겠는가. 속세의 중생이 모두 불성을 지니고 있거늘 그들과 고락을 나누며 제도하는 것이 진정 부처님에게 귀의하는 길이 아니겠는가.
세상의 만상이 모두 공허하여 내외가 없음을 깨달은 나옹 왕사 혜근은 다음과 같은 선기시를 지었다.
공허한 모든 것을 쳐부수니 안팎이 없고
티끌하나 있지 않아 당당한 모습이라.
몸을 뒤척이며 곧장威音의 뒤를 뚫으니
보름달의 찬 빛이 망가진 귀未을 비추네
擊파虛空無內外 一塵不立露堂堂
翻身直수威音後 滿月寒光照破未
이 게송은 공민왕의 빈전의 소참에서 지은 것이다. 나옹 왕사는 향을 향로에 사르며 공민왕의 넋을 기리기 위해 그 자리에서 천성千聖의 이목을 활짝 열어 젖히고 스스로의 근원을 증득하도록 한다면서 잠시 침묵하다가 주장자를 잡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대왕께서는 깨달으셨습니까? 마흔다섯 해를 이 세상에 노니시며 삼한의 임금이 되어 백성들을 이롭게 하시다가 오늘 인연이 다하여 풍화가 먼저 스러지고 지수가 아직 남았으나 한 점의 허명한 이것은 지수화풍에 속하지 않으며 고금에도 속하지 않으며 거래에도 속하지 않으며 생사에도 속하지 않으며 그 무엇에도 속하지 않으니 이 허명한 한 점은 어디로 향해 가시렵니까?”
주장자를 들어 보이고 다시 주장자로 세 번 치고는 보이는가, 들리는가 하고 묻고는 침묵 뒤에 읊은 게송이다. 진각 국사자 ‘한 점 외롭고 허명한 이 몸은 태양과 같으리라(一點孤明若太陽)’하여 진리를 각오하는 순간 태앙과 같은 열락을 만끽할 수 있다고 하였듯이 나옹 왕사는 날카로운 기봉을 보이고 있다. 민물의 근원이 모두 ‘무’라는 이치를 깨닫고 상대적인 내외의 관념이 사라지면 진여의 그윽한 달빛이 승상을 비추듯이 어두운 미로에서 벗어나 광명의 극락왕생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은 선기에서 나온 초월적 논리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나옹 왕사의 선격은 다음의 자수 선사가 말한 <조사선격祖師禪格> 가운데 <수설중조사선竪說中祖師禪>의 내용으로 이해할 수 있다.